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많으면 좋다.
사회적 인정을 받는 것도,
하루가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도 좋다.
삶이 내가 짠 각본대로 움직일 때,
마음 한편이 조용해진다.
‘잘하고 있다’는 작은 안도감이 찾아온다.
그래서 통제는
어른의 미덕, 성공한 사람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스스로를 잘 통제하고,
감정을 조율하며,
실수 없는 하루를 사는 사람.
그게 성숙한 사람의 모습이라고
우리는 배워왔다.
그리고 나 역시,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누군가에게 실망 주지 않기 위해
하루 계획을 꼼꼼히 짰다.
변수가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했고
주변 환경까지 조정하려 애썼다.
일이 어긋나지 않게,
모든 것을 내가 조율할 수 있도록.
나는 삶을
통제로 붙잡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모든 것을 계획대로 해도,
마음은 편해지지 않았다.
통제를 잘하면 할수록
삶은 오히려 더 무겁고,
나는 자주 지쳐갔다.
문제가 아니어도 괜찮았던 일이
내 예상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실패처럼 느껴졌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생기면
나는 바로 흔들렸고,
누군가 실수를 하면
‘왜 저렇게밖에 못 하지?’ 하는 마음이
어느새 올라왔다.
작은 어긋남도
큰 위기처럼 받아들였고,
나는 늘 긴장한 채 하루를 살았다.
기대와 설렘으로 일하던 내가,
이제는 두려움과 긴장으로 하루를 버텼다.
“이거 괜찮을까?”
“혹시 또 틀리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이 앞섰고,
도전은 더 이상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점점 나를
스스로 가두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완벽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그저,
망가지고 싶지 않았다.
틀어지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실망 주고 싶지 않았다.
그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
나는 ‘통제’라는 방식을 택했다.
내가 만든 울타리 안에 있으면
안전할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 통제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게 됐다.
가족에게도,
동료에게도,
무의식 중에 나의 기준을 들이밀었다.
그들도 나처럼 긴장했고,
조심스러워졌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스스로 더 지쳐갔다.
‘내가 이래서 힘들지.’
‘기준을 내려놓으면 되잖아.’
머리로는 수없이 이해했지만,
삶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았다.
세상은 정답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정답을 ‘성공’이라 부른다.
공부가 먼저야.
게임은 시간 낭비야.
밤늦게까지 일해야 성공해.
지금은 참고 살아야 해.
이 길 아니면 실패야.
어릴 때부터
그런 말들을 반복해서 들었다.
그 말들은
우리를 점점 하나의 틀로 몰아넣었다.
‘그게 맞아’라는 말은,
사실상 ‘그렇게 안 하면 실패야’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공부보다 게임이 좋을 수도 있다.
정해진 길보다
다른 방식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선택을 ‘틀렸다’고 여긴다.
그리고 자신을 다시
억누르기 시작한다.
그게 사회가 말하는 ‘어른의 삶’이니까.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게임으로 인생이 망가지지 않을 수도 있고,
공부를 포기했다고 해서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 자신에게 솔직한 선택이
더 멀리 가는 힘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실수를 하고,
예측하지 못한 순간 앞에서 흔들린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모든 걸 통제하려 할수록
삶은 더 불안해진다는 걸.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어린아이처럼
도전을 게임처럼 받아들이고,
실패를 경험처럼 삼켜내고,
잘 안되면 다시 해보는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는 용기.
나는 지금
그걸 배우는 중이다.
내가 실패했기 때문에
무가치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내가 계획대로 살지 못한다고 해서
인생 전체가 틀어진 건 아니라는 것.
그걸 알아가는 이 시간 자체가,
어쩌면 진짜 통제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과정일지 모른다.
마무리 문장 삶은 조절의 대상이 아니라, 경험의 흐름이다.
나는 이제, 완벽한 통제 대신 완전한 나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