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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 술 한잔 할까 Nov 16. 2016

세 여자의 반란… 우리도 맥주를 마신다!

누구보다도 전통주를 섹시하게 마시고 싶은 세 여자의 술 투어, 일곱 번째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더위에 헉헉거렸던 것 같은데, 이젠 따뜻한 니트를 입는다. 더 추워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나서야만 했다. 시원한 바깥공기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고 싶었으니까. 두 여자와 상의 끝에 부랴부랴 이것저것 잔뜩 챙겨 들었다. 목적지는 도심을 떠난 외곽, 이번 편은 피크닉이다.

'흥! 우리는 전통주만 마시는 줄 알았지?'

잔뜩 짊어지고, 고생해도 보람있었던 세 여자의 피크닉

이번 편은 유난히 기획 단계부터 어려움이 많았다. 보통은 몇 분이면 끝나는 술 선정마저도 꽤나 애를 먹었다. 주제가 피크닉, 아무래도 야외이다 보니 쌀쌀한 날씨에 맞춰 소주가 좋겠다고 하다가도, 흥이 넘치는 막걸리가 좋겠다는 등 참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몇 번의 신경전 끝에 선정을 마쳤다.

무려 '맥주 리뷰'이다. 우리가 맥주를 마신다!! 그것도 쌀을 사용한 맥주 말이다.

각자 하나씩만 들고 오자더니… 다 모으니 총 18병

이날 우리가 준비한 맥주는 종류만 해도 여섯 가지. 국적도 미국부터 베트남, 스페인, 일본 등 아주 다양하다. 누가 볼까 민망할 정도로 많길래 병 개수를 따져보니 무려 18병이다. 그중에서도 ▲배상면주가의 'R4(이하 알포)', ▲베트남 '사이공 맥주', ▲일본 '히타치노 레드 라이스'와 ▲'고시히카리 맥주' 4종만 자체적으로 선별했다.


특별한 선별 기준이 있냐고? 그럴 리가. 그냥 세 여자의 취향이 기준이자, 전부다.


'요리 봐도, 조리 봐도 맥주인걸'


메인은 배상면주가의 알포. 보리 대신 쌀과 홉으로 만든 술이다. 맛이며, 색이며 요리조리 봐도 맥주인데, 사실 따지고 보면 보리를 가공한 맥아를 전혀 넣지 않았기 때문에 맥주라고 할 수는 없단다. 실제로 병을 살펴보니 주종이 맥주가 아닌 '청주'라고 표기돼 있다.

이날의 메인 알포 한잔!

요리조리 아무리 살펴봐도 분명 맥주인데, 아니라고 하니 헷갈리기 시작한다. 역시 맥아의 비율이니, 주세법이니 하는 머리 아픈 것들은 딱 질색이다. 복잡한 걸 싫어하는 우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날 우리는 이 녀석을 맥주라고 생각하고 마셨다.


쓴맛이 적은 데다가 깔끔한 알포는 낮술로, 그것도 야외에서 마시기엔 산뜻하니 제격이다. 시원한 바람에 알포로 목을 축이니 스트레스 해소에도 아주 직방. 이 순간만큼은 마감이고, 취재고 다 뒷전이니, 마음까지 개운했다.


아로마 홉이 들어가서인지 에일 맥주가 생각나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쌀 내음이 감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맥주보다는 청주 같다는 평도 있는데, 박 언니는 그 정도 표현은 좀 과한 것 같다며, 일침을 날렸다. 정확하게는 청주 향이 나는 맥주 정도랄까? 독특한 건 사실이지만, 분명 맥주 맛이다. 특히 알포는 탄산이 적기 때문에 온도가 생명! 무조건 차갑게 해서 마셔야 맛있다. 알코올은 일반 맥주보다 높은 5.8%. 그렇다고 알코올이 강하게 느껴지는 건 아니다. 

우리의 피크닉 음식들을 공개한다

박 언니는 알포는 회나 초밥, 버터구이 전복, 조개찜 같은 요리에 잘 어울릴 것 같단다. 실제로 이날 박 언니가 연어 초밥을 준비해온 덕에 증명은 완료. 박 언니의 의견에 살짝 숟가락 좀 얹자면 담백한 생선보다는 연어나 방어, 숭어처럼 기름기가 많은 종을 추천하겠다. 기름기가 많은 생선은 어느 정도 먹다 보면 쉽게 질릴 수 있는데, 알포의 깔끔하게 똑 떨어지는 맛과 적당한 탄산은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 알포에 회 한 점. 진짜 밑도 끝도 없이 먹게 만드는 조합이다. 찰떡궁합. 스읍, 또 침이 고이네.


'나머지 맥주 3종, 그 맛은?'


