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도 전통주를 섹시하게 마시고 싶은 세 여자의 술 투어 ‘우술까’
"도대체 어디서 마셔 볼 수 있어요?"
‘우리_술 한잔 할까?’를 진행한지도 벌써 반년이다. 이제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게 전통주에 대해 묻는다. 질문도 참 가지각색. 그 중에서도 어디서 마실 수 있는지가 가장 많다. 이왕이면 분위기 좋고, 근사한 곳으로 알려달라고들 한다. 조금만 살펴보면 서울에서도 전국 각지의 전통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이 많다. 레스토랑, 펍, 바 등 그 형태도 아주 다양하게 말이다.
이번에는 젊음과 낭만이 폭발하는 홍대 한가운데서 전통주를 잔뜩 마시고 왔다. 때마침 지난 17일부터 30일까지 전통주점 20곳이 ‘우리술 투게더 위크’라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덕분에 아무생각 없이 놀러갔다가 행사 덕을 아주 톡톡히 보고 왔다.
특히 행사 기간 동안 3곳 이상의 전통주점을 방문해 스템프 도장을 받으면 고급 증류주를 받을 수 있다. 솟아나는 도전의식. 우리도 행사에 참여했다. 목표는 단 하루 만에 전통주점 세 곳을 마스터하는 것. 이날 우리는 전통주점 하나하나를 돌 때마다 스탬프를 받고, 한껏 취했다. 마지막에는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각자 집에 가기 바빴던 것 같다.
우리가 다녀온 곳은 얼쑤, 술그리다, 산울림 1992이다. 모두 홍대 일대에 있다. 혹시라도 홍대에서 근사한 전통주점을 찾고 있다면 이 세 곳을 검색해 보시길.
■ 매월 다른 메뉴 구성, 제철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얼쑤'
첫 번째 타자는 홍대 대표 전통주점으로 꼽히는 얼쑤다. 밤이 되면 더 사람이 북적거리는 홍대입구역 8번 출구 쪽에 있다. 더 자세하게는 8번 출구에서 나와 좌회전, 골목 끝자락이다. 한동안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에는 이곳을 다녀왔다는 친구들의 소식이 자주 올라왔었다. 사진 속 얼쑤는 참 근사했다. 드넓은 창에는 휘황찬란한 홍대의 밤이 담겨 있었고, 은은하게 비추는 노란빛 조명 아래에는 전통주와 음식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 고고하면서도 아늑하게 보여 머릿속에 남았다. 이후 한번쯤은 꼭 가봐야지, 가봐야지 했는데 결국 이제야 오게 되었다.
얼쑤는 차분하고, 펀안한 분위기이다. 사람들로 가득한데도 조용히 담소를 나누는 편이라 시끄럽지가 않다. 덕분에 들어서자마자 긴장하고 있던 온몸이 차즘 풀어진다. 분위기 탓일까? 항상 자신의 술 취향을 고집하는 우리도 이곳에서는 조성주 오너셰프에게 술과 음식 모두 추천을 부탁했다.
조 셰프는 육회와 해창막걸리를 추천했다. 나이스 초이스. 이날 나는 잠시 사그라진 추위를 알아채지 못하고, 패딩에 목도리에 온 몸을 꽁꽁 싸매고 나왔다. 홍대를 가기 위한 긴 여정은 후끈한 지하철이 함께했고, 도착했을 때는 덥다 못해 갈증이 차올라 헉헉 거렸다. 마셔본 사람은 알겠지만, 목마름 끝에 마시는 시원한 해창막걸리는 아주 예술이다. 산뜻하고 깔끔해서 그 어느 맥주와 겨뤄도 손색이 없다. 여기에 부드러운 식감의 육회는 달작지근한 배 한 점과 함께 먹으니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이곳에서는 막걸리를 비롯해 약주와 전통소주를 판매한다. 대략 40여 종 정도로, 조선 3대 명주로 꼽히는 감홍로, 이강주, 죽력고도 있다. 전통주를 잘 모르는 고객들을 위해 술에 대한 설명을 따로 적어둔 술 메뉴판을 제공하는 친절함까지 겸비했다. 술도 술이지만, 매월 음식이 달라진다는 점도 재밌다. 제철을 맞은 신선한 재료를 사용한 음식을 판매하고, 그 종류 역시 다양한 편이다. 아무래도 다음 달 역시 얼쑤에 가야겠다. 1월 제철 음식이 뭐였더라? 이렇게 또 내년을 기다리는 이유가 하나 늘었다.
