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희생만으로 아이가 잘 자라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희생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아이에게는 사랑과 돌봄이 생존을 결정짓는 절대 조건이다.
역사와 과학은 이를 이미 증명해 왔다.
중세 독일 황제 프레드릭 2세는 아이들에게 젖은 먹이고 씻기긴 했지만,
말도 걸지 않고 애정도 주지 못하게 했다.
결과는 비극이었다. 아이들은 결국 모두 죽음을 맞았다.
20세기 미국 심리학자 해리 할로우는 철사로 만든 어미와 천으로 감싼 어미를 두고 원숭이를 실험했다.
새끼 원숭이는 우유가 필요할 때만 철사 어미에게 갔을 뿐, 대부분의 시간은 천으로 감싼 어미에게 매달렸다. 먹는 것보다 애정과 접촉이 본능적으로 더 필요했던 것이다.
더 가까운 현실의 사례는 보육원 아기들에게서 드러났다.
20세기 초, 기저귀는 갈아주고 젖병은 물려줬지만 안아주고 눈을 맞추는 사랑이 없었던 아이들.
그들은 발달이 지연되고, 면역력이 떨어져 쉽게 병에 걸렸으며, 이유 없이 생명을 잃는 경우도 많았다.
결국 애정과 스킨십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었다.
이 사례들이 말하는 건 분명하다.
아이에게 사랑을 주고, 안아주고, 눈을 맞추고, 웃어주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건 부모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아이를 위한 시간이 분명 존재해야 하지만,
아이가 성장하면서 그 비중은 점점 달라져야 한다.
어릴 때는 부모의 거의 모든 에너지가 아이에게 쏟아져야 하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그 비율은 점점 부모 자신을 위한 삶으로 이동해야 한다.
왜냐하면
부모의 삶은 아이의 눈에 고스란히 비치기 때문이다.
부모가 도전하고 배우며 자기 길을 개척하는 모습은 말없는 교육이 된다.
아이들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
“나는 나답게 살아도 된다.”라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실제 연구들도 같은 사실을 보여준다.
심리학 조사에 따르면,
부모의 삶의 만족도가 높은 가정일수록
아이들의 불안·우울 지수가 낮고 독립성은 높았다.
사회학 연구에서도,
부모가 자기 계발·취미·일을 꾸준히 이어간 가정의 아이들이
더 높은 자존감과 자기 효능감을 보였다는 결과가 있다.
즉, 부모의 자기 삶은 단순한 사치가 아니라,
아이의 정신적 건강과 성장에도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요소다.
반대로 부모가 자기 삶을 살아내지 못하면 왜곡이 생긴다.
한 가지는, 희생만이 정답이라는 왜곡이다.
부모가 모든 것을 자식에게만 쏟아붓는다면,
아이도 자라서 부모가 되면 똑같이 자신을 소모하며 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자식만큼은 나보다 더 편안하게 잘 살았으면 한다''
이 마음이 결국 자식에게는 또 다른 희생의 가르침으로 전해진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자신을 다 바친 모습은,
자식에게 너도 언젠가 네 자식을 위해 너를 바쳐야 한다는 무언의 교육이 된다.
그렇게 희생은 세대를 건너 대물림되고, 결국 부모가 바라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다.
또 다른 왜곡은 대리 성취 욕구다.
“나는 못했지만, 내 아이만큼은 더 넓은 길을 걷게 하고 싶다.”
이 마음. 겉으로는 자식을 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부모 자신의 결핍을 자식에게 전가하는 일이다.
아이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 부모가 이루지 못한 길을 대신 걷게 하면서,
결국 아이는 자기 삶을 살지 못한다.
그래서 부모가 자기 자신을 살아내는 건 단순한 선택이 아니다.
아이에게 희생만을 물려주지도 않고, 대리 성취의 굴레를 씌우지도 않기 위해서다.
부모가 자기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아이에게 자기 돌봄과 도전 정신을 동시에 가르친다.
부모와 자식의 이야기는 결국 학교와 사회,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구조 전체와 맞닿아 있다.
하지만 이 한 편의 글로는 다 담아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브런치 매거진 〈당연함에 의문을 가지다〉에 올려둔 글들의 제목을 남겨둔다.
혹시 이 글을 읽고 더 궁금하다면, 그 길들을 따라가 보길 바란다.
학교는 무엇을 위한 교육기관인가
우리는 재능을 꿈꾸고 있는가 꿈꾸도록 길들여진 것인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그냥 돈 되는 일 해라
벽지를 기둥으로 착각하지 않기 위해
내가 믿은 방향이 틀릴 수 있다는 용기
노력은 누구나 한다. 다만 그 무게가 다를 뿐이다
부모도, 학교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물으며 변화를 해야 한다.
너무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을 다시 묻고, 질문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많은 문제와 나쁜 되물림을 끊어낼 수 있는 시작이다.
나는 이 글을 전 세계의 모든 부모들이,
자식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부모 역시 하고 싶은 것이 있고, 도전하고 싶은 길이 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자식에게만 맞추다 보면, 정작 자기 삶은 사라져 버린다.
아이에게는 부모의 희생보다 부모의 삶이 더 큰 교육이 된다.
본인을 위해 도전하고, 행동하고, 실행하고, 노력하는 모습.
그 모습이야말로 자식을 위해 무엇보다 값진 선물이 된다.
그러니 희생이라는 단어에 갇히지 말자.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길, 그것이 결국 자식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 정말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