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고양이... 키우고 싶어?
아니면 입양 보낼 생각이야?"
조심스레 물었다.
주인이 나타날 가능성도,
입양을 원하는 사람도 없는 상황.
결국 이 생명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우리 손에 달려 있었다.
여자친구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키우고 싶어."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나는 어쩐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귀엽고, 예쁘고, 작고 사랑스러운 생명이니
키우고 싶다는 마음은 이해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왜 키우고 싶어?"
그 질문에 돌아온 답은
“그냥 너무 귀여워서.”
“너무 예쁘잖아.”
그 순간,
내 눈엔 그 대답이 너무 가볍게만 느껴졌다.
내가 색안경을 쓰고 본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시선에는,
그 이유들이 '책임'보다는 '감정'에 가까웠다.
나는 반대했다.
단호하게.
반려견 도르를 키우면서
얼마나 많은 걸 내려놓아야 했는지,
여행 한 번 떠나도
밥은 챙겼을까, 약은 먹었을까,
아프진 않을까, 밤엔 잘 자고 있을까—
그 수많은 생각들이
언제나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행지에서도
나는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고,
함께 간 친구들에게도 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여자친구는
하고 싶은 걸 깊게 몰입하고,
잠도 많이 자고,
자기만의 루틴이 중요한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이 작은 생명에게 매일 신경 쓰고,
밤잠 설치고,
병원에 가고,
갑작스러운 질병에도 대처할 수 있을까?
특히 지금 이 고양이는 아프다.
약을 먹여야 하고,
자주 병원을 가야 하고,
밤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잠을 잘 때도
혹시라도 내가 깔고 뭉개버릴까,
아프진 않을까
깊은 잠을 자지 못한다.
잠이 많은 여자친구에겐
이런 패턴은 고된 일이다.
나는 그것이 걱정이었다.
그리고…
사람은 성장한다.
아기였을 땐 밤낮없이 울고 힘들게 해도
시간이 지나면 말을 하고,
스스로 밥을 먹고,
혼자 잠들고,
조금씩 자라며 내 손을 덜어준다.
하지만 반려동물은 그렇지 않다.
3살, 5살 수준의 지능에서 멈춘 채
10년 이상을 살아간다.
늘 내가 옆에서 케어해야 하는 존재다.
그리고 어디든 함께하기 어렵다.
싫어하는 사람도 많고,
숙소나 식당, 카페, 놀이터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까지.
그런 점들을 전혀 경험해보지 않은 그녀가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결국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안 돼.
너 지금 마음으론 키우고 싶을지 몰라도,
그런 책임감으로는 어렵다.
차라리 다른 사람을 찾아보자."
그 말은 갈등의 시작이었다.
여자친구는 속상해했고,
나는 내 입장을 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찾은 합의점.
"2주간만, 진짜로 직접 키워보는 거야."
현재는 병원비가 계속 드니 다른 사람들도 쉽게 데려가지 않으려 할 거고,
그 사이에 직접 케어해보면
단순한 감정이 아닌
‘책임감’의 무게를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여자친구는 임보가 아닌
체험 입양이라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