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도 전통주를 섹시하게 마시고 싶은 세 여자의 술 투어, 다섯 번째
지난번엔 신쏘의 비밀 아지트 '옳은'을 소개했으니, 이번엔 장 기자의 추천 시간이다. 술 가는데 음식 빼놓을 수 없다고, 그간 침샘을 자극할만한 맛난 음식들이 함께 했었지. 그래서 이번엔 조금 다르게 준비해 봤다. 오로지 전통주, 그중에서도 ‘미담’으로만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본격적으로 썰을 풀기에 앞서 이실직고 하나 하자면, 사실 나와 미담의 관계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불과 며칠 전 있었던 첫 만남에서 아주 그냥 홀라당 빠져 버리고 말았던 것. 그렇다고 내가 그리 호락호락한 여자는 아니란 말이지. 단 술이 좋다고 입이 마르고 닳도록 이야기하다가도 '너무 달아서 싫다', '너무 써서 싫다', '그냥 싫다'… 제 스스로는 까다로운 입맛의 소유자니까.
좀 더 이야기를 해보자면, 미담은 홍천에서 왔다. ‘아름다운 술’이라는 어여쁜 이름은 술을 빚는 조미담 씨의 이름에서 따왔단다. 미담은 우리 쌀을 사용한 데다가, 인공감미료를 넣지 않은 무첨가 술이다. 미담은 약주 4종, 탁주 4종으로 그 종류가 다양한데, 아직 우리는 서로 알아가고 있는 단계니까. 이번에 내게 허락된 건 총 2종으로, 미담 생탁주와 미담 약주이다.
첫 타자로는 바로 미담 약주. 향이 좋아 차마 삼키기 안타깝다는 석탄주(惜呑酒)를 복원한 술로, 찹쌀과 멥쌀을 섞어 빚는다. 이때 찹쌀의 양이 75%인데도 단맛이 자극적이지 않다는 점이 이 술의 매력 중 하나지. 누룩의 잡균을 제거하는 데 일반적으로 3~7일 정도 소요된다면, 미담 약주는 무려 두 달이 걸린다. 또, 발효만 3개월에서 6개월, 숙성기간 역시 3개월에서 6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술 하나 빚는 데에만 길게 보면 1년. 아주 귀하게 자란 녀석이다.
약주 특유의 맑은 황금빛은 여느 술과 마찬가지.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자면 달달한 꿀물처럼 화사한 노란빛이다. 한 모금 입안으로 품어보면 새콤달콤한 과일향이 목구멍 깊숙이 퍼진다. 쌀의 비율이 높은데도 곡물향 짙은 단맛은 없고, 숙성기간이 1년 가까이 되다 보니 산미는 도드라진다.
나와 신쏘는 가볍고, 산뜻한 화이트 와인을 떠올렸다. 여느 실력파 가수 못지않은 내공 탄탄한 걸그룹 같다고 했는데, 박 언니는 조금 다르다. 끝 맛에 묵직하고, 알코올 맛이 느껴지는 게 무려 짜릿하단다. 음식도 가리지 않고, 다 잘 어울릴 것 같다더니… 또 콕 집어준다. 박 언니의 추천은 미담 약주엔 맑은 조개탕이나 연포탕이다.
짜릿한 약주가 막걸리의 윗부분을 떠내어 100일 이상 숙성시킨 것이라면, 그 아랫부분이 지금부터 소개할 미담 생탁주이다. 생탁주라고 하니 당연히 열처리를 통한 살균 작업을 하지 않았을 테고, 그 말은 즉, 효모균이 그대로 살아있는 상태라는 것. 따라서 유통기한도 짧고, 매일 술맛이 조금씩 바뀐다. 이게 또 미담의 매력이지. 어제 마신 미담은 더 이상 오늘의 미담이 아니랄까?
첫인상은 부드러운 우유를 연상시키는데, 그보다는 좀 더 은은하게 노란빛이 돈다. 살짝 흔들어보니 '출렁', 이 녀석의 농후한 바디감이 잔을 집은 손가락 끝 하나하나에서 느껴진다. 특별히 탁주라고 해서 고소한 곡물향이 더 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약주랑 비슷한 과실향이 퍼진다.
입술을 가져다 대니 과일향이 좀 더 본격적이다. 셋 다 공통적이게 느낀 건 사과향. 신쏘는 곧장 레몬향도 난단다. 입안에 가득 채우는 바디감은 눈으로 봤던 그대로 묵직하니 농후하다. 박언니 말대로라면 입안을 과일로 가득 채워 넣은 느낌이다. 약주와 마찬가지로 산미가 돋보이고, 혀 끌에는 침전물이 까끌까끌 남는다. 게다가 여운도 길다. 미담 생탁주, 아주 은근슬쩍 자극적이다.
이번에 어떤 음식이 좋겠냐는 나의 질문에 박 언니 한동안 뜸을 들인다. 그러더니 굳이 음식이 필요 없단다. 그래도 술맛이 특별한 만큼 강한 맛의 김치나, 느끼한 파전은 피하고 싶다고. 굳이 하나는 골라보라며 계속 졸라대니 그제 서야 말한다. 시원한 동치미를 추천.
나의 미담을 향한 가슴앓이는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적어도 이 녀석의 8가지 모습을 모두 볼 때까지는 말이다. 아, 게다가 맛이 매일 조금씩 바뀐다니. 그마저도 내게는 이토록 아름다운걸.
장기자: 양조장 취재 몇 번 다녀온 거로 '나 술 좀 알아.' 폼 좀 잡다가 큰코다친 애송이 기자이다. 목표는 프로 애주가! 전통주 공부를 핑계로, 두 여자를 살살 꼬셔 신나게 술 투어를 다니고 있다.
신쏘: 듣기에도 생소한 전통주 소믈리에이다. 맨날 전통주만 마실 것 같지만, 주량에 대해 물어보니 '맥주 다섯 잔'이라고 얘기하는 우리의 드링킹 요정. 단순히 술이 좋아 시작한 게 눈 떠보니 업으로 삼고 있다.
박언니: 자타공인 애주가. 술 좋아하는 고주망태 집안에서 태어나 '난 절대 술은 안 마실 거야'라며 주문처럼 다짐했다지만, 막상 성인이 되어서 가장 먼저 사랑하게 된 것이 술이었단다. 느지막하게 열공모드에 돌입, 얼마 전에는 직접 일본으로 날아가 사케 소믈리에 자격증도 따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