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관들에 대한 강의를 할 때마다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수사를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100이면 100 모두 "형사소송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형사소송법은 법원을 위한 법률입니다. 그중 일부에 수사의 한계와 절차에 대해 아주 적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형사소송법은 일종의 "Ceiling"에 대해 규정하고 있을 뿐 수사가 무엇인지에 대해 전혀 이야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압수수색할 수 있다"라는 것은 압수수색하여야 한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불가피할 때에만 압수수색을 하라는 것을 뜻합니다.
"묵비권을 고지하여야 한다"라는 것은 이를 고지만 하면 그만이라는 것이 아니라 "진술을 강요하지 말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과연 대한민국의 수사기관 경찰과 검찰이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최루탄을 고등학생의 눈에 쏘아 죽이게 만든 경찰, 지난 10년간 조사 중 80여 명을 자살하게 만든 검찰,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며 고문하고 죽인 경찰들, 이들이 과연 "법"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대한민국의 수사기관은 경찰이든 검찰이든 "법의 지배"가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헌법은 국가권력의 남용으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려는 법치국가의 실현을 기본이념으로 하고 있고, 법치국가의 개념은 범죄에 대한 법정형을 정함에 있어 죄질과 그에 따른 행위자의 책임 사이에 적절한 비례관계가 지켜질 것을 요구하는 실질적 법치국가의 이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법치주의는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법의 지배(rule of law)를 의미합니다. 법에 의한 지배는 법을 통치자의 의사를 실현하는 단순한 수단에 불과한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으로 진정한 의미의 법치가 아닙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통치자들 수사기관들은 "법"을 이용하여 국민을 잡아들이는 것을 법치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무식한 자들이 어떻게 검사가 되거나, 경찰대학을 졸업하여 수사를 지휘하는지 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법치를 이성의 지배라고 하고 인간이 지배하는 인치는 감정의 지배라고 했습니다. 법치는 일관성이 있어 예측 가능하지만, 인치는 자의적이라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편견, 감정, 무지, 탐욕, 변덕 같은 약점을 가진 인간 대신 법이 지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법은 무생물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아무 힘이 없고 결국은 인간에 의해 적용되고 집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법치주의의 달성여부는 법의 해석과 적용에 법을 운용하는 개인에게 달려 있기 때문에 국민들은 법 집행자가 법을 자의적으로 적용 및 해석하지 않도록 항상 감시해야 합니다.
법은 그 사회를 운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틀이며 특히 강제처분권을 행사하게 될 수사기관의 활동은 절대로 그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서도 안 되고 자의적으로 해석 및 적용되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 헌법 제12조 제1항은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헌법 제12조 제3항은 체포, 구속, 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 적법한 절차에 따를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적법한 절차라는 것은 대다수 국민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옳다고 생각해 온 기본적인 기대를 준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법을 이해하고 이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필수적인 요청입니다. 그런데 법을 이해한다는 것은 형식적인 법률규정을 이해한 것으로 족하지 않습니다.
2008년 미네르바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평범한 시민이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할 것이다"라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이유로 그를 처벌하기 위해 사문화되었던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 허위사실유포죄라는 죄명을 찾아내어 그를 구속합니다. 아시다시피 해당 법조문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국민의 법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정치권의 의도에 따라 한 시민을 구속하고 그의 인생을 파멸시키는 것이 인치, 법에 의한 지배의 전형입니다.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았다는 이유로 과도하게 자료를 압수하는 행위, 임의적인 방법으로 은행계좌 내역을 확인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장의 집행을 위해 대상 은행의 업무를 정지시키는 행위, 영업장부를 압수한 후 고의적으로 환부를 지연시켜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 수사기관이 범죄를 수사할 수 있다는 근거규정을 들어 함부로 표적수사를 하는 행위, 압수수색의 장면을 일부러 언론에 노출시키는 행위, 판결이 확정되기 전에 피의자를 포토라인에 세우는 행위 모두 법을 이용한 지배의 한 단면입니다.
법에 의한 지배가 되지 않도록 법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법의 목적과 의도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사기관이 범하는 실수 중에 하나는 이 법이라는 것을 형사소송법으로 한정하려는데 있습니다. 형사소송법은 국내의 무수한 법 중의 극히 일부의 법률일 뿐이며 국민의 일상적인 생활을 규제하는 법도 아닙니다.
법을 이해함에 있어 형사소송법을 중심으로 이해하게 되면 수사 중심적 사고방식에 휩싸이게 됩니다. 수사기관은 오로지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법을 이해하려고만 하지 시민의 인권에 대해 선언한 헌법에 대해서는 제대로 공부하지 않습니다.
필자의 독단적인 생각일지 모르겠으나 유독 우리나라 사회는 법을 다루는 자에 대한 두려움이 강하며 법조인 출신이 사회 지도층을 대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현상은 법조인이 법 위에 군림하고 법을 함부로 남용하는 모습이 일상이 되었고 우리의 시민들도 이러한 현상을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법은 국민에게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국민의 인권을 탄압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부디 수사기관이나 법집행기관이 매뉴얼이나 가이드라인 따위에 불과한 형사소송법 조문을 암기하기 전에 형사소송이 가지는 이념, 형사소송의 근저에 흐르고 있는 헌법정신에 대해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이해를 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수사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