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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risee Jan 19. 2024

[레 미제라블] '불쌍하고 비참한' 이들을 구원한 것

빅토르 위고의 삶을 살펴보았으니 이제 그의 대표작을 통해 이야기를 확장시켜보고자 한다.


< Les Misérables >


'빵을 훔쳐 감옥에 간 불쌍한 장 발장의 이야기'로 알려진 이 작품은 과연 어떠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것일까?


<레 미제라블> 원작은 무려 2,500페이지가 넘을 정도로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요약본만 해도 어느 정도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2권, 제대로 원작의 묘미를 느끼려면 5권짜리의 번역서를 읽어야 하는 셈이다.


위고는 장 발장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냈기에 2,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탄생하였을까?




Les Misérables을 우리말로 해석하면  '비참하고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뜻이 된다.


작품에는 장 발장을 비롯하여 다양한 이유로 고통받는 레 미제라블이 등장한다.


위고는 이러한 레 미제라블의 이야기를 통해 비참하고 고통받던 그들의 삶을 그려내고, 아울러 레 미제라블의 구원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즉, 이 작품은 인간의 고통과 본성, 그리고 그들에 대한 구원까지 담고 있는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관찰일지이자, 인간에 대한 박애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양이 이토록 방대한 것 또한 인간에 대한 다양한 묘사, 그리고 이들에 대한 위고의 마음이 녹아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위고가 그려낸 레 미제라블의 삶, 그리고 그들을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파헤쳐보자.




인간을 증오하고, 사회를 혐오하게 된 레 미제라블


청년 시절 장 발장은 죽어라 일해봐야 몇 푼 못 받는 막노동을 하며 보냈다.


누나와 조카들을 부양하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일해야 했기 때문에 여자를 사귀거나 사랑 한 번 못 해봤다.

...

장 발장의 가족은 점점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비참하고 슬픈 운명의 사람들이었다.

...

결국 장 발장은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빵 한 덩이를 훔친 죄로 무려 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형벌이 곧 파멸인 그런 시기였다.


누나와 조카들을 돌보며 굶주림에 시달리던 장 발장.


빵 하나를 훔친 일이 19년의 복역생활로 이어지고, 출소 후에도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얼음장 같을 뿐이다.


오랜 시간 희망을 가지지 못한 삶을 살아오며, 출소 후에는 또 다른 고통을 마주하며 장 발장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증오'와 '혐오'였다.




 바람둥이에 늙고 머리가 벗어진 톨로미에스는 팡틴의 첫사랑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톨로미에스에게 자신의 몸을 허락한 뒤 버림받았다.

...

그녀는 자신이 최악의 상황으로 굴러 떨어지기 직전이라는 위기감을 느꼈다.

이 상태로 파멸하지 않으려면 용기가 필요했던 그녀는 늦게나마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

팡틴은 되는 대로 아무 남자나 붙잡아 정부로 삼았다.


사랑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대한 반발심과 자포자기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

팡틴이 까까머리를 마르그리트 쪽으로 돌렸는데 그 모습이 어제저녁보다 열 살은 더 늙어 보였다.

...

그녀가 미소 짓는 모습은 그야말로 처절해 보였다.

입술에는 피 섞인 침이 말라붙어 있었고, 이가 뽑혀 나간 입속은 시꺼먼 구멍이 뚫려 있었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하고, 일하던 공장에서도 쫓겨나 결국 몸을 팔고, 머리카락과 치아까지 잃어야 했던 팡틴.


그럼에도 사랑하는 딸 코제트를 만날 수 없었던 그녀.


평범한 삶을 살 수 없었고, 자식조차 온전히 지켜내기 어려웠던 시간 속에서 팡틴은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었을까?


이 작품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삶과 가혹한 환경 속에서 인간과 세상을 증오하게 된, 그야말로 비참한 레 미제라블의 모습을 그려낸다.




가난한 이웃의 실상을 알게 된 마리우스는 지금껏 자신의 열정과 안녕을 우선시하면서, 고통받는 이웃들에게 무관심했던 자신을 크게 꾸짖었다.

...

