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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호지방이 Feb 18. 2024

띠띠띠띠

 열쇠로만 집에 들어갈 수 있던 때가 있었다. 옛날 춘천집이 그랬다. 띠띠띠띠 한방으로 모든 걸 끝낼 수 있는 도어락이 편리하긴 하지만, 가끔은 열쇠로 문을 따는 갬성이 그립다. 지금은 음....... 술집 화장실 갈 때 정도나 열쇠를 사용하는 듯하다. 띠띠띠띠 소리보다는 열쇠 철컥 소리가 더 정겨운데. 문을 따는 손맛이 있달까. 이렇게 말하니까 좀도둑 같나?     

 

 물건 잃어버리기가 주특기였던 나는 집 열쇠 역시 오지게도 잘 잃어버렸다. 실내화 가방이든, 우산이든, 늘 물건을 질질 흘리고 다니는 나를 위해 엄마는 열쇠를 목걸이로 만드는 특단의 대책을 세웠다. 하지만 효과는 미비했다. 특히 겨울보다도 여름에 열쇠를 많이 잃어버렸다. 촉감에 예민한 나는 여름이 특히 괴로웠다. 날이 더워 찐득찐득해진 쇳덩이가 가슴팍에 부딪히는 게 싫었다. 그리고 목걸이를 만든 천이 살갗에 닿는 게 괴로웠다. 그래서 늘 목걸이를 벗어 빙글빙글 돌리고 다녔다. 그렇게 칠렐레 팔렐레 뛰어놀다 보면 열쇠의 행방이 묘연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유년의 여름에는 아파트 계단에 죽치고 앉아 있는 일이 잦았다. 집에는 아무도 없고 문은 잠겨 있다. 핸드폰도 없다. 그러면 별 수 있나. 시멘트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버리는 수밖에. 한여름의 아파트 계단은 생각보다 시원하다. 그늘에 오래 노출된 시멘트의 차가운 기운이 엉덩이를 타고 올라온다. 그 시멘트 계단에 철퍼덕 주저앉아 엄마를 기다리는 일.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며 엘리베이터의 숫자를 멍하니 바라보는 일. 우리 집 층수에 가까워지면 잔뜩 기대하다가 우리 집 층수를 지나면 실망하기를 반복하는 시간들. 


 생각해 보면 누군가를 기다리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때 아니었나 싶다. 순수하게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서만 보내는 시간. 그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지. 어디쯤 일지. 언제 오는지.      


 얼마 전 도어락을 눌렀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띠띠띠띠. 늘 누르던 숫자인데 말을 듣지 않았다. 기기 고장이다. 수리를 위해 도어락 기사님을 불러놓고 그를 기다리는 동안 옛 열쇠집 생각을 했다. 이제는 옛날처럼 마음의 여유가 있지 않아 그런 시간들을 견뎌내기 힘들다. 두 시간 세 시간씩 시멘트 계단에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리던 시절도 있었는데, 기사님을 기다리는 단 10분 20분의 시간이 너무 괴로웠다.     


 띠띠띠띠 숫자 네 개로 인해 사라진 것들이 가끔은 그립다. 오롯이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 보내던 시간. 엿가락 늘어지듯 끈적하게 흘러가는 여름 같던 시간들. 여름이면 옷 안에서 느껴지던 쇠냄새. 엘리베이터가 우리 집 층수에 딱 맞게 서면 나도 모르게 환하게 밝아지던 표정. 낡은 열쇠를 문고리에 넣고 철컥 돌리면 비로소 새어 나오는 낡은 춘천집의 냄새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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