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집사 5. 내가 너무 조급했던 건 아닐까

by Woo seo
KakaoTalk_20250714_144658644_02.jpg 약먹기 싫어서 숨은 핀


낫지 않는 핀이를 보며
나는 속이 탔다.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고민하고, 자책하고,
또다시 기록하고, 기록을 확인하고,
정보를 찾아보고…

그렇게 생각이 깊어질수록
나는 더 단단해졌다기보다는,
더 조용해졌다.

그리고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핀 곁에서 보냈다.

남집사는 괜찮아질 거라고,
이렇게 치료를 열심히 하는데
안 좋아질 수 있겠냐며 위로해줬다.

나도 안다고,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나는 매일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안간힘으로 버티며 내뱉는 주문처럼,
“좋아지는 게 분명하다”는 말을
되뇌이고 또 되뇌었다.


KakaoTalk_20250714_144658644_03.jpg 병원 와서 심기불편한 핀 (이동가방 안)

그렇게 며칠을 지나는 동안,
핀의 상태는
크게 나빠지지도,
그렇다고 눈에 띄게 좋아지지도 않았다.

마음이 복잡했다.
희망을 걸고 싶었지만,
괜히 기대했다가 더 무너질까 봐
조심스러웠다.

무언가를 열심히 해도 바뀌는 게 없다면
그 노력이 의미 있는 걸까?
스스로 묻게 되는 순간,
사람은 참 쉽게 지친다.

특히 그게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지침은 더 깊고 오래 간다.

그 지침 속에서
나는 우울함을 느꼈다.


KakaoTalk_20250714_144658644_06.jpg

누군가와 함께 이 상황을 나누고 싶었지만,
남집사에게도 매번 우울함을 터놓기는
어려웠다.

말을 꺼내려 하면
그 순간, 눈물이 먼저 나올 것 같아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듯이

핀이는 애교가 더욱 많아졌고,

나는 그 사랑스러운 몸짓에
다시, 또 다시 힘을 냈다.


회복되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실패는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나아지는 기적이 없다고 해도,
오늘 하루를 함께 보낸 이 시간은
분명히 의미 있었다.

그걸 받아들이는 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너무 조급했구나.
사랑하면서도 결과만을 바랐구나.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이
때로는 내 마음을
더 다그치게 만들었다는 것도
그제야 알게 됐다.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잘 먹고, 잘 자고,
때때로 나를 쳐다봐주는
그 따뜻한 눈빛 하나로도 충분하다.

사랑이 때때로 너무 무거워서
무너질 것 같을 때,
이 말이 나를 다시 일으켜줄지도 모른다.

“괜찮아,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그러면서 조금씩 마음이 바뀌었다.

내가 너무 빠르게
치료의 결과를 바라고 있었던 건 아닐까.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일수록
당장 달라지길 바라고,
결과로 안도하려는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온다는 걸
그제야 인정하게 됐다.

그래서 생각을 고쳐먹었다.
앞으로도 계속 최선을 다하되,
조금은 느슨하게 기다려보기로.

매일 상태를 예의주시하던 눈빛을
조금 내려놓고,
약을 먹이는 손끝에 힘을 빼고,
밥을 남기더라도 너무 마음 쓰지 않기로.

기적 같은 변화는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고 나서부터
조금씩 차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밥을 잘 먹기 시작했고,
포동포동하게 살이 오르고,
사냥놀이에 눈을 반짝이며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며
나는 매일 조용히, 아주 많이 기뻤다.

‘괜찮아지고 있구나.’

그 사실 하나만으로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저 작은 움직임 하나,
잔잔한 식욕 하나,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 하나에도
나는 행복해졌다.

무리한 바람도, 다그침도 아닌
그저 함께 견디고, 기다려준 시간에서
행복이 피어났다.


아침이면 따뜻한 해가 비치는 창가 캣타워에서
내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고양이를 본다.

내가 일어난 걸 알면 '야옹' 하고 달려와
번팅하며 인사하는 그 소리가
너무너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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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구와구 사료를 먹는 모습,
화장실을 잘 다녀온 모습,
그루밍을 꼼꼼히 하는 모습,
뒹굴뒹굴 배보이며 누워있는 모습,

턱을 긁어주면 골골쏭을 불러주는 모습.


다른사람에게 평범한 일상이
나에게는 너무 큰 행복으로 다가왔다.

다 나았다고 단언할 순 없어도,

하루하루가 평화롭고,
별일 없이 지나가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 사실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핀이가 아프던 시절엔
내가 매일 바라는 건 단 하나였다.
“아프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그 바람이 이루어지고 있다.


거창한 게 아니다.
별다를 것 없는 하루,
늘 보던 창밖 풍경,
비슷한 시간에 눈을 뜨고,
비슷한 시간에 잠드는 오늘.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너무나도 귀하고 고맙다.

고양이와 내가 함께 맞이하는
이 ‘아무 일 없는 하루들’ 속에서
나는 다시 배웠다.

평범하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이자
얼마나 커다란 축복인지.

그리고 그런 하루를
함께 만들어가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내 삶에서 얼마나 커다란 의미인지.


다시는 당연하게 여기지 않기로 했다.
지금 내 곁에서 평화롭게 숨 쉬는
이 작은 생명 하나가,
세상에서 제일 크고 분명한 기적이라는 걸
나는 이제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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