그들은 물론 몹시 천하고 타락한 사람들이었지만, 몰락한 사람들이 타락하지  않기란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 또한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또한 불행한 사람과 파렴치한 사람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을 한 마디로 합치면 '레 미제라블', 즉 '가엾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리우스의 이야기에서 레 미제라블의 현실은 더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가난한 이들의 타락과 고통. 그로 인한 일종의 파렴치함은 그들이 천하거나 못나서가 아닌 '가엾고 비참한 사람들' 이기 때문이라는 것.


더불어 위고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마리우스라는 캐릭터를 통해 레 미제라블의 삶을 진정으로 보듬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반성과 고뇌를 드러냈던 것이 아닐까.




그들을 비참하게 만든 건, 어쩌면 그들 자신일 수도


그녀는 자주 편지를 보냈는데 이것이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작업장의 여자들은 팡틴이 '틈만 나면 편지질을 한다'느니  '하는 짓이 수상쩍다'느니 하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

결국 사람들은 팡틴에게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마침내 어느 수다스러운 여편네가 몽페르메유까지 가서 테나르디에 내외를 만나고 돌아와 이렇게 떠들고 다녔다.


"35프랑을 투자한 덕분에 가슴속 안개가 확 걷혔어요."


팡틴을 공장에서 쫓겨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동료들의 소문이었다.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수다를 떨기 위한 수단으로 도마 위에 올린 한 사람의 삶은 그렇게 같은 레 미제라블에게 난도질을 당한 것이다.




양껏 돈을 뜯어내지 못한 테나르디에 내외는 하루가 멀다 하고 독촉 편지를 보내서 그녀를 슬픔과 곤경에 빠뜨렸다.


그들은 편지도 꼭 미납으로 보내서 팡틴이 우편 요금을 치러야 했다.

어느 날 날아온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어린애가 이 추위에 입을 것이 하나도 없어요.

털 치마 한 벌이 필요한데 적어도 10프랑은 보내줘야 해요."

...

불공평한 세상은 어린 코제트를 퉁명스러운 아이로 만들었고, 불행은 추한 모습으로 바꿔버렸다.


아름다운 눈만큼은 예전 그대로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큰 슬픔이 서린 듯한 커다란 눈망울은 보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어린아이를 볼모 삼아 팡틴을 생활고에 빠뜨린 것도.


어린 코제트를 너무 일찍 세상의 아픔에 눈뜨게 한 것도 결국 레 미제라블이 또 다른 레 미레자블을 만들고, 상처 입힌 과정이었던 것이다.




"당신은 항상 남보다 자기 게 더 크게 보이죠. 

이런 고통마저도 말이에요."

...


"대체 그 늙은이는 어떻게 된 거냐! 벌써 올 때가 됐는데.


이러다 안 오면 괜히 불 끄고 의자 부수고 슈미즈까지 찢고  유리창만 깬 게 되잖아!"


악독한 인물로 그려지는 테나르디에 부부. 


특히 남편 테나르디에는 자신의 고통이 가장 크고, 자신의 안위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이기적인 마음으로 인해 스스로를 고통에 빠뜨리고, 비참한 사람으로 만들어간다.


비참하게 보여 돈을 얻어내기 위해 스스로 부순 의자와 깨어진 유리창처럼 말이다.


삶을 살아가며 나 자신만을 중시하다가 오히려 고통스러웠던 경험이 있는가?


테나르디에의 모습에서 스스로를 발견했다면, 이제는 스스로를 비참함에서 구원해야 할 때가 아닐까.




양심과 신념을 지키는 것, 그 어려움


이 작품을 통해 위고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또 한 가지는 바로 '양심과 신념을 지키려는 과정에서 인간이 겪는 갈등과 고통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중 장 발장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고통스러워하고 양심의 가책을 겪는다.


그가 실천했던 선행은 어쩌면 양심의 고통을 덜기 위한 자기 위안의 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겪는 양심의 갈등은 타인이 장 발장이라는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게 되는 일화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처음 얼마간은 자기 자신을 지키기에 급급했다.


