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 중간고사를 보았는데 반에서 1등을 하게 되었다.
공부를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상위권 안에 들만큼은 아니었는데 난생처음 1등을 한 것이다.
괜히 두근두근 한 마음이었고 뭔가 나도 잘하는 것이 있구나 생각하니 들뜬 기분이 들었다.
성적표를 들고 집으로 가는데 이걸 보여주면 엄마가 나를 꼭 안아주고 잘했다는 칭찬을 하겠지, 아빠는 어떤 반응일까? 할머니는 표정이 어떨까? 이런 여러 가지 생각이 났다.
무엇보다 요즘 더 오래 누워만 있는 엄마가 벌떡 일어나서 기분 좋은 표정을 지을 것을 상상하니 입꼬리가 올라가고 웃음이 피식피식 나왔다.
집으로 도착해서 가방을 내려놓고 성적표를 손에 들었다.
"엄마~~~"
평소와 다르게 큰 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
"엄마~~~~~~~~"
보통은 엄마가 대답이 없으면 포기하고 혼자 놀기를 할 텐데 그날은 좀 달랐다.
"엄마!!!"
".. 응.."
아주 조그마한 목소리가 방에서 들렸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서 엄마가 누워있는 이불로 들어갔다.
"엄마 이거 봐봐!!"
"..."
말없이 내가 내민 성적표를 바라보는 엄마를 나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엄마 나 반에서 일등 했어!"
"그래.. 잘했네.."
아주 작은 소리로 대답을 한 엄마는 다시 그 자리에 누웠다.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가만히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가 아프니까.. 그래 아파서 그런 걸 거야..'
스스로를 위로하며 성적표를 손에 들고 방에서 나왔다.
늦게 들어온 아빠를 기다려서 이야기했지만 아빠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래. 앞으로도 잘해라."
그때부터 나는 관심병이 생겼다.
누군가 나에게 조그만 관심을 가져주면 그 관심을 계속 받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따뜻한 표정과 말을 해주는 사람에게는 무엇이든 다 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었다.
칭찬 한마디를 듣고 싶어서 밖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맞춰주었다.
집에서는 나에게 아무도 관심이 없으니 그 관심을 받기 위해 밖에서 더 착한 아이가 되었고
튀지 않는 사람이 되려 했다.
12살의 나는 우울증에 걸린 엄마를 머리로 이해했지만,
그 후 20여 년 동안 나는 그날에 받고 싶었던 칭찬과 관심과 격려를 받으려 너무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애쓰며 살지 않아도 되었는데 말이야.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하기보다 내 마음을 좀 더 돌보며 살걸 그랬다는 후회가 조금 된다.
"너무 잘했어. 노력 많이 했구나! 이렇게 노력하는 너는 정말 멋진 어른이 될 거야!"
37살의 내가 12살의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