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준비해 본 사람이라면 다 알 겁니다.
아이디어와 실행력보다 먼저 마주하는 건 끝도 없는 절차와 규제입니다.
지인 중 한 명이 화장품 사업을 준비했는데,
시작부터 맞춤형 화장품 조제 관리사라는 자격증이 필요했습니다.
물론 ‘안전을 위한 장치’라는 명분은 이해가 갔습니다.
하지만 시험 과목을 들여다보니 의문이 들었습니다.
성분 혼합 공식을 머릿속에 다 외워야 한다는 건데,
과연 창업에 얼마나 직접적인 도움이 될까요?
표로 정리하고 매뉴얼만 지켜도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문제인데, 굳이 암기를 요구하는 겁니다.
심지어 법 관련 문제까지 나오는데, 사업가가 모든 법을 외워야만 합니까?
그건 사업을 운영하며 지켜야 할 영역이지, 머릿속에 조문을 줄줄 외우는 게 본질은 아닙니다.
그래서 변호사가 존재하는 거 아닙니까?
변호사조차 모든 법을 다 외우는 게 아니라, 상황에 맞게 찾아보고 해석하는 전문가인데 말입니다.
그런데도 창업자는 시험을 치르려면 마치 ‘법전 전체를 암기해야 하는 사람’처럼 다뤄집니다.
이게 사업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시작하기도 전에 지치게 만드는 장벽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늘 학교 교육도 의문스럽습니다.
수학의 시그마, 미분·적분은 깊이 있게 가르치면서,
정작 인생에서 반드시 마주할 금리, 세금, 세법, 투자 같은 기본 지식은 배우지 못합니다.
물론 수학적 공식으로 먹고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모두가 똑같은 공식을 외우는 대신,
사회를 살아가며 꼭 필요한 지식을 다 함께 배우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정부와 제도가 바라는 건 겉으로는 수준 있는 시민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훈련된 노동자를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만약 정말로 수준 높은 시민을 원한다면,
시험 점수나 암기가 아니라, 금리·세금·계약처럼 삶을 지탱하는 기본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요?
결국 ‘훈련 잘된 노동자’를 만들기 위한 장치이지,
스스로 길을 내는 혁신가를 위한 토양은 되어주지 못합니다.
창업지원금 제도 역시 비슷했습니다.
지인이 지원하는 것을 보며 알아보니,
정부에서 ‘지원해 주겠다’는 말은 요란했지만 실제로는 정답을 맞히는 시험에 가까웠습니다.
유튜브에는 ''창업지원금 받는 법''이라는 영상이 넘쳐났습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실행 의지가 아니라,
심사위원이 좋아할 만한 포맷과 답안을 준비해야만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지원을 받는 사람은 진짜 사업가라기보다 ‘사업계획서를 예쁘게 잘 만든 사람’이 되는 구조였습니다.
우리는 과연 창의적인 사업가를 원하는 걸까요, 아니면 정답을 잘 외운 지원금 전문가를 원하는 걸까요?
반대로 미국은 어떨까요?
부모조차 자녀의 도전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 실패를 경험으로 전환하는 시장.
그래서 테슬라, 엔비디아, 구글, 아마존 같은 기업들이 미국에서 쏟아집니다.
전통 강자들을 뛰어넘는 새로운 강자가 계속해서 나타나는 곳, 그게 미국입니다.
물론 미국에도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마약, 총기, 범죄.
혁신의 땅이라 불리지만, 동시에 위험과 불안이 상존하는 사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패를 허용하는 기회, 도전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라는 자산만큼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정말 안전할까요?
''우린 마약 청정국이다''라는 말은 이미 오래된 신화에 불과합니다.
청소년을 향한 마약의 그림자는 점점 짙어지고,
총기 사건의 가능성도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미국을 비판하며 위안을 삼는 사이, 안전이라는 장점도 서서히 균열이 생기고 있는 겁니다.
가장 큰 차이는 실패를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미국에는 과거 실제로 ‘FailCon’이라는 콘퍼런스가 열렸습니다.
실패한 창업자들이 모여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못했는지 공개적으로 토론했습니다.
투자자들조차 이런 실패담을 높게 평가합니다.
''한 번 부딪혀본 사람은, 다음엔 더 잘할 것이다.''
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정반대입니다.
한 번 실패하면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은행 대출이 막혀 재도전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실패는 경험이 아니라 낙인이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더 보수적으로 변하고, 혁신은 미뤄집니다.
혁신을 원한다면, 제도와 교육, 문화가 함께 바뀌어야 합니다.
실패를 허용하는 사회, 실행에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
그리고 진짜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
언제까지 우리는 삼성과 현대 같은 전통적인 대기업만 붙잡고 있을 겁니까?
그 이름 뒤에 숨어 안도하는 사이, 세상은 이미 다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한국도 이제는 새로운 혁신 기업이 태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따라가는 나라가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길을 내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