얼쑤
주소: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31-13 2층
영업시간: 월-토(일요일 휴무)
문의: 02-333-1218
■ 전통주가 처음이라면, 170여 종의 술이 있는 '술그리다'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홍대에 이렇게 멋진 전통주 바가 있을 줄이야. 술그리다는 홍대라고 하기 보다는 합정역과 더 가깝다. 테이블 서너개의 작고 아담한 규모임에도 무려 170여 종에 달하는 술을 취급하고 있다. 심지어 그 종류도 전통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수입 맥주까지 두루두루 갖추고 있는 아주 속이 실한 곳이다. 특히 가게 내부 한쪽 벽면에는 갖가지 술이 잔뜩 배치 되어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는 각종 피규어와 인테리어 소품들이 놓여있다. 지금은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트리도 반짝반짝 빛을 내며 자리 잡고 있어 아늑함도, 분위기도 배가 되었다.
술 그리다는 ‘술을 즐기고, 마시기 위해 특화된 곳’이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이용하여 듣고 싶은 음악을 손님이 자유롭게 선정할 수 있고, 심지어는 반려견까지 함께 입장이 가능하다. 실제로 술그리다에는 김지윤 대표가 키우는 반려견이자, 마스코트를 담당하고 있는 ‘쭈리’를 만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전통주에 있어서 자신의 취향이나 입맛을 찾고 싶다면 딱 제격이다. 이곳에서는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에 앞서서 시음주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170여 종의 술을 전부 시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취향이나, 마시고 싶은 주종을 정하고 나면 술그리다의 김지윤 대표님이 그에 어울릴만한 술 몇 가지를 추천해 준다. 여기에 술에 대한 재밌는 설명은 보너스.
이날 우리는 막걸리 식초를 넣어 끓인 식초라면에 홍삼명주를 마셨다. 자타공인 초딩 입맛인 내게 홍삼명주라니, 제대로 추천을 해주신 게 맞나 했더니 웬 뜨거운 물이 함께 나왔다. 알고 보니 따뜻하게 데워서 마시란다. 뜨거운 물에 홍삼명주를 퐁당. 술이 따뜻해질 때까지 몇 분 기다린 후, 의심 반 심정으로 잔에 따르니 맥주마냥 거품이 쭈욱 올라온다. 우리 모두 “오! 신기해”를 연발했다.
따뜻하게 데워진 홍삼명주는 상당히 부드럽다. 한약 냄새는 질색하는 나도 민망할 만큼이나 꿀꺽꿀꺽 잘만 마셨다. 홍삼 특유의 약재 향기는 코를 찌르듯 자극적이지 않고, 오히려 감칠맛으로 입맛을 돋운다. 거품이 사르르 빠지고 나면 붉은 빛이 감도는 갈색의 고운빛깔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시큼할 줄 알았던 식초라면은 오히려 김치찌개를 먹는 것처럼 국물 한 입에 속이 확 풀린다. 술을 마시면서 동시에 해장을 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게다가 탱글탱글한 면발은 시간이 지나도 퍼지지 않고 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다. 이후로 집에서 식초를 넣어 몇 번이나 끓여 먹어봤는데, 도무지 그 맛이 똑같이 나오지를 않는다. 역시 비결은 막걸리 식초인가보다.
술그리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445-9
영업시간: 연중무휴
문의: 02-335-0047
■ 확실한 맛과 분위기, '산울림 1992'
얼추 나와 나이가 비슷한 산울림 1992는 친구들과 한상 시켜놓고 모여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곳이다. 회사 상사, 지나간 전 남자친구, 최근에 인기 있는 드라마 이야기 같은 시시콜콜한 수다를 한바탕 떨면서 먹고, 마시고 싶다.
이곳은 무려 25년 간 홍대에 있던 터주 대감이다. 원래는 그다지 특이점 없는 흔한 전통주점이었는데, 최근에 리뉴얼을 통해 새롭게 탈바꿈했다. 정확한 위치는 홍대 정문 삼거리에서 신촌방향, 산울림 소극장 근처이다. 기존의 전통적인 디자인의 고즈넉한 분위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오픈키친 형태의 바 테이블을 감각적으로 살려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이 든다. 특히 이 바 테이블에서만 주문할 수 있는 코스 메뉴가 따로 마려되어 있으니, 이왕이면 바 테이블에 앉는 것을 추천한다.
