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 사랑의 색

by woorisee

우리 가족이 10년 가까이 탔던 차가 있다.

나의 어린 시절부터 수험생 시절까지 함께 한 흰색 카니발.

그 차를 타고 어린 시절의 나는 안면도로, 거제도로, 강원도 떠나며 수없이 많은 추억을 쌓았더랬다.

여행길,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던 순간의 설렘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 시절 내 일기장에는 주말마다 가족들과 함께한 여행 이야기가 가득했고, 그때의 시간은 지금의 내가 때때로 서럽고, 또 때때로 외로운 세상살이를 이겨내는 힘이 되어주고 있음에 분명하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본격적인 수험생이 되면서부터 그 차는 그전만큼 온 가족을 태우고 여행을 자주 다니지는 못했지만, 매일 아침저녁으로 나의 등하교를 책임졌으니 그 역할은 충실히 한 셈이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매일 아빠가 운전해 주는 차에서 모자란 잠을 보충했고, 야간자율학습이 끝난 후에는 세상 무엇보다 맛있는 야식을 먹기도 했다.


이른 아침에 나선 등굣길에는 늘 5분 먼저 내려가 여름이면 에어컨을, 겨울이면 히터를 틀어두었던 마음.

밤늦은 시간 행여라도 배고플까 매일 간식거리를 고민하며 기다렸을 그 마음.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딸을 데리러 온 마음.

그 마음 덕분에 내 고등학교 3년의 시간은 외롭지 않고 든든한, 그래도 견딜만했던 시간으로 남아있다.

아빠의 마음이 담긴 간식은 내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었고 말이다.


공부를 하다 고된 하루의 끝에 차 안에서 먹던 간식은 내게 위로가 되고, 또 내일을 버틸 힘이 되어주었다.

물론 해마다 교복치마를 새로 맞추어야 했던 부작용은 있었지만 마음만은 행복했으니 그 대가였다 생각한다.


어느 날은 좋아하는 포테이토 피자가, 어느 날은 그 당시 유행했던 양념감자튀김이.

또 어느 날은 스쳐 지나가듯 먹고 싶다 말했던 과자가 차 안에 깜짝 선물처럼 준비되어있고는 했다.

집으로 가는 길, 차 안에서 먹는 간식들은 얼마나 맛이 있던지.

자정이 다 된 시간, 밤새 영업하는 삼겹살 집에서 먹었던 삼겹살의 맛과 삼겹살만큼이나 고소하게 남아있는 기억은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오늘은 아빠가 무슨 간식을 준비하셨을까?'라는, 어찌 보면 철없는 기대감을 가지고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매일을 한결같이 보내준 아빠의 사랑 덕분이 아니었을까.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잊지 못할 친구들과의 추억도 많지만, 매일을 함께 한 아빠와의 추억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내 소중한 시간의 한 조각이다.

그만큼 내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에는 빠질 수 없는 것이 아빠와 함께했던 소소한 매일의 시간들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친구와의 등하교가 추억에 남아있듯, 아빠는 3년 동안 친한 친구처럼 그 시간과 추억을 함께했다.

그렇게 3년의 시간 동안 오롯이 나에게 주어졌던 아빠의 사랑은 그렇게 가장 뾰족하고 예민한 시기를 무탈히 보내게 해 준 따뜻한 완충지대가 되어주었다.


그 시절의 아빠는 어떤 마음으로 딸과 함께 매일을 보냈을까?

등교하는 딸의 뒷모습을 보며, 늦은 밤 교문 앞에서 딸을 기다리며 아빠는 무슨 마음이었을지를 잠시 헤아려본다.

아마 나는 그 마음을 백 퍼센트 알 수는 없겠지만, 그 마음에서 전해진 사랑의 농도만큼은 백 퍼센트의 순도로 내게 전해졌음이 분명하다 말하고 싶다.


크나큰 사랑을 받았던 그 시절에도, 여전히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는 지금도 나는 그다지 살갑거나 애교가 많은 딸은 되지 못한다.

K장녀의 특징이라는 핑계로 얼버무려보는 나의 무심함은 분명 아빠의 사랑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이리라.

때로는 모진 말과 표정으로 가슴에 못을 박은 적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마 많은 부모와 자식의 사이가 그러하듯 나와 아빠의 관계를 표현하는 데에도 '애증'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더없이 소중하고 아끼지만 그렇기에 가끔의 상처가 더 아프게 느껴지기도 하는 관계 말이다.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에 첫 딸을 만난 아빠.

지금 내 나이즈음에는 어느덧 두 딸을 두게 된 아빠의 삶을 나는 상상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내 모든 마음과 사랑을 전한다는 것 또한 지금의 나로서는 불가능하게만 느껴지는 일이다.

그렇기에 아빠의 사랑이 더 대단하게 느껴지는 오늘이다.


'아버지, 이제야 깨달아요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

한 가수는 아버지의 삶을 이제야 깨달았다 이야기했지만, 솔직히 말하건대 나는 아직도 '아버지의 삶'을 깨닫지 못했다.

아마도 나는 그 삶을 온전히 깨달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아빠가 삶을 지나오며 느꼈을 희로애락과 아낌없는 사랑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아빠가 나에게 준 사랑을 오롯이 돌려드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랑의 깊이가 너무 깊기에.

그리고 그 사랑의 넓이 또한 한 없이 넓기에 나는 감히 그 사랑을 그대로 돌려드리지는 못할 것임이 분명하다.

다만 그 사랑에 충분히 감사하며, 받았던 그 마음의 일부라도 표현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수많은 아침과 밤을, 딸을 위한 간식을 싣고 달렸던 흰색 자동차.

그 흰색 자동차에 가장 무겁게 실린 것은 사랑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싣고 달렸던 그 시절의 흰색 카니발과, 운전석의 젊었던 아빠를 떠올려본다.


그 시간에 감사하고, 행복했던 마음을 잊지 않으며 이제는 사랑과 함께 응원의 마음을 보낼 수 있는 딸이 되고 싶다.


'더 이상 쓸쓸해하지 마요.

이제 나와 같이 가요.'


이제 나와 같이 걸어가자 응원하는 어느 노래가사처럼 말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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