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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ire Sep 15. 2019

나의 좋은 사수, 나쁜 사수

나는 좋은 사수가 될 수 있을까?

나에게는 두 명의 사수가 있었다. 사수를 이나 만나다니 IT업계에서 운이 좋다면 좋은 편이었다.


첫 사수는 SI업체 마케팅팀의 과장님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무서운 사수이자 나쁜 사수였다. 일을 휘리릭~ 대충 가르치고는 왜 하루 만에 숙달되게 하지 못하냐며 나를 닦달하곤 했다. 그리고 나를 괴롭히기 위해 매일 새로운 일거리를 고민하기도 했다.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정말 삼박사일이 필요할 정도이다. 출산휴가인 팀장님께 전화하여 '새 직원을 뽑았는데 맘이 안 든다, 업무 속도가 느리다.'라는 이야기를 다 들리게 하는 것이 내가 업무가 느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는 상사였다. (이때 느낀 수치심을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애써 못 들은 척하던 나날이다.) 심지어 그 사수가 반차 쓰는 날, 업무를 대신하고 있는 나의 타자 속도가 느리다고 눈앞에 별이 보일 정도로 꿀밤을 먹이는 못된 상사이기도 했다.


그런 상사를 빨리 떠나지 못했던 것은 그때는 신입이라 다른 회사도 이런 지, 모든 사수는 후임을 괴롭히는 것인지 비교대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친구들도 다들 회사생활은 힘든 것이다라고 하니, 모두 이렇게 사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참다가 결국 나는 그녀를 떠났고 그렇게 그녀를 견지 못한 열 번째 후임이 되었다.


퇴사 후 들은 소문엔 내가 그녀의 마지막 찬스였다고 한다. 하도 후임을 괴롭혀서 내보내는 탓에 회사는 모든 후임이 제 발로 퇴사를 하는 것은 선임이 문제라고 생각을 했단다. 그래서 내가 그녀의 마지막 기회였고 내가 퇴사한다면 그녀를 자르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반전은 그 뒤로도 많은 후임이 나갔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 회사서 잘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역시나 회사는 믿을게 못된다. )


그러고 나서 두 번째 회사에서 드디어 좋은 사수를 만났다. 나의 두 번째 사수는 매일 아이디어가 넘치는 사장님을 피해 잠든 척을 하는 기획자였는데, 상사로서  좋다는 똑똑한데 게으른 타입이었다.  사수의 가장 좋았던  피드백을 요청하면 해주는 원포인트 레슨이 기가 막혔다는 것이다.


예시를 들자면, 첫 사수는 글을 길게 써야만 잘 쓴 것이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엿가락처럼 늘려 써야만 했다. 그런데 두 번째 사수는 달랐다. 내가 짧게 기사글을 적어도 "아~네가 여기서 이렇게 이렇게 생각했는데, 여기서 막힌 구나. 여기는 이렇게 풀어가는 건 어때?"라고 피드백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글을 길게 써서 보내면 오히려 짧게 써도 된다고 해주었다. 방향을 제시하면서 한 번도 강압적으로 '이렇게 해! 내 말이 맞아.'라는 법이 없었다. 항상 나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일을 해나가는 방향을 믿어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기획자가 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기도 하였다. 물론 그분이 직접 다 하기 귀찮았기 때문이었지만, 나에겐 천금 같은 기회였다. 사수가 만든 기획서의 세부 내용을 채우는 것을 시작으로 나는 기획자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사수와의 이별도 찾아왔는데 그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사수가 팀장으로 승진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사수는 업무는 잘하는 사람이었지만 사업부의 팀장 그릇은 아니었던지 팀원들을 관리하는 데 있어, 공정하지 못했다. 진위 판단 없이 회사에 떠도는 소문을 믿고 사람을 평가해버리는 그런 일이 많았다. 그리고 회사가 기울어지면서 동료들도 나도, 사수도 그곳을 떠났다.


나의 좋은 상사에게 단점이 있었던 것처럼 나쁜 상사였던 첫 사수도 찾아보면 나름 장점은 있었다. 바로 하도 많은 일을 시켜서 이직하고 나서 업무 때문에 겁을 먹는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분을 견뎠다는 생각을 하면 '이 정도쯤이야!'라는 생각으로 일을 처리해 나갈 수 있었다. 세상에 버릴 경험은 없다더니 두 사수 모두 나에게 깊은 인생 경험을 준 셈이다.


'사수가 있는 편이 좋을까?'라는 질문을 들을 때면 역시 있는 편이 좋을런가 싶기도 하지만 나쁜 상사와의 지난날을 생각해보면 혼자 일하는 것이 속 편할지도 모르겠다. 회사생활도 오래하려면 사람간의 스트레스는 적으면 적을 수록 좋으니 사수가 없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있느니 오히려 없었으면 좋았을 사수도 많으니 말이다. 다만 언젠가 내가 선임이 된다면 나의 좋은 사수처럼 오래도록 좋은 선배로 기억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은 그런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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