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재능은 존재하는가 — 욕망, 생존, 절제의 구조
우리는 종종 말한다. "저 사람은 재능이 있어." 하지만 이 질문을 다시 묻고 싶다.
그 자본주의 재능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더 깊게 들어가 묻는다. 자본주의 안에서 말하는 '재능'은 진짜 인간의 능력인가,
아니면 특정 구조에 최적화된 감각일 뿐인가?
나는 말하고 싶다. 자본주의 재능은 분명 존재한다.
다만 그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예술적 감각, 창의성, 노력의 결과 같은 단어들과는 조금 다른 결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더 많이 갖고 싶어 한다.
더 위에 서고 싶고, 더 안정적인 삶을 원한다.
이건 선이나 악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살아남고자 하는 존재의 본능이다.
자본주의는 이 본능을 가장 잘 반영한 시스템이다.
아니, 더 정확히는 이 본능을 구조화하고 보상하는 방식으로 설계된 시스템이다.
그러니까 자본주의에 적합한 인간형이란, 단순히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이 생존 욕망에 누구보다 충실하고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감각을 '자본주의 재능'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욕망에 기반한 재능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단순히 욕망이 강하다고 자본주의에서 성공하는 건 아니다.
욕망을 절제하고, 타이밍을 보고, 사회적으로 포장하는 능력. 이게 있어야 한다.
그 욕구에 충실한 사람은 자본주의 재능이 있는 사람이고,
그 욕구를 잘 활용하고 절제하며 사회적으로 작동시키는 사람은 부자다.
그래서 자본주의 재능은 단순히 욕망의 크기가 아니라, 욕망을 다루는 감*이다.
그 절제는 때론 본능이기도 하고, 때론 전략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대부분의 경우 그 절제는 인간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돈을 위한 절제라는 점이다.
모든 인간이 경쟁과 지배 욕망을 최우선으로 가진 것은 아니다.
어떤 인간은 돌봄, 연대, 협력 같은 감각이 더 강하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인간 본성의 일부를 극대화한 시스템이다.
그리고 그 일부에 적응하고 최적화된 감각을 가진 사람만이 '재능 있다'는 칭호를 얻게 된다.
즉, 자본주의 재능이란 전 인류의 보편적 재능이 아니라,
구조 안에서 작동 가능한 '특수한 생존형 감각'이다.
문제는, 자본주의가 이 재능을 '자유롭게 선택된 성공'처럼 포장한다는 데 있다.
우리는 자유롭게 경쟁한다고 믿는다. 자유롭게 노력하고,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우리는 이미 욕망의 종류, 소비의 선택지,
성공의 이미지까지 정교하게 조율된 시스템 안에서 선택하는 흉내만 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재능이란, 자유의 이름 아래 조정된 욕망의 시스템에서 가장 잘 놀 수 있는 사람을
위한 말에 불과한 건 아닐까?
나는 이 질문이야말로 자본주의의 가장 깊은 본질을 찌른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재능을 진심으로 꿈꾸는가, 아니면 그저 따라가지 않으면 도태되기 때문에 흉내 내는 것뿐인가?
대부분은 후자에 가깝다. 나 역시 그 재능을 욕망하지는 않는다. 다만 아주 작은 개미처럼 살아남기 위해,
조용히 따라가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꿈이 아니라 생존이고, 적응이지 찬양이 아니다.
자본주의 재능은 존재한다. 그것은 더 많이 갖고 싶은 욕망을 조절할 수 있는 감각이고,
자유라는 감정을 이용해 구조 안에서 위로 올라가는 능력이다.
하지만 그 재능은 인간 전체의 존엄을 반영하지 않는다.
그것은 경쟁의 정글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 본능의 전략파일뿐이다.
존경할 만한 재능이 아니라, 강력하지만 슬픈 생존 공식이다.
그리고 나는 그 재능을 감탄하지 않는다.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질문한다.
“우리는 그 재능을 꿈꾸고 있는가?
아니면, 그 재능을 꿈꾸도록 길들여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