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도 전통주를 섹시하게 마시고 싶은 세 여자의 술 투어 '우술까'
"당신의 2016년은 어떤 한해였을까?"
나의 한해는 참 정신없는 병신년이었다. '우술까'를 시작하면 좋아하는 전통주를 실컷 마시면서 놀고, 즐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현실은 수 없이 많은 야근과 미팅의 연속이더라. 정말이지 세상 제일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올해는 한국와인으로 홈 파티도 열고, 전통주점도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여름에는 양조장으로 바캉스도 떠났는데, 이 일화는 'SBS라디오 김창완의 아침창'에 우리 세 여자가 출연해 소개도 했었다. 생각해보면 단 한편도 순탄했던 적이 없었다. 매번 우여곡절 끝에 한편, 한편을 완성했다. 고생 꽤나 한 덕분인지 요즘에는 우리를 알아봐주는 사람들도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행여나 누군가에게 칭찬이라도 들을 때면 아주 좋아 죽겠다. 그러니 만나면 칭찬 좀 해주시길…
어찌됐든 우리는 10편째 우술까를 진행하고 있고, 2016년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제 며칠 뒤면 2017년이 온다. 한해의 마지막, 우리에게 가장 어울릴만한 송년회를 열기로 했다
송년회라더니…
근사한 음식과 술을 마시며, 수다나 한바탕 늘어놓는 파티를 예상했다면 오산. 이번에는 술을 마시는 대신 술을 빚었다. 2016 병신년에 겪었던 희로애락을 모두 담아서 말이다. 어설프게 말고, 본격적으로 술을 빚기 위해 판교에 위치한 '진향우리술교육원'도 찾았다. 이곳 안진옥 원장님께 술에 대한 설명도 듣고, 차근차근 술을 만들었다.
우리가 빚은은 술은 '도소주'이다. 해마다 주기적으로 마시는 세시주로, 정초에 마시는 술이다. 온 가족이 둘러 앉아 함께 나눠 마시는 찬술로, 어린 사람부터 먼저 마시기 시작하여 차례로 나이가 많은 사람 순서로 마신다. 도소주라는 이름은 '사악한 기운을 잡는 술' 또는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는 술', '악귀를 물리치는 술'쯤으로 해석된다. 우리 역시 새해 우술까에게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술을 빚었다. 무엇보다도 '우술까 대박'을 기원하면서
말 좀 해주지… 힘든 거라고
도소주는 다 만들어진 청주에 방풍과 산초, 육계피, 대황, 길경, 천오, 백출, 호장근, 전초, 오두, 부자 등의 다양한 약재를 우린 물을 넣고 끓이는 방식으로 만든다. 이때 알코올을 날아가게 하여 아이들도 마실 수 있는 술이 된다. 사실 '다 만들어진 청주를 구해다가 끓이기만 할까?' 고민도 했지만, 지성이면 감천이겠지. 정성을 듬뿍 넣어 '우술까 대박'을 하루라도 빨리 맞이할 수 있도록 청주부터 빚었다.
자, 밑술부터 만들어야지. 밑술을 만들 때는 죽, 백설기, 구멍떡, 범벅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이 중에서 우리는 범벅으로 선택했다. 빨리 만들 수 있고, 초보자들도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란다. 우선 쌀가루에 뜨거운 물을 넣어 범벅을 만든다. 여기에 누룩을 넣고 골고루 저어주면 된다. 힘 좀 쓰는 편인데도 되직한 범벅을 저어주는 건 진심으로 만만치 않았다. 열심히 범벅을 젓다가 어깨에 담이 왔을 정도. 진즉 운동 좀 해둘걸. 안 쓰던 몸 갑자기 쓰려니 당최 따라주질 않는다.
누룩이 골고루 섞인 범벅은 항아리에 담아 발효시킨다. 대략 3일 가량을 발효 시켰는데, 많은 효모를 얻기 위해서는 하루에 한 번씩 꼭 저어주어야 한다. 이건 집 가까운 박 언니의 몫. 핸드폰 알람까지 맞춰가며 술을 저어주었다고 했다
밑술을 만든 지 3일 후, 박 언니에게서 '뭉쳐!'라는 메시지가 왔다. 효모가 잘도 번식해서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우리는 곧장 다시 판교로 모였다. 이제는 덧술을 할 차례이다. 먼저, 잘 불린 쌀을 찜기에 담아 한 시간동안 찐다. 10분가량 뜸을 들인 뒤 꺼내 차게 식히면 고두밥이 완성된다. 이 고두밥이 진짜 갑이다. 엄청 맛있다. 아마 신쏘가 말리지 않았으면 술 만들 것도 없이 계속 주워 먹었겠지.
고두밥에 물과 만들어 둔 밑술을 부어서 저어준 뒤에 다시 항아리에 담으면 모든 작업이 끝이 난다. 이제 기다림만이 남았을 뿐. 항아리에 도소주라는 라벨도 붙이고, '우술까 대박'이라는 우리의 소망도 적었다. 병신년에 빚었으니 원숭이도 짜잔! 우리 세 여자가 처음으로 빚은 술인 만큼 기도 잔뜩 불어 넣었다
이번에도 관리는 박 언니가 맡았다. 집 가까운 자의 숙명이랄까? 따뜻한 실내에서 약 2주가량 열심히 발효를 시켰다. 언제 술이 다되나 뚜껑을 열어 냄새도 맡아가며 애지중지 다뤘단다. 술 내음이 코를 간질일 때쯤, 맛을 보니 신맛도 강하지 않고 달달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술을 거를 때가 되었다 싶어 마지막으로 세 여자가 모였다.
항아리를 낑낑대며 올려놓자 안진옥 원장님께서 직접 용수를 꺼내 항아리에 박아주셨다. 용수는 술을 거르기 위해 대나무나 싸리나무 등을 엮어 만든 전통 여과도구이다. 용수를 박은 뒤, 한참을 기다리니 맑은 술이 올라왔다. 이제 약재를 우려 놓았던 물과 섞어 끓여 마시기만 하면 된다.
우리의 다사다난했던 한해가 그대로 담긴 도소주. 아직 우리 세 여자도 맛을 보지는 못했다. 이 술은 2017년 새해가 밝으면, 좋은 사람들을 불러 나눠마시기로 했다. 지난해 감사했다는 뜻으로, 우리의 한해를 고스란히 선물하려한다. 물론, 맛은 장담 못하지만.
<세 여자는 누구?>
장기자: 양조장 취재 몇 번 다녀온 거로 '나 술 좀 알아.' 폼 좀 잡다가 큰코다친 애송이 기자이다. 목표는 프로 애주가! 전통주 공부를 핑계로 두 여자를 살살 꼬셔 '우술까(우리_술 한잔 할까?)'를 기획, 신나게 술 투어를 다니고 있다.
신쏘: 듣기에도 생소한 전통주 소믈리에이다. 맨날 전통주만 마실 것 같지만, 주량에 대해 물어보니 '맥주 다섯 잔'이라고 얘기하는 우리의 드링킹 요정. 단순히 술이 좋아 시작한 게 눈 떠보니 업으로 삼고 있다.
박언니: 자타공인 애주가. 술 좋아하는 고주망태 집안에서 태어나 '난 절대 술은 안 마실 거야'라며 주문처럼 다짐했다지만, 막상 성인이 되어서 가장 먼저 사랑하게 된 것이 술이다. 느지막하게 열공모드에 돌입, 얼마 전에는 직접 일본으로 날아가 사케 소믈리에 자격증도 따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