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이 탄생
새벽 3시.
카톡이 왔다.
"또 깼어… 지금도 안 자고 돌아다니는 중…"
잠이 많은 여자친구가,
이렇게까지 새벽을 버티고 있었다.
심지어, 그 고양이를 따라다니며 영상을 찍고 있었다.
평소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고양이와 같이 지내는 여자친구는 행복해 보였다.
그 모습은 분명 진심이었다.
하지만 나는
'진심 = 책임'이라고 쉽게 연결하진 않는다.
기분은 바뀌고, 감정은 사그라든다.
내가 걱정한 건 바로 그 지점이었다.
그래서 속으로 계산을 시작했다.
피로 누적 → 일상 리듬 깨짐 → 스트레스 누적
병원비 지속 발생 → 재정적 압박
외출 제약 증가 → 생활의 불균형
감정적 애착 → 판단력 저하
그래서 나는 일주일 즈음부터 관찰했다.
"이 열정, 어디까지 갈까?"
그리고 2주가 지났을 때,
그녀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오빠가 왜 여행 가서도 도르를 걱정했는지…
이제야 알겠어.
그동안 화낸 거, 미안해."
그 말을 들었을 때,
내 감정은 단순히 ‘감동’이 아니었다.
'이제야 한 사이클을 경험했구나.'
이해를 위한 감정적 공감이 아니라,
직접 부딪히며 체득한 현실의 무게.
그게 내게 더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어떻게 할래?
키울 거야?"
그녀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내 판단은 그때 내려졌다.
‘그래, 2주간의 관찰에서 여자친구는 변했다.’
물론 완벽하진 않다.
하지만 적어도
그 무게를 안고 가겠다는 자의식이 생겼다.
그걸 난 중요하게 생각한다.
"좋아. 그럼 이제 이 녀석은 임보가 아니라, 가족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름을 짓기로 했다.
내 반려견 '도르'는
'엔도르핀'에서 따왔다.
"그럼… 얘는 ‘핀’ 어때?"
"도르랑 핀이!"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후에도 여전히 병원은 자주 갔다.
필요한 물품은 끝없이 추가됐고,
고양이의 습성을 공부하고
생활 패턴을 조정해야 했다.
그리고
여자친구와 나는 선약이 되어 있는 여행을 가게 되었다.
여행 간 날 밤에 나는 여자친구한테 이야기를 하였다.
"내일 일찍 돌아가자. 핀이 걱정돼."
평소 같았으면
"지금 무슨 소리야?"
"돈 아깝게 왜 그래?"
반응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여자친구는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가방을 쌌다.
...ㅅ....ㅂ....
돌아와 핀 이를 데려왔고,
잠시 맡아줬던 지인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예뻐질 줄 알았으면 데려갈 걸…"
이라는 아쉬운 눈빛을 보였다.
하지만 이제 핀이는 우리 가족이었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도르와 핀이는
친해지진 않았지만
관용이라는 형태로 공존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핀 인스타 만들어보는 거 어때?
경제적 효율도 생기고, 필요한 물건들도…"
여자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오빠는 역시 T다…"
그래.
나는 T다.
그리고 책임은,
그렇게 확인하고 시작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