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 21과 10

by woorisee

나는 사서다.

흔히 '사서 고생한다'라고 하는 그 사서가 바로 내가 될 줄이야.

내가 일하는 곳은 대학도서관으로, 교내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장소 중 하나이자 외부 방문객들이 오면 캠퍼스 투어 코스로 빠지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나는 대학도서관 사서가 되고 싶다는 대학시절의 꿈 한 가지를 이룬 셈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대학도서관들이 그러하듯 이곳 도서관 또한 '연구지원과 창의인재육성'의 사명을 띠고 '정보중심지'로서 그 역할을 하겠다는, 다소 어깨가 무거운 기관의 책임을 표방하고 있다.

대학에서 지식의 한 축을 담당하며,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꽤 멋진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대학에서 일하는 사서라니, 무언가 지적이고 유능해 보이는 것만 같은. 딱 그만큼의 감정으로 와닿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사서로서 보낸 시간이 쌓이며 체감한 것은 홈페이지에 적힌 그 장엄한 비전을 앞두고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생각을 떠올리는 빈도수가 늘어난 만큼, 내 업의 무게는 생각처럼 가볍지 않다는 것이었다.


2003년에 지금의 건물에 터를 잡은 도서관은 2023년 개관 20주년을 맞이하여 어엿한 청년이 되었고, 당시 도서관에서 기획 업무를 담당하던 나는 그렇게 도서관의 스무 살을 축하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안게 되었는데, 내 일터의 스무 살을 돌아보는 과정은 사서로서 내가 보낸 시간 또한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했다.


스무 페이지짜리 일기장에 나는 과연 어느 정도의 발자취로 남아있을까?

로비에 전시된 20년의 기록들을 바라보며 사서로서 내가 남긴 발걸음이 부디 너무 가벼운 발걸음이 아니기를.

누군가에게는 꽤 기쁘게 기억될 수 있는 발걸음이기를 소망하기도 했다.


도서관은 스무 살을 넘겼고, 내가 사서라는 업을 택한 지는 어느새 10년이 되었다.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배운 4년이라는 시간보다는 두 배 이상의 시간이 흘렀고, 초-중-고등학교로 이어지는 12년의 학창 시절과 비교해도 못지않게 긴 시간을 사서라는 이름표를 달고 보낸 것이다.

도서관이 간직한 시간의 일부에는 이제 나의 손길도 제법 묻어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요즘이기도 하다.


그 10년의 시간 중 첫 2년은 사회생활과 사서라는 직업에 적응하며 보냈던 것 같다.

졸업 후 거의 바로 입사를 했기에 업무를 도와주시는 조교선생님들, 심지어는 몇몇 근로학생들 보다도 어렸던 나에게 도서관은 크게만 느껴지는 곳이었다.

모르는 일은 왜 이리 많으며, 질문 한 번 하려면 왜 이리 식은땀이 나던지.

늘 남모르게 긴장하고 맘 졸이며 2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더랬다.


그다음 찾아온 3년여의 시간은 조금은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으로 남아있다.

아마 직장에서 3년 차즈음을 맞이했을 때 많이들 느끼는 감정이 아니었을까 싶은 직장에서의 사춘기.

제법 익숙해진 업무 사이에서 때때로 새로움을 향한 열정으로 불타올랐다가, 이내 매너리즘으로 식어버리곤 하던 그 시간.

내 일에 대한 회의감도 '열심히 해도 누가 알아줘?'라는 물음표를 던지며 그렇게 불쑥 고개를 내밀곤 했다.

사서라는 직업을, 도서관이라는 곳의 중요성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은 서러움은 3년 차의 나뿐만 아니라 그 시간을 보낸 그곳의 모든 사서들이 느낀 감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도서관은 돈만 쓰는 곳이라는(당연한 것 아닌가..!), 사서들이 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 않냐는(그럼 직접 해 보란 말이다..!) 이야기들을 전해 들을 때마다 우리는 모두 쓴웃음을 지어야 했으니 말이다.

