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작가가 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단어 여섯 개로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작가는 잠시 생각한 다음 이렇게 대답합니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팝니다. 아기 신발. 한 번도 안 신었음)”
이번 주 과제는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이 짧은 이야기를 마음에 품고 생각해 보세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지를 펼쳐 나가도록 내버려 두세요. 이야기의 앞면, 옆면, 뒷면을 살펴보세요. 이 광고를 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만약 당신이 이 광고를 보았다면 어떻게 할까요? 당신이 생각한 뒷이야기, 앞이야기, 옆이야기를 글로 써보세요. 처음 든 생각은 미루어두고 조금 더 특별한, 이상한, 다른 생각을 해보세요. 슬프거나 웃기거나 무섭거나 섹시한 이야기를 만들어보세요. 당신이 원하는 시간대와 공간에 당신이 원하는 인물을 넣어보세요. (아이는 죽이지 마!)
만약 이 과제가 막막하고 어렵다면, ‘for sale’에 집중하세요. 이것을 키워드로 한 편의 글을 써보세요. 뭔가를 샀던 기억, 팔았던 기억, 벼룩시장의 기억도 좋습니다. 당신이 지니고 있는 물건 중 하나를 내다 팔아야 한다면, 그 물건을 무엇일까요? 그 물건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요?
당신의 경험으로 쓰는 글이 에세이라면, 당신의 상상으로 쓰는 글은 픽션 또는 소설이 될 수 있습니다. 즐거운 생각에 잠기는 기쁨, 그것을 글로 옮겨 논픽션에서 픽션으로 슬쩍 넘어갈 때의 기쁨,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기쁨을 맛보시기를. 그저 손가락 끝으로 슬쩍 찍어 먹어보는 정도라도.
(위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헤밍웨이였습니다.)
과제제출
동묘 판매상. 김복덕
어제저녁 물건이 들어왔다. 박 사장 포터에 가득 실린 옷 무더기에서 복덕의 허리춤 높이만 한, 고무줄로 칭칭 싸맨 한 덩이를 내렸다. 포터가 저만치 골목으로 사라지자. 비닐 천막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덩이를 굴려 올렸다. 팽팽하게 옭아맨 검은색 고무줄을 가위로 자르자, 옷들이 후드득 떨어진다. 그녀는 무너진 옷더미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휘젓는다.
지휘에 맞춰 그녀의 손에 잡힌 옷들은 왼쪽, 오른쪽, 위, 아래, 사방으로 나뉜다. 툭. 무더기 속으로 깊이 넣은 오른손 검지와 중지에 단단한 것이 잡힌다.
“뭐지?”
왼손으로 오른손 위의 옷 무더기를 옆으로 치우니 신발이 나왔다. 아기 신발. 심지어 태그까지 붙어있는 새것이었다.
복덕은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다시 시작된 교향곡 3악장. 밤 11시가 되어서야 끝난 담벼락 가로등 콘서트는 바글거리는 모기와 날벌레 관객들 덕에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다. 돌돌 바지를 걷어 올린 종아리에는 극성팬들의 키스 자국이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팝니다. 아기 신발. 한 번도 안 신었음. 이만원’
복덕은 골판지에 매직을 들고 한참을 고민했다. ‘사장이 미쳤어요’, ‘폐업’, ‘점포정리’ 자극적인 홍보의 홍수 속에서 돋보여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문구였다. 새것은 항상 가슴을 떨리게 하니까. 문제는 가격 책정이었다. 태그에는 7만 원이라고 적혀있었다. ‘아기 신발이 뭐 이리 비싼가?’ 하고 요새 젊은 부모들의 과소비를 개탄하다가, ‘그럼, 2만 원은 받을 수 있겠구나.’ 라며 안심했다. 주 고객층은 손자, 손녀를 둔 할머니, 할아버지들. 동묘에 구경 왔다가 손자 신발, 그것도 새것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노약자석에 앉아 검정 비닐봉지 안의 신발을 다시 보며 흐뭇하게 웃겠지, 생각하니 ‘이만오천 원’이라고 쓸 걸 하는 후회가 살짝 들었다.
시장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복덕의 파라솔 밑 옷걸이에 걸어놓은 티셔츠, 남방, 바지를 뒤적거리며 가격을 물었다. 2천 원부터 5천 원까지. 사려는 사람은 지갑에서 천 원짜리를 몇 장 세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물론 가격만 듣고 돌아서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괘념치 않는다. 물건에는 주인이 있고, 주인은 언젠가 나타날 테니. 그녀가 장사를 하며 느낀 점이다. 복덕은 손님에게 종이돈을 받고는 허리춤 전대에 착착 펼쳐 넣었다. 아기 신발은 아직 남아있다. 다섯 시면 정리해야 하는데, 벌써 네 시다. 오늘 팔고 싶은데, 그래도 2만 원은 받고 싶었다.
그때 중년의 여자 손님이 파라솔 아래 섰다.
“사장님, 아기 신발 새거예요?”
“예, 새거예요.”
“왜 새거예요? 어디서 났어요?”
“뭘 그런 걸 물어봐? 사면 사고, 아니면 마는 거지.” 복덕은 언짢은 마음에 슬며시 말을 놓았다.
“그래도 아기 신발인데 궁금하지 않아요? 무슨 사정이길래 새거를 내놨을까?”
“여기 시장에 있는 옷들. 사연 없는 게 없을 거여. 이쁨 받고 닳도록 입다가, 싫증이 나든, 이사를 가든, 이제 안 쓰니까 나온 거지. 근데 사연 있는 물건도 여기로 오면 다 사라져. 그냥 필요하면 사고 아니면 마는 거여. 아기 신발. 그래 무슨 사정이 있다손 치자. 그게 무슨 소용이여.”
“그냥요. 아기 신발이 한 번도 안 신었다길래 원래 주인은 어땠을까 생각했어요.”
중년의 여성은 턱에 손을 괴고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새북에 인력시장 가봤어요? 소싯적에 뭔 일을 어떻게 했는지는 알려고 하지도 않아. 무르팍은 잘 굽혀지는지, 손가락 다섯 개가 다 붙어있는지만 보면 되는 거여. 단순해. 옷도 똑같어. 빵꾸만 안 뚫려있고, 찢어지지만 않으면 돼. 사정은 알 수도 없고, 알아봐야 뭐 어쩌겄어. 새 주인 찾으면 됐지. 싸게 사면 더 좋고.”
“그럼 안 팔리는 것들은 어떻게 해요?”
“모아다가 저... 저짝, 파프리...아니 아프리카로 보내나 봐. 거, 김혜자 나오는 거 봤어? 깜둥이 애들 깡말라가꼬 옷도 시그리한 거 입고 댕기니까 이런 거 주면 아주 좋아하겄지. 걔들도 안 쓰면 뭐 불로 태우거나 땅에 묻겄지? 그러고 보니까 사람이나 옷이나 끄트머리는 같네. 쓸 수 있을 때까정 쓰는 거지 뭐.”
복덕은 큰 결심을 했는지 입술을 앙 다물었다. 그리고 가격이 적힌 골판지를 집어 들더니 유성 매직으로 ‘이만원’을 두 줄로 쓱쓱 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