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결혼.
적당한 나이에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
그 순서를 따라 사는 것이 안정된 삶이자 사회의 인정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결혼은 선택이 되었고,
그 선택 앞에 멈춰 선 사람들이 늘고 있다.
“결혼을 피하는 건 단순한 기호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통계청, 여성가족부, 한국인구학회의 자료들은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이유가
사회 구조와 심리적 변화 속에서 복합적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집값과 주거 불안정
집 한 채를 마련하려면 수십 년을 일해야 한다.
전세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경제력 부족과 고용 불안
낮은 임금, 불안정한 일자리.
“가정을 꾸리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양가 부담과 결혼 비용
예단, 혼수, 결혼식, 신혼집 마련.
시작부터 마이너스 통장을 감수해야 한다.
-출산·육아에 대한 부담
교육비, 시간 소모, 경력 단절 우려.
부모가 되는 일은 더 이상 감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고학력자·전문직일수록 비혼 추세
자기 계발, 커리어, 자율성을 우선시하며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바뀌었다.
-자아실현과 독립성 중시
타인과의 공존보다 나만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가 커지고 있다.
-높은 이상과 기대치
“좋은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는 인식.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결혼을 더 어렵게 만든다.
-관계 회피, 신뢰 부족, 유연한 삶의 추구
결혼이 ‘안정’이라기보단,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오는 이들도 많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선택은 어려워지고,
계산이 늘어날수록 감정은 작아진다.”
— 한국인구학회, 2023
나는 어느 날 문득, 계산을 해봤다.
집값은 계속 오르는데
내 월급은 늘 제자리에 있다.
이래서 죽기전에는 내집은 있을까!?...
취업도 어렵고, 자영업은 더 어렵다.
어찌어찌 일자리를 잡아도
대출금, 대출이자, 월세를 내고 생활비를 쓰면 남는 게 없다.
그 와중에 부모님은 점점 나이 들어가고,
결혼을 한다면 장인·장모님도 챙겨야 하고,
아이를 낳으면 교육비, 보험, 육아 시간까지 감안해야 한다.
그래서 재테크 공부를 시작한다.
주식, 코인, 부동산, 세금, 금리, 환율…
하루 종일 일하고, 밤엔 유튜브 강의를 틀고, 보고서를 훑는다.
경제는 흐름이고, 흐름은 결국 공부다.
그 사이 내 시간을 쪼개고,
눈은 침침해지고, 머리는 무거워진다.
이해했다고 무조건 돈을 벌 수 있는 건 아니다
또 주식으로 코인으로 돈을 벌었어도
누구나 생각을 해볼 것이다.
부동산에 대해서 코인 주식의 변화속도는 엄청나다
그럼 대표적인 투자만 잘한다면 안전자산이 될 수 있는 부동산.
부동산 투자를 하려면... 결국은
부동산을 공부를 다시 시작이다.
입지, 전세가율, 대출 규제, 세금 체계, 지역 동선…
그러다 문득, 숨이 막힌다.
이게 정말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분량인가?
그렇게 벌고, 공부하고, 계산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가끔은 멍하니 바람을 쐬고 싶고,
누군가와 웃으며 밥을 먹고 싶고,
별것 아닌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필요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해야 하는 건 아닌데,
안 하면 뭔가 어긋난 것처럼 느껴지는 것들.
예를 들면 사회생활, 명절 인사, 모임 자리, 각종 경조사, 등
어쩌면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 위한 모든 ‘노력들’.
이런 것들까지 다 포함해서,
그 모든 걸 동시에 해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요즘은 말한다.
-돈도 잘 벌고
-감정도 성숙하게 다뤄야 하고
-살림도 해야 하고
-아이와도 잘 놀아줘야 하며
-부모님께도 효도하고
-대출도 갚고, 노후도 준비하고
-건강도 챙기고,
-인간관계도 부드럽게 이어가야 하고
-다정함도 잊지 않아야 한다
그 모든 걸,
각자 해내야 한다.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
“너 혼자 어떻게 살래?”
“나중에 외로우면 어떡할 거니?”
절대 부정되는 말, 즉 틀린 건 아니다.
부모는 걱정에서 말한다.
자식이 누군가와 함께 안정되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
자식이 외롭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든다.
자식을 낳을 때,
부모는 그 아이가 자신의 늙음을 대신 책임져주길 바라며
세상에 태어나길 바란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자식에게는
누군가를 책임질 준비가 되었는지조차 묻지 않고
당연히 결혼을 ‘해야 하는 것’처럼 말할까?
결혼을 말하기 전에,
먼저 이 질문부터 던져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왜,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정상처럼 요구하는 시대가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