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익숙한 삶의 방식이 있다.
누군가는 무언가를 성취하는 데에서 존재 가치를 느끼고,
누군가는 매일의 평온함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어떤 사람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그렇게 사는 게 너무 답답하고 숨 막힌다고 느낀다.
그건 성향이기도 하고,
환경이 만들어낸 방향일 수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렇게 ‘자기 스타일대로’
인생을 이어간다.
하지만 살다 보면 이상한 순간이 온다.
그 익숙한 방향만으로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순간.
경쟁적이고 쟁취적인 A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건강에 이상이 생기거나
주변과의 관계가 틀어지거나
내면 깊은 곳에서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열심히, 빠르게, 끝까지 달려온 길인데
그 끝에서 기다리고 있던 건
‘잠깐 멈춰라’는
삶의 낯선 목소리일 수 있다.
반대로,
느긋하고, 자유롭고, 즉흥적으로 살아왔던 B의 삶도
어느 순간 무게 중심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누군가를 책임져야 할 때가 오고,
돈의 압박이나
사회적 요구들이 그 사람 앞을 막는다.
자신의 속도대로만 살고 싶었지만,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다른 리듬을 감당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제야 깨닫는다.
삶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것.
“나는 저렇게 살지 않아.”
“나는 절대 저런 길을 택하지 않아.”
“저런 건 나랑 상관없어.”
이런 식으로 우리는
자신의 방식만이 옳고 편안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삶은
그 믿음을 비틀며
우리를 반대편으로 데려간다.
단정은 우리가 가장 쉽게 빠지는 함정이고,
가장 위험한 확신이 된다.
한 방향에 갇힌 채로
다른 삶을 외면하고 비웃으면,
그 ‘다른 삶’이 언젠가 우리 삶으로 침투해 온다.
그렇다고 해서
한 방향으로만 살아온 모든 사람이 무너지거나,
문제를 겪는다는 말은 아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한 방향으로만 밀고 나가며
결국 그 삶을 지켜내고,
더 많은 존경을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김성근 감독님이 그렇다.
야구에 대한 철학,
지도자로서의 신념,
현장을 대하는 뚝심.
그는 그 한 방향을 흔들림 없이 지켜왔다.
물론 그 과정에서
비판과 구설, 충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오히려 더 많은 사람에게
신뢰와 존중을 받는 이유는,
그 삶의 방식이 단순히 ‘고집’이 아니라
진심과 믿음, 그리고 '바른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틀린 방향, 비열한 꼼수,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는 선택이 아니었기에
그 뚝심은 버틸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남았다.
문제는 방향 자체가 아니라,
그 방향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느냐이다.
혹시 지금
너무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절대적인 건 없다.”
지금이 고통스럽다고 해서
당신의 삶이 실패한 건 아니다.
지금의 선택이 틀린 것도 아니다.
어쩌면 지금은
그릇을 키우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비가 오는 날엔 나무가 자라고,
고요한 밤엔 별이 빛나듯이.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지금,
그 자체가 이미
당신을 단단하게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틀리고, 비열하고, 꼼수에 가까운 방식에 대해
절대적으로 단호해지려는 태도는 분명 필요하다.
그건 지켜야 할 선이고,
그런 기준은 우리가 절대로 쉽게 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반대다.
올바른 방향을 선택했더라도,
그 안에 너무 완고하고 경직된 태도만 있으면
삶은 쉽게 부러진다.
유연하지 않으면, 단단함조차 약해진다.
나는 우리가
나쁜 방향을 단호하게 피할 줄 아는 동시에,
바른 방향 속에서도 부드럽고 지혜롭게 흔들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꾸준하게,
그러려니 하면서도,
무너지지 않게.
지혜로운 시선으로,
현명한 선택을 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