이날 우리는 바 테이블의 코스메뉴가 아닌 한상차림을 주문했다. 육사시미와 닭산적, 새우전복장, 갑오징어 회, 보쌈 등을 비롯한 총 7가지의 음식이 올라간 반상이 나왔다. “과연 우리가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걱정도 했는데, 역시 괜한 걱정. 알 사람들은 알 테지만, 잘 먹는 거에 있어서는 한 가닥 하는 여자들이다. 그 중에서도 육사시미는 아주 예술. 도축한지 3일된 아주 싱싱한 소고기를 사용한다. 쫄깃하면서도 부드럽게 널어가는 식감은 한번 맛보면 계속 젓가락질을 하게 만든다. 그 위에 올린 노란색 고명은 튀긴 유자인데, 고기와 함께 먹으면 향긋함이 은은하게 올라온다.
여기에 술아 과하주 한잔, 캬. 과하주는 '여름을 나는 술'이라는 의미이다. 여름철 높은 온도로 인하여 술이 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소주나 증류주를 넣어 발효를 늦추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술이다. 주정강화 와인인 포트와인과 같은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술아를 처음 마셔본 것도 아닌데, 이렇게나 맛 좋은 술이라는 걸 이날 산울림 1992에서 깨달았다. 전반적으로 단맛이 강하지만 산뜻한 유자가 올라간 육사시미와 함께 먹으니 부담스럽지 않다. 오히려 유자의 씁쓰름함이 살짝 느껴져 술과 잘 조화를 이룬다. 20도라는 높은 도수에도 부드럽고 편안해 정말이지 술술 들어간다. 역시 술맛은 어떤 음식과 함께 하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좋은 음식과 좋은 술이 만나 입안에서 시너지 폭발. 지금도 침이 고인다. 줄줄.
산울림 1992
주소: 서울시 마포구 창전동 5-138
영업시간: 월-토(일요일 휴무)
문의: 02-334-0118
세상은 넓고 전통주를 즐길 수 있는 곳도 참 많다. 문제는 잘 모르고 있다는 것 뿐. 이번 ‘우리술 투게더 위크’는 어디서 전통주를 어떻게 즐기면 좋을지 알려주는 꿀 같은 기회다. 이번에 우리가 방문했던 얼쑤, 술그리다, 산울림 1992 외에도 ▲무명집, ▲술개구리, ▲바이삼공, ▲모던주막 두두, ▲우리술바 작(酌), ▲월향(이태원점), ▲한국술집 안씨막걸리, ▲술이송송, ▲담은, ▲셰막(강남점), ▲백곰막걸리 & 양조장, ▲부부펍, ▲별주막, ▲왕탁, ▲안중, ▲정이주가, ▲수불(서래마을점)까지 총 20개의 국내 대표 전통주점이 참여한다. 행사 포스터 또는 할인 쿠폰을 소지하고 방문한 고객을 대상으로 할인 혜택 및 다양한 증정 행사를 제공할 예정이다. 행사 포스터 및 할인 쿠폰 이미지는 우리술 포털에서 다운로드 받으면 된다.
<세 여자는 누구?>
장기자: 양조장 취재 몇 번 다녀온 거로 '나 술 좀 알아.' 폼 좀 잡다가 큰코다친 애송이 기자이다. 목표는 프로 애주가! 전통주 공부를 핑계로 두 여자를 살살 꼬셔 '우술까(우리_술 한잔 할까?)'를 기획, 신나게 술 투어를 다니고 있다.
신쏘: 듣기에도 생소한 전통주 소믈리에이다. 맨날 전통주만 마실 것 같지만, 주량에 대해 물어보니 '맥주 다섯 잔'이라고 얘기하는 우리의 드링킹 요정. 단순히 술이 좋아 시작한 게 눈 떠보니 업으로 삼고 있다.
박언니: 자타공인 애주가. 술 좋아하는 고주망태 집안에서 태어나 '난 절대 술은 안 마실 거야'라며 주문처럼 다짐했다지만, 막상 성인이 되어서 가장 먼저 사랑하게 된 것이 술이었단다. 느지막하게 열공모드에 돌입, 얼마 전에는 직접 일본으로 날아가 사케 소믈리에 자격증도 따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