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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 Nov 03. 2017

운수 좋은 날

'눈썹'에 관해서

이 글은 10시 넘어서까지 야근하다가 집에 와서 그냥 자기 아쉬워서 극세사 이불 속에서 손과 얼굴만 대충 빼내어 쓰고 있다.


점점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 첫 출근 때는 6시 30분에 일어났는데, 이제는 7시에 일어난다. 그러다 오늘은 알람을 못 들어서 7시 25분에 일어났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회사에 도착하는 시간은 일정하다. 똑같이 씻고 화장하고 밥 먹고 나가는데 차이는 어디서 나는 걸까? 생각하면서 지하철을 탔다.


이번 주 야근의 주범이었던 보고서가 다행히 잘 통과됐다. 25분이나 늦게 일어났는데 평소랑 똑같이 출근하고 심지어 일도 잘되다니 오늘처럼 운이 좋은 날이 또 있을까! 신이 나서 복도를 지나 화장실에 갔다.


아, 눈썹을 놓고 왔다. 시간 단축의 비결은 눈썹이었던 것이다. 일찍이 李白을 비롯한 당 시인들은 미인을 묘사할 때 '풍성한 눈썹'을 강조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중문학도들을 실의에 빠뜨리던 신아사 출판사의 <중국 문학사>를 보면 눈썹에 대한 묘사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나는 중문과를 졸업했다.) 그런 눈썹을 집에 두고 왔다니.


이런 나의 심정을 눈썹이 없던 서양인 모나리자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눈썹이 다소 허전한 것을 인지하고 나서부터는 일도 잘 안 잡혔다. 사실 눈썹이라는 게 머리에 가려서 잘 보이지도 않고, 내 얼굴 빤히 쳐다보는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있나 보다. 다행히 나는 해골물을 마시지 않고 겨우 눈썹으로 깨달았으니 다행이다.  점심시간에 페이스샵에서 아이브로우 펜슬을 산 후 나의 마음은 비로소 안정되었다. 역시나 그 누구도 내가 눈썹을 안 그리고 온 사실, 새로 그렸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일도 눈썹을 놓고 갈 수는 없으니 오늘은 이만 여기서 자야겠다.


11월의 두 번째 날이다.


최민석 작가의 <베를린 일기> 문체로 써본 오늘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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