그 순간부터 그는 불투명한 앞날에 대해 일절 생각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걸어 잠그고, 행여 누군가 자기를 볼까 봐 촛불도 꺼버렸다.


하지만 그가 문을 잠그면서까지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던 것은 이미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눈을 가려 보지 못하게 하고자 했던 것은 이미 그의 얼굴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것은 양심이었다.


당신이 장 발장이라면.


과거의 고통을 덮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중이라면.


닮았다는 이유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될 다른 이를 위하여 스스로 법정에 나설 용기를 낼 수 있는가?


장 발장은 결국 자신의 양심과 신념을 따른다.


그리고 신념을 따르는 그의 모습은 일종의 숭고함 마저도 보여주는 듯하다.




삶을 살아가며 우리는 때로 양심과 신념을 잠시 눈 감고 싶은 순간을 맞이하곤 한다.


아마도 그런 순간에서 때때로 잠시 양심을 외면하고, 잠시간의 편리를 취한 경험도 없지 않을 터.


장 발장의 모습을 통해 양심과 신념을 지키는 것에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것임을.


그리고 그 용기를 통해 인간은 어쩌면 스스로를 비참함에서 구원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이 '레 미제라블'을 구원하는가?


"알프스의 밤바람이 아주 매섭지요. 굉장히 추웠을 겁니다, 선생."


주교가 '선생'이라고 말할 때마다 그 느낌이 얼마나 부드럽고 온화하던지 나그네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기까지 했다.


그에게 있어 전과자를 선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난파선의 조난자에게 건네주는 한 잔의 생명수와도 같은 것이었다.


주교의 따뜻한 말과 용서, 그리고 포용은 세상을 미워하던 장 발장의 마음을 녹여낸다.


생명수와 같았던 존중의 말은 장 발장에게 희망을 주었고, 은촛대를 훔친 그에게 베푼 용서는 양심과 신념을 따를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주교로부터 받은 사랑과 인류애는 레 미제라블이었던 장 발장이 또 다른 레 미제라블을 돕는 불씨가 되기도 한다.




자베르에게 장 발장은 하나의 거대한 수수께끼였다.


자비심이 충만한 한 범죄자가 있었다.

그는 온순하고 관대하며, 고분고분한 전과자다.


더욱이 그는 악을 선으로, 증오를 용서로 갚으며, 복수보다 차라리 동정을 택하는 인간이다.


장 발장은 원수를 파멸하는 대신 스스로 파멸의 길을 선택했으며, 자신을 죽이고자 했던 사람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이 남자는 고결한 선행에 온몸을 바쳤으며, 인간이 아닌 천사의 마음으로 세상을 대했다.


장 발장은 자신을 구원한 주교의 사랑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랑을 버림받은 팡틴을 거두고, 갈 곳 없는 코제트를 돌보고, 마차에 깔린 노인을 구하고, 자신을 쫓는 형사 자베르의 목숨까지도 구하는 커다란 자비와 사랑의 물결로서 갚아간다.


장 발장뿐만 아니라, 작품에서는 사랑으로 스스로를 구하고 다른 이를 구한 수많은 레 미제라블의 이야기가 나타난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딸을 구한 팡틴.


자유와 평등, 레 미제라블의 희망을 찾기 위해 기꺼이 거리로 나선 수많은 사람들.


이들 모두는 사랑과 헌신으로 타인을 구원하고, 또 스스로를 구원했던 것이다.


이러한 긴 이야기를 통해 위고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또한 사랑으로 서로를 구원한 이들의 이야기이리라.


그리고 사랑으로 구원하고 구원받을 때 그들은 더 이상 비참하고 불쌍한 '레 미제라블'이 아님을 위고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음을 확신하는 것이다."


위고가 남긴 한 마디는 수많은 작품을 통해, 특히 <레 미제라블>이라는 작품을 통해 그가 전하려는 이야기를 여실히 드러낸다. 


오래전 혁명의 그날 위고가 바랐던 것처럼.


사랑으로 서로를 보듬고, 누군가의 아픔과 비참함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


사랑으로 함께 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수많은 사랑의 이야기가 담긴 <레 미제라블>을 통해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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