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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 술 한잔 할까 Nov 22. 2016

두 달 전에 마셨던 와인을 찾아서

누구보다도 전통주를 섹시하게 마시고 싶은 세 여자의 술 투어 '우술까'

"장기자, 8편은 언제 나오는 거야?"


결국 나오고야 말았다. 닦달이라고는 일절 모르는 나의 두 여자인데. 두 달 가까이 나오지 않는 기사에 꽤나 속이 탔나보다. 게다가 이번 기사는 박 언니의 생일 기념 ‘홈 파티’ 기사였으니 더욱이 기다렸단다. 

두 달 전 우리는 파티를 했다

정확하게는 9월 끄트머리.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여름 더위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낮에는 덥고, 저녁에는 쌀쌀한 아주 애매모호한 날씨였다. 때마침 생일을 맞이한 박 언니를 위해 우리는 풍선을 불고, 고깔을 쓰고, 노래도 불렀다. 다음날이 되어서는 셋 다 앓아누웠더란다. 그 뒤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여태까지 한 글자도 쓰지 않았다. 
  
기사작성은 까맣게 잊은 채, 두 달이 훌쩍 흘러버렸다. 이제는 단풍도, 은행잎도 모두 우수수 떨어지는 늦가을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조만간 눈 내리는 한겨울에 반팔 입은 기사를 쓸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아주 급하게 준비했다. 이번 편은 우리의 홈 파티를 달아오르게 했던 ‘와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간단하게 한 잔 하자더니…

박 언니가 손수 준비한 음식들... 맛있어서 돼지처럼 먹었다

처음엔 박 언니의 생일을 축하할 겸 간단하게 와인이나 한 잔씩 하자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누구던가? 한 병씩 가져 오자더니 도합 맥주 18병을 가져온 무시무시한 여자들이다. 이번에도 그 남다른 스케일로 가볍게 한잔 하자던 것이 무려 홈 파티가 되어버렸다. 이날 셋이서 마신 와인을 곰곰이 떠올려봤는데, 도무지 가늠이 가질 않았다. 결국, 간추리고 간추려 세 여자의 입맛을 사로잡은 ‘한국와인 3종’으로 골라 봤다. 

  
우리가 마신 와인은 ▲영천 고도리 와이너리의 ‘고도리 화이트 와인 드라이’, ▲문경 오미나라 ‘오미로제 스틸’, ▲영동 컨츄리 와이너리의 ‘컨츄리 산머루 스위트’이다. 

이날의 와인들

본격적인 맛을 논하기에 앞서 한국와인에 대해 간단하게 말하자면, 한국에서 재배된 포도와 과실로 만드는 와인이다. 일반적으로 와인이라고 하면 유럽이나 미국 등을 떠올릴 테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경북 영천,충북 영동 등 포도 산지를 중심으로 와인을 생산한다. 또, 포도뿐 만 아니라 사과나 감, 오미자 등 국내에서 생산되는 신선한 재료들을 사용한 다채로운 종류의 와인이 있다. 


5점인 그 고도리가 아니야


첫 타자는 박 언니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은 영천 ‘고도리 화이트와인 드라이’이다. 고도리 와인은 그 이름이 참 독특하다. 처음 이 와인을 접한 사람들은 고스톱의 새 세 마리가 떠올라 ‘피식’ 웃기도 한다. 사실 ‘고도리’라는 이름은 마을 이름에서 따왔다. 영천에 가면 ‘고도 1리’, ‘고도 2리’라는 표지판을 볼 수 있는데,와인이 생산되는 마을 이름이 곧 와인의 이름이 되었다. 

고도리 화이트와인


박 언니는 작년에 ‘전통주갤러리’를 통해 처음 이 와인을 만났다고 한다.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첫인상은 별로였다고. 일단 ‘고도리’라는 이름이 언니에게는 너무나 촌스러운데다가, 한국와인에 대한 쥐똥만큼도 기대가 없었단다. 막상 마시고 난 후에는 입 안 가득 퍼진 풍부한 과실향에 한국와인을 다시 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제품은 100퍼센트 거봉을 사용한다. 어쩐지 독특한 풍미가 느껴질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는데, 생각보다 심플하다. 기본적으로 화이트 와인이 가져야할 향기는 모두 가지고 있다. 여기에 가벼운 탄산감과 더불어 향긋한 과일향이 인상적이다. 또, 한국와인이라고 하면 굉장히 달콤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의외로 별로 달지 않다. 약간의 쌉싸름하고, 새콤함 덕분에 입안에 침이 돈다. 마시기만은 아까운 술. 신쏘는 해산물 요리에 사용하고 싶다고. 


