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기억이 자세히 나지 않는다.
아주 드문드문 기억이 나는데 그건 내가 원래 기억력이 좋지 못한 것도 있지만 그뿐만은 아닌 것 같다.
요즘 남편과 아이 이야기를 하고, 아이와도 아기였던 사진을 보며 기억을 나누며 생각 난 것인데
가족 중에 누구도 나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도 그 몇 가지 안되는 기억 중 엄마와 여행갔던 생각이 난다.
늦가을 정도의 날씨였던 것 같다.
흔하지 않는 엄마와의 외출이었다.
둘이서 따뜻하게 옷을 입고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렸다.
콧등이 시큰 거릴정도의 쌀쌀한 날씨.
그 시절 무궁화호를 타고 기차를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파는 카트에서 약간의 먹을거리도 사서 먹었다.
사이다 같은 것을 마시며 엄마 얼굴을 쳐다보았고 엄마는 창밖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어딘가 쓸쓸해보이는 얼굴.
엄마는 늘 외로워 보였다.
그리고 엄마가 조용히 옛날 이야기를 해주었다.
엄마 어릴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이야기였다.
차사고가 났던 것인데 그 시절 굉장히 부자였던 외할아버지 댁은 자가용이 있었고
그 차를 타고 엄마의 학교에 엄마를 데리러 가다 외할머니가 사고가 나셨다.
그리고 엄마가 11살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곧바로 외할아버지는 재혼을 하셨다.
그런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었다.
담담히 말하던 엄마의 얼굴 속에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던, 그리고 자신 때문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자책이 서려있는..복잡한 얼굴이었다.
"엄마 때문이 아니라 사고였잖아.."
"내가 외할머니를 불러서 그랬던건 아닐까.."
"그래서 외할아버지가 엄마 싫어하는거야?"
"..."
엄마는 또 입을 닫았다.
외할아버지는 가난했던 아빠와의 결혼을 엄청나게 반대했고, 엄마는 결혼 후 외갓집에 갈때마다 외할아버지와 싸웠다. 언젠가는 외할아버지가 엄마의 뺨을 때린적도 있었다. 그 뒤로 우리는 외갓집에 거의 가지 않았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가끔 외삼촌네를 방문했지만 그것도 몇년에 한번 정도 였다.
점촌역.
그렇게 기차가 도착한 곳은 엄마의 고향이었다.
우리는 엄마가 어릴때 다니던 성당으로 갔다.
처음으로 성당에 간 나는 어색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기분이었다.
여기저기 둘러보던 엄마는 의자에 앉아 잠시 뭔가를 기도하는 듯 했다.
그 이후 무엇을 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차 안에서 엄마와의 대화, 단풍지던 기차 밖 풍경, 성당에 엄마와 같이 갔던 것 이런 단편적인 기억만 남아있다.
그날 성당에서 엄마는 무엇을 기도 했을까?
왜 그날 가족들에게 말도 없이 나를 데리고 거기까지 다녀온 것일까?
엄마가 그날 어떤 기분이었을까..
갑자기 외할머니 생각이 났던 걸까..
기차에서 엄마가 외로워 보일때 그냥 한번 엄마를 꼭 안아줄걸 그랬나 싶다.
그럴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