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집사 5. '이름을 지어주는 데 필요한 시간'

핀이 탄생

by Woo seo
KakaoTalk_20250508_142730944.jpg
KakaoTalk_20250508_142730944_01.jpg


새벽 3시.

카톡이 왔다.

"또 깼어… 지금도 안 자고 돌아다니는 중…"


잠이 많은 여자친구가,

이렇게까지 새벽을 버티고 있었다.

심지어, 그 고양이를 따라다니며 영상을 찍고 있었다.


평소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고양이와 같이 지내는 여자친구는 행복해 보였다.

그 모습은 분명 진심이었다.


하지만 나는

'진심 = 책임'이라고 쉽게 연결하진 않는다.


기분은 바뀌고, 감정은 사그라든다.

내가 걱정한 건 바로 그 지점이었다.


그래서 속으로 계산을 시작했다.

피로 누적 → 일상 리듬 깨짐 → 스트레스 누적

병원비 지속 발생 → 재정적 압박

외출 제약 증가 → 생활의 불균형

감정적 애착 → 판단력 저하


그래서 나는 일주일 즈음부터 관찰했다.

"이 열정, 어디까지 갈까?"


그리고 2주가 지났을 때,

그녀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오빠가 왜 여행 가서도 도르를 걱정했는지…
이제야 알겠어.


그동안 화낸 거, 미안해."
그 말을 들었을 때,

내 감정은 단순히 ‘감동’이 아니었다.


'이제야 한 사이클을 경험했구나.'

이해를 위한 감정적 공감이 아니라,

직접 부딪히며 체득한 현실의 무게.

그게 내게 더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어떻게 할래?

키울 거야?"


그녀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응, 키우고 싶어."


내 판단은 그때 내려졌다.

‘그래, 2주간의 관찰에서 여자친구는 변했다.’


물론 완벽하진 않다.


하지만 적어도

'책임'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무게를 체감했고,

그 무게를 안고 가겠다는 자의식이 생겼다.

그걸 난 중요하게 생각한다.


"좋아. 그럼 이제 이 녀석은 임보가 아니라, 가족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름을 짓기로 했다.


내 반려견 '도르'는

'엔도르핀'에서 따왔다.


"그럼… 얘는 ‘핀’ 어때?"
"도르랑 핀이!"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생명은 ‘기억할 대상’이 아니라

‘가족’이 되었다.


그 후에도 여전히 병원은 자주 갔다.

필요한 물품은 끝없이 추가됐고,

고양이의 습성을 공부하고

생활 패턴을 조정해야 했다.


그리고

여자친구와 나는 선약이 되어 있는 여행을 가게 되었다.

여행 간 날 밤에 나는 여자친구한테 이야기를 하였다.


"내일 일찍 돌아가자. 핀이 걱정돼."


평소 같았으면


"지금 무슨 소리야?"

"돈 아깝게 왜 그래?"

반응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여자친구는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가방을 쌌다.

...ㅅ....ㅂ....


돌아와 핀 이를 데려왔고,

잠시 맡아줬던 지인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예뻐질 줄 알았으면 데려갈 걸…"

이라는 아쉬운 눈빛을 보였다.


하지만 이제 핀이는 우리 가족이었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도르와 핀이는

친해지진 않았지만

관용이라는 형태로 공존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핀 인스타 만들어보는 거 어때?

경제적 효율도 생기고, 필요한 물건들도…"


여자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오빠는 역시 T다…"


그래.

나는 T다.


그리고 책임은,

그렇게 확인하고 시작하는 거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여집사 4. 정말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