예쁘면 다 좋아, 그래서 오미로제가 좋아


아, 대박. 맛이고 뭐고 일단 떠나서 오미로제는 그냥 내 스타일. 얇고 길게 쭉 뻗은 병 속에는 보석처럼 와인이 찰랑찰랑. 레드 와인처럼 노골적이게 자극적이지도, 화이트 와인처럼 지나치게 청순하지도 않은 아름다운 루비색의 로제다. 마음으로는 홈 파티이니 오미로제 스파클링 와인을 준비하고 싶었다. 다만 나의 재정상황이 그리 넉넉지 않아 스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언니, 미안해. 돈을 아낀 건 아니야. 월급 나오면 사줄게.

오미로제 스틸 와인

오미로제는 무려 오미자로 만들었다. 긴 말이 필요 없이 한입만 마셔 봐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포도와는 완전히 전혀 다른 향이 느껴진다. 첫 맛은 신맛이 강하고, 끝 맛은 적당히 씁쓸함이 입안에 감돈다. 신쏘는 오미자의 단맛·신맛·쓴맛·짠맛·매운맛 이 다섯 가지 맛을 모두 살린 술이라며, 엄마가 만들어준 오미자차가 생각난다고 했다. 오미자의 본연의 향으로, 오미자청이 숙성해서 살짝 알코올 맛이 날 때랑 비슷하다고. 
  
이날 오미로제는 박 언니가 준비한 립 스테이크와 환상 궁합이었다. 워낙에 내가 립을 환장하고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박 언니의 말대로 오미자의 향긋함이 입안을 깔끔하게 씻어내 다음 립을 하나 더 먹을 수 있도록 한다. 리뷰를 쓰고 있으니 입에 침이 고인다. 지금 당장 맛볼 수 있다면 그곳으로 달려갈 텐데… 


안주 따윈 필요 없어


컨츄리 산머루 스위트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산머루를 사용하여 만든 와인이다. 산머루는 포도보다는 작고 껍질이 두껍다. 덕분에 수분이 더 적고, 당분이 농축되어 있어 포도보다 양조하기가 편하고, 한국의 특징을 더 살릴 수 있다는 평도 받고 있다. 
 

컨츄리 산머루 스위트

달콤한 레드와인으로, 일단 맛있다. 풍미나 향에서도 포도와는 다른 머루의 맛이 느껴지는데, 이게 좀 독특하다고 해야 하나? 색다르다. 박 언니는 포도 농축액의 맛과 바디감이 느껴진다고 말하더라. 확실히 타닌감 있는 레드와인은 전혀 다른 독자적인 자아를 가지고 있다. 과실 그대로의 진하고, 걸쭉한 맛이다.그래, 와인과 머루주의 중간이라고 표현하는 게 좋겠다. 혀 전체를 묵직하게 자극하는 단맛에 쭉쭉 들어간다. 안주가 필요 없다.


무엇보다도 이날 신쏘는 이 와인을 가지고 티라미스를 만들어왔다. 커피대신 와인을 사용했는데, 위에 와인에 맞춰 라즈베리 파우더를 뿌렸다가 망쳤다며, 울상을 짓기도 했다. 나중에는 그럴 듯한 티라미스 모양의 뭔가가 되었다. 확실히 이 와인 특유의 깊고 진한 단맛이 티라미스의 부드러운 식감과 더불어 마스카포네의 제대로 어우러진다. 맛있었으니 합격!

지금보니 플레이팅 각이 장난 없네

벌써 두 달 전이지만 와인 맛이 근사했던 것은 여전히 생생하다. 더불어 우리 박 언니가 손수 차려준 화려한 음식들도 배부르게 먹었지. 사진 속 휘황찬란한 음식들이 모두 박 언니의 손끝에서 나왔다. 본인 생일상을 차리느라 제대로 고생을 했다. 와인 한 병 달랑 들고 간 게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 

설정샷 아님. 진짜 재밌게 놀고 있는 거

어찌됐든 우리는 우리만의 파티를 즐겼다. 파티 후 된통 감기몸살을 앓았는데도 참 기분 좋은 기억이다.기사까지 빨리 나왔으면 더 좋았을 것을…  마무리는 박 언니, 미안해. 



<세 여자는 누구?>

장기자: 조장 취재 몇 번 다녀온 거로 '나 술 좀 알아.' 폼 좀 잡다가 큰코다친 애송이 기자이다. 목표는 프로 애주가! 전통주 공부를 핑계로 두 여자를 살살 꼬셔 '우술까(우리_술 한잔 할까?)'를 기획, 신나게 술 투어를 다니고 있다.  


박언니: 자타공인 애주가. 술 좋아하는 고주망태 집안에서 태어나 '난 절대 술은 안 마실 거야'라며 주문처럼 다짐했다지만, 막상 성인이 되어서 가장 먼저 사랑하게 된 것이 술이었단다. 느지막하게 열공모드에 돌입, 얼마 전에는 직접 일본으로 날아가 사케 소믈리에 자격증도 따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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