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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호지방이 Feb 04. 2024

내 안의 찐따

 두 달 전, 친구에게 결혼식 사회를 부탁받았다. 사회를 부탁받을 정도니 당연히 절친한 놈이다. 하루에 만 원 한 장씩 뽑아 들고 가성비 백반으로 점심 저녁을 때우며 취업 준비를 함께했던, 동굴 속에서 숨어 살 때 유일하게 연락하고 지내던 친구다. 내 성향이 어떤지 충분히 알고도 남을 만한 놈이라는 거다.  

    

 사실 작년 가을에 결혼식 축사를 부탁받았을 때도 잠깐 생각하긴 했었는데, 이번에 결혼식 사회까지 부탁을 받으니 아주 실없지만 강력한 의문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밖에서 보는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나는 내 안의 찐따를 꽁꽁 숨기는데 미쳐버린 나머지 실제의 나와 아예 동떨어진 자아를 연기하며 살아가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연기에 엄청난 소질이 있을지도? 등등등. 파워 I를 자랑하는 내 안의 찐따가 이 사태에 대해 해명하라는 듯 퉁명스러운 질문들을 던져댔다.     


 함께 보낸 세월이 얼마인데, 그가 내 안의 찐따를 몰랐을 리 없다. 그 찐따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사회를 제안해 준다는 건, 그에게 내가 그만큼 소중한 사람이라는 반증일 터다. 그 마음을 알기에 기쁜 마음으로 사회 제안을 수락했다. 오히려 녀석은 본인의 결혼식에 내 안의 찐따가 튀어나오면 평생 놀림거리로 삼을 수 있어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렇게 마음을 다스려보려고 해도 내 안의 찐따가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녀석의 인생에 아주 소중한 순간일 텐데, 정말 해낼 수 있겠어?’      


 지난가을에 축사를 준비했을 때는, 차라리 사회가 쉽겠다는 건방진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때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축사는 오롯이 나의 글로 마음을 전해야 하는데, 사회는 그냥 예식장에서 준 대본만 무난하게 읽으면 되는 거 아녀? 신랑 신부 행진! 이것만 안 쫄고 힘차게 읽어주면 되는 거 아녀? 이런 생각.     


 어제 결혼식 진행을 직접 해보니, 전문 사회자가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역시나 진행은 대본만 읽어서 될 일이 아니었다. 행진 중간중간 또는 신부가 드레스를 정리하는 중간중간, 오디오가 비지 않게 쌥쌥이(?)를 잘 쳐줘야 했는데 그건 역시 전문가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친구가 보는 서툰 사회는 또 그만의 매력이 있기 마련이라 결론적으로는 무난하게 잘 끝냈다. 내 안의 찐따는 다행히 식이 끝날 때까지 튀어나오지 않았다.    

 

 내가 이런 류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늘 받아들이는 이유는, 단지 소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결혼식의 축사나 사회를 준비하다 보면 그들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 새삼 돌이켜보고 추억해 보게 된다. 그리고 그의 삶 가장 중요한 순간에 내가 응원이 될 거라는 것. 앞으로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내가 그의 곁에서 늘 함께할 거라는 것. 그런 마음들이 잘 전달되기를 기도하게 된다. 나는 그 시간들이 참 좋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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