알포와 고시히카리는 오직 쌀로만 만들었고, 나머지 2종 히타치노 레드 라이스와 사이공 맥주는 쌀을 넣어 풍미를 더 한 맥주이다. 맛도 미묘하게 다른데, 아무래도 알포와 고시히카리는 상대적으로 쌀 내음이 짙고 부드러운 반면, 히타치노 레드 라이스와 사이공 맥주는 맥주의 느낌이 잘 살아 있어 이질감이 적고, 마시기가 편하다. 


이날 우리의 호불호를 가장 타지 않았던 건 바로 히타치노 레드 라이스이다. 무엇보다도 병이 참 귀엽게 생겼는데, 속은 또 반전 매력. 생각보다 쓴맛이 강하다. 적미를 사용했다는데, 도대체 어디가? 쌀이 들어간 건 맞나 싶을 정도로 쌀 향이 적고, 맛이나 향에 있어서는 그냥 일반 맥주와 똑같다. 명색이 주제가 쌀인데… 맛은 참 좋지만, 주제는 이미 안드로메다 행. 제대로 묻혀버린 느낌이다. 같은 이유로 박 언니와 신쏘도 맥주 4종 가운데 이 녀석을 2위와 3위로 꼽았다.

왼쪽부터 알포, 사이공 맥주, 히타치노 레드 라이스, 고시히카리 맥주

신쏘가 이날 잘 만든 맥주 1위로 꼽은 사이공 맥주는 쌀 부드러운 맛과 향이 특징이다. 첫맛은 약간 시큼하지만, 끝에서는 고소함을 느낄 수 있다. 엄마가 끓여준 보리차가 떠오르는 건 기분 탓이겠지. 마시는 이에 따라서는 약간 씁쓸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


사이공 맥주는 베트남의 더운 날씨에 어울리도록 가볍고 목 넘김이 부드럽다. 심지어 신쏘는 "역시 태생은 속일 수가 없나 보다"며, 현지에서 볶음 쌀국수랑 마셔보고 싶단다. 아, 베트남에 가자는 무언의 압박인가? 다낭의 해변 어디쯤에선가 얼음과 사이공 맥주로 잔뜩 채워 넣은 바스켓을 들고 해수욕이나 한바탕 하고 싶어 진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의 혹평을 받았던 고시히카리 맥주를 소개하겠다. 일본에서도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한 니가타 현의 고시히카리 쌀로 만든 맥주이다. 시음 전 신쏘와 내가 가장 기대했던 술인데, 정작 마시고 나니 배신감이 확. 이런 걸 보고 겉모습에 낚였다고 하는 건가 보다. 신쏘는 코를 대자마자 "언니, 이거 상했나 봐요"라며, 고개를 갸우뚱. 우리 모두 한동안 컵에 코를 처박고 킁킁거렸다. 결론만 말하자면 상한 건 아니었다. 이 표현할 수 없는 콤콤한 냄새, 알고 보니 누룩에서 느낄 수 있는 군내와 비슷하단다. 좀 더 친숙하게 설명하자면, 그래. 메주 냄새가 난다. 이건 맥주인데!

알포 한잔에 스트레스 훨훨

아무리 술 좋아하는 우리지만, 연거푸 맥주만 들이켰더니 몸도 마음도 후끈. 슬슬 취기가 올랐다. 역시 연이어 4병은 무리였나 보다. 결국, 촬영은 뒷전. 매번 찍던 동영상도 못 찍었다. 대신 공기 반, 술 반! 스트레스는 제대로 풀었다. 에피소드 하나 풀자면 알포는 순식간에 다 동이 났던 반면, 고시히카리는 끝까지 우리와 함께 끝까지 자리를 지켰더란다. 좀 줄어들어도 되는데.



<세 여자는 누구?>

장기자: 양조장 취재 몇 번 다녀온 거로 '나 술 좀 알아.' 폼 좀 잡다가 큰코다친 애송이 기자이다. 목표는 프로 애주가! 전통주 공부를 핑계로, 두 여자를 살살 꼬셔 신나게 술 투어를 다니고 있다.

신쏘: 듣기에도 생소한 전통주 소믈리에이다. 맨날 전통주만 마실 것 같지만, 주량에 대해 물어보니 '맥주 다섯 잔'이라고 얘기하는 우리의 드링킹 요정. 단순히 술이 좋아 시작한 게 눈 떠보니 업으로 삼고 있다.

박언니: 자타공인 애주가. 술 좋아하는 고주망태 집안에서 태어나 '난 절대 술은 안 마실 거야'라며 주문처럼 다짐했다지만, 막상 성인이 되어서 가장 먼저 사랑하게 된 것이 술이었단다. 느지막하게 열공모드에 돌입, 얼마 전에는 직접 일본으로 날아가 사케 소믈리에 자격증도 따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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