젊은 패기와 3년이라는 시간의 익숙함 사이를 헤매던 내게 그 이야기들은 더 가슴 깊이 찌르는 비수가 되었다.

'열심히 책을 골라서 추천해 봐야 누가 알아줘?'

'이 업무도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겠지?'

내가 오늘 하는 이 일이 그때는 참 작고 볼품없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서로서 열 살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더 잘해보자 다시금 마음먹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도서관에서 마주한 사람들 덕분이 아니었을까.


자료실에, 로비에, 열람실에 자리 잡고 각자의 삶에 한 스푼의 노력을 더하는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자면 마음 한 구석에 꼿꼿하게 자리하던 회의감은 사라지고, '직업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차오르곤 하는 것이다.


준비한 행사에 즐겁게 참여하는 학생들의 얼굴, 책을 펼쳐놓고 눈을 반짝이며 토론하는 독서동아리 학생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이들의 시간이 가치 있다면, 이들이 이곳에서 의미를 찾아간다면 사서로서 내 직업도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마음이 절로 드니 말이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도서 추천 코너를 유심히 보는 누군가가, 어디선가 '쓸모없는 이벤트'라는 이야기를 듣곤 하는 독서 권장 프로그램 덕분에 책 읽기를 시작했다는 누군가가 분명 존재한다.

10년의 시간이 내게 알려준 것은, 사서의 모든 일이 결국 누군가에게는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것.

그렇기에 '사서 고생'은 제법 할만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존재의 위기를 경험하는 순간이면 늘 나는 도서관 안에서, 이용자들의 얼굴에서 나의 존재 의미를 찾아나갔고, 10년째 약효가 있으니 꽤나 효과가 있는 방법임에 틀림없다.


도서관에 대한, 그리고 사서에 대한 일종의 편견 아닌 편견은 아마 이 업에 종사하는 한 계속해서 안고 가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밀려오는 회의감과 작아지는 마음은 때때로 밀물처럼 밀려와 내 머릿속을 어지럽힐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작아지는 마음을 도서관에서 치유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하는 모든 일에 결국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도서관에서 버텨온 시간이 앞으로도 잘 버텨보라며 내게 선사한 마음의 굳은살인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는 근속 10년이 되면 5일간의 휴가를 준다.

조금은 특별한 그 휴가를 즐기며 나와 도서관의 시간을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아직도 크고 작은 실수들은 계속되며, 때로는 상처받아 마음이 '짜게 식는' 순간도 있지만, 사서만이 경험할 수 있는 이용자와의 유대를 느낄 때, 준비한 프로그램이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돌아올 때의 짜릿함과 '달콤함'의 순간도 분명 존재하기에 나와 도서관의 시간은 단맛과 짠맛이 함께하는 '단짠'의 시간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도서관의 상징 색인 파란색.

도서관 건물에서, 홈페이지에서 그 파란색을 바라본 시간만큼 사서로서 내 시간도 차곡차곡 때로는 달고, 때로는 짠맛으로 쌓여간다.


이러한 달고 짠 시간 속에서 지난 10년은 내게 사서라는 직업을 택한 것이 제법 괜찮은 일임을 느끼게 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제법 괜찮은 사서가 되기 위해 앞으로도 '사서 고생'을 더 해볼 만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얼핏 스쳐 지나간다.


10년이라는 터닝포인트를 넘어서며 기대감과 설렘, 그리고 질문이 함께한다.

20대의 도서관과, 열 살배기 사서인 나는 앞으로 어떠한 시간을 쌓아나가게 될까?


2025년. 스물두 살을 맞은 도서관, 열한 살을 맞은 사서가 조금은 더 따뜻하고, 진심 어린 이야기를 써내려 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앞으로도 쭉 기꺼이 '사서 고생'을 할 수 있는 사서로 존재할 수 있기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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