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색] 하다 보니, 잘하는 것도 있더라

독서 골든벨이 내게 알려준 것

by woorisee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며 가장 자주 한 생각은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지?’에 대한 것이었다.

신입 때에는 그저 적응하기에 바빴고, 입사 이래 8년을 쭉 맡아왔던 업무는 ‘내가 해야 하는 일’과 ‘잘하는 일’에 대한 고민을 키웠으니 말이다.

공교롭게도 내게 주어진 업무는 대학 시절 내가 가장 자신 없어하고, 잘하지 못하던 분야였다.

공부도, 업무도 본능적으로 나와 맞지 않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지 않은가.

학창 시절 수학을 유난히 어려워하거나, 아무리 노력해도 언어영역이 취약한 것처럼 말이다.

‘제발 이것만은 아니었으면’하던 일이 주어지다니.

좌절과 절망도 잠시, 어쨌든 그 일을 해내야 하는 것은 나였다.


그렇게 무려 8년을 나는 피하고 싶던 바로 그 일의 담당자가 되었으며, 흘러가는 시간은 나름대로 내 편이 되었는지 업무에도 꽤 익숙해질 수 있었다.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8년이면 티끌 같은 노하우일지언정 제법 쌓였을 시간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익숙해지는 것과 잘하는 사이에는 조금, 어쩌면 꽤 많은 간극이 존재한다.

시간이 무언가를 익숙한 것으로는 만들어 줄 수 있다만, 그것을 잘하게 해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특히 그 일을 즐거운 것으로 만드는 것은 시간의 능력치를 벗어나는 일임에 분명하다.


안타깝게도 지난 8년의 시간 동안 나는 ‘무언가에 익숙한 사람’,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잘하는 사람’의 범주에는 속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물며 ‘즐겁게 일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업무는 바뀔 생각을 하지 않고, 시간은 흐르고...

‘퇴직의 순간까지 같은 업무만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위기감 아닌 위기감이 나를 찾아왔을 무렵, 내게도 인사이동의 시간이 찾아왔다.


새로 둥지를 튼 곳에서 나는 독서프로그램의 기획과 진행을 담당하게 되었고, 새 업무는 기존의 업무와는 정반대의 업무능력과 성향을 필요로 했다.


매일 정해진 업무가 있고, 안정적으로 흘러가던 예전의 업무에 비해 새로운 업무는 나의 주체적인 생각과 추진력. 때때로 참가자들 앞에서 사회를 보는 능력까지도 요구했던 것이다.


이때는 몰랐다.

내성적인 줄로만 알았던 나에게 이런 능력치가 있었을 줄은.

나도 꽤나 ‘잘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 시작은 도서관에서 진행한 독서 골든벨이었다.

새로 팀에 합류하였으니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우리도 골든벨 한 번 해볼까?’라는 팀장님의 말을 흔쾌히 받아들였던 나.


처음이라는 막막함과, 호응이 별로이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안은 채 마주한 행사장에서 나는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행사장에 삼삼오오 모여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한 문제 한 문제에 아쉬워하고 기뻐하는 그 모습.

반짝이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내향인의 모습을 벗고 기꺼이 그 시간에 몰입할 수 있었다.

실수할까 봐 긴장되던 마음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하던 마음도 어느새 사라지던 그 시간이 아직도 눈앞에 선명하다.


심지어는 리허설 모습을 지켜보신 관장님에게서 ‘홈쇼핑에서 물건을 팔아도 되겠다’는 이야기까지 들을 정도였으니 신나게 행사를 진행했던 것은 사실이었던 것 같다.


그때 주어진 칭찬과 인정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은 건가?’하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했고, 무엇보다 골든벨을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누구보다 설레고 즐거웠던 내 마음이 ‘이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다’를 알려주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아이디어가 많고,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생각만 하던, 마음에만 품어오던 일들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 감사한 마음까지 느끼며 일을 했으니 말이다.


다만 이 모든 시작을. 소질을 찾아가는 것은 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을 두려워하던 나에게 ‘처음이니까 망해도 괜찮아!’, ‘호응이 별로면 또 다른 걸 해보면 되지’라고 하셨던 팀장님의 한마디는 내가 알을 깰 용기를 주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느꼈던 안도의 감정은 아마도 아주 오랜 시간 생생하게 기억에 남을 듯하다.

이처럼 누구 못지않게 겁이 많고 걱정이 많은 나에게 ‘망해도 괜찮다’라는 한마디는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효과를 가진 격려의 한마디가 되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그 목소리는 내겐 어느 때보다도 든든했던 진정한 어른의 목소리였다.


기나 긴 막내 생활을 벗어나 신입 직원들을 맞이한 지금, 나 또한 그들에게 ‘괜찮다’라고 기꺼이 말해줄 수 있는 어른이기를 희망한다.


‘할 수 있을까?’라는 망설임과 ‘잘 될까?’라는 두려움의 갈림길에 서 있을 그들에게 ‘괜찮으니 일단 해봐’라는 한 마디는 다시금 길을 선명하게 바라보고 걸어갈 등불이 되어줄 테니 말이다.

이제는 안다.

세상에는 분명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음을.

스스로가 무용하게 느껴지는 시간을 버티고, 알을 깨기 전의 두려움을 견뎌내면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일이 찾아온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내 소질과 적성에 맞는 일은 의외로 내가 상상하지 못한 일일수도 있다는 것.

그렇기에 내 성격에 맞지 않을 것 같다고, 나는 못할 것 같다고 지레 맘을 닫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버티고, 견뎌서.

때로는 두려움과 망설임을 이겨내고 들어선 그 길에 정답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열린 마음과 누군가의 응원 한 마디로 발을 들여놓은 그곳에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과 보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1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안다.


앞으로도 나는 또 다른 내 적성을 찾아가 보려 한다.

실패하면 또 다른 걸 해 보리라 마음먹는다면 내게 두 번째 골든벨과 같은 적성이 나타날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리고 내 뒤를 밟아갈 이들에게도 ‘일의 행복과 즐거움’의 경험을 찾아갈 수 있도록 손 내밀어 주고 싶다.

그 과정이 쉽지 않은 길일지라도 한 걸음의 발길을 내디딜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기를.

그런 어른이 되어줄 수 있기를 바라본다.

수요일 연재
이전 06화[파란색] 21과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