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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호지방이 Feb 11. 2024

외동아들로 살아남기Ⅰ

 나는 매달 40만 원의 용돈을 엄마에게 송금한다. 아니. 정확히는 엄마와 아버지 모두에게 보내는 용돈 40만 원을 송금한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엄마의 경제제재는 미국의 대북제재보다 빡세기 때문에 사실상 엄마에게 보내는 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아버지는 늘 용돈이 궁하다. 그가 나에게로 몰래 다가와 우는소리를 하면, 나는 세상 순진한 얼굴로 아무것도 모르는 시늉을 한다. 

 용돈? 엄마한테 한꺼번에 보냈는데?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의 표정은 뭐랄까. 참 아이 같다. 조금은 뾰로통해진다. 다 아는 사람이 서운하게 왜 그러냐는 얼굴이다. 초딩 때 디지바이스를 얻어내는데 실패한 내 표정이 저랬을까. 엄마 몰래 아빠에게 디지몬 게임기를 사달라고 했다가 실패했던 아픈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 법이다 후후.      


 그런데 엔간하면 포기하고 돌아서는 아버지가 이번에는 좀 끈질겼다. 애절하게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속마음 이펙트를 써본다면 이런 느낌이려나. 

 ‘너는 자식한테 용돈 타 쓰는 날이 안 올 거 같냐? 치사하게 굴지 말고 좀 줘라. 너도 나중에 아버지가 될 텐데. 다 업보로 돌아온다 이 짜식아’ 

    

 무뚝뚝한 아버지가 이 정도까지 나왔다는 건, 정말 용돈이 궁하다는 얘기다. 분명 어디 가서 당구 내기에 졌거나 엄마 몰래 담배를 사야 하는데 돈이 떨어졌을 터다. 가정에 분쟁을 일으키는 지출 사유다. 중고등학생 때는 그런 쓸데없는 지출을 전혀 납득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그에게도 숨구멍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아버지의 우는 소리에 마음이 약해진 나는 피눈물을 흘리며 어둠의 루트로 돈을 송금한다. 젠장. 분명히 용돈을 같이 준 건데. 따로 또 챙겨드려야 하다니.

      

 아버지의 은밀한 지하경제 활동을 아는지 모르는지. 속이 끓는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상치 못한 출혈에 상심하고 있던 내게 엄마가 이상한 너스레를 떨었다. 

 얘. 너 동생을 하나 더 낳을걸. 자식 둘 다 40만 원씩 용돈 줬으면, 못해도 한 달에 80만 원씩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아깝다 얘. 호호호. 

 어머니께서 뭔가 큰 착각을 하시는 듯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외동을 대표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어머니의 이상한 생각을 차분히 정정해드렸다.

 엄마 그건 정말 이상한 계산법이야. 만약에 자식이 둘이었다면. 둘이 20씩 모아서 40을 줬을 거야.

 아주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계산법을 듣고 나자 엄마는 이내 이마에 뭔가를 띵-하고 맞은 표정이 되어버렸다. 엄마는 내 얘기를 듣고 깔깔 웃더니 아버지를 불러냈다. 지원군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자식이 둘이면 당연히 용돈도 두 배여야 하는데. 얘가 아니래. 당신이 뭐라고 좀 해줘. 

 이놈아! 그런 계산이 어딨냐.

 그렇지? 얘 말하는 것 좀 봐

 지하경제 활동에 성공한 아버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엄마 편을 들었다. 너무 일말의 망설임이 없어서 좀 충격적이었다. 그의 평화로운 지하경제를 폭로해버릴까 했까 잠시 고민해봤지만, 그 사실이 밝혀진다면 엄마가 용돈을 올려달라고 할 것만 같아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외동아들로 산다는 건 생각보다 고달픈 일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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