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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석 Sep 26. 2021

'사회와의 단절'로 생긴 변화

훈련소에서 휴대폰 없이 지냈던 7주 간의 생활


2021년 2월 1일. 210201, 묘한 대칭을 이루고 있는 이 숫자는 내가 앞으로 절대 잊지 못할 숫자이다. 대한민국의 남성이라면 무조건 통과해야 할 인생의 관문인 입대를 하는 날이다. 당시의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휑한 두피를 통해 느껴지는 차가운 바람의 서늘함, 사회를 떠나 군대로 떠남에 대한 설렘 반 두려움 반.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 무섭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아직도 세계를 괴롭히는 조그만 바이러스 때문에 내가 알던 일상이 무너져버린 그 시점에, 군대라는 새로운 일상이 그리 겁나지는 않았다. 다만 '호국요람'이라 적혀있는 저 문을 통과하면 6주 동안 세상과 단절된 상태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마치 안개 낀 고속도로를 타야 하는 느낌이었다. 항상 내 주변을 - 어쩌면 가족보다도 더 오래 - 떠나지 않았던 휴대폰과 이별한다는 것은 어떨까? 그런 두려움은 마음 한 구석에 숨겨둔 채로 친구들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한 후 휴대폰을 제출했고, 그렇게 낯선 생활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들어가서 2주 동안은 격리 기간이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라고는 가져온 책과 신병 가이드북 이 전부였다. 용변을 볼 때 빼고는 16명이 들어가기에도 비좁은 생활관을 절대로 떠나서는 안 됐다. 샤워도 9일 차에야 가능했고, 밥을 비롯한 생필품은 모두 생활관으로 전달되었다. 똑같은 풍경의 생활관에서 아무런 일과도 없이 2주를 보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할 일이 없었다. 머리를 쓸 일도 없고 몸을 쓸 일도 없고. 그렇다고 옆에 있는 동기들은 만난 지 며칠밖에 안 되고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 아직 서먹했다. 심심할 때마다 항상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었던 휴대폰도 없으니 친한 친구에게 지금의 심심함을 토로할 수도 없고 단순한 즐길거리도 접할 수가 없었다.


단조로운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주변에서는 더 이상 즐길거리나 내 에너지를 소비할 거리가 없었고, 내면의 에너지들은 점차 나 자신에게로 향했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마주쳤지만 정답이 없어 무시해왔던 여러 질문들, 더 나은 나를 위해 스스로 생각했던 여러 고민들. 이런 생각들의 길을 찾아주기 시작했다. 인간관계라는 시소에서 '나'와 '너'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그동안 두려워했던 실패가 왜 두려운지 - 애초에 두려워야 할 대상이 맞는지, 어떻게 해야 사고의 과정이 간결해질 수 있을지 등.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일부는 답을 찾지 못했지만, 방향을 잡으면서 자신감과 자존감이 올라갔다. 스스로에게 떳떳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는 주변의 변화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내 줏대를 가지고 확신 있게 행동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생겼다.



격리가 끝나고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갔다.

처음 쏴보는 총부터 시작해서 수류탄 투척, 화생방 대비 훈련, 그리고 악명 높은 각개전투와 철야행군까지. 매일이 고된 하루였다. 사회에서는 그렇게 몸을 많이 써본 적이 없으니 당연하기도 하다. 오죽하면 하루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잠에 들 때, 가장 슬픈 순간은 기상 알람을 듣는 때였다. 이때 내게 힘이 되어준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내 평소 친구들의 연락과 관심은 두말할 것도 없다. 훈련을 마치고 막사에 돌아오면 인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과연 오늘은 누가 어떤 내용을 보내줬을까-하는 설렘으로 매번 인편을 기다렸다. 바깥과 쉽게 연락할 수 없으니 친구나 가족이 보내주는 인편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소중했다. 훈련병에게는 '인편 개수가 곧 생명'이라는 말이 있는데, 다 이유가 있는 말이구나를 깨달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예상보다 많은 인편을 받는 날이면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관심을 가져주는구나'라고 느꼈다. 그 관심에 감동을 받으면서 나도 애정을 나눠주는 데 있어 소홀하면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인편을 적게 받은 날도 있었다. 안 슬펐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내가 준 만큼 혹은 기대했던 만큼 관심과 애정을 받을 수 없으니까, 인간관계는 결코 수지타산이 맞을 수 없음을 다시금 되새기며 기대는 줄이면서 있는 사람들이라도 잘 챙겨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나에게 힘을 준 또 다른 사람은 같은 생활관을 쓰는 동기들이다. 훈련에 들어갈 때 즈음 격리 때 서먹했던 동기들이랑 제법 친해졌고, 같이 고된 훈련을 받으면서 유대감이 더 강해졌다. 때로는 시덥잖지만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훈련이 끝나고 돌아왔을 때는 서로에게 수고했다며 격려해주면서 힘을 많이 받았다. 밤에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할 때도 즐거웠다. 특히 동기 중 한 명이 매번 잘 때마다 하루를 브리핑해주며 내일은 더 힘내자던 말은 가장 큰 에너지가 되어주었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 간의 따뜻한 정을 잊어갈 때 즈음 다시 느끼게 된 이 온기는 깡으로라도 연속되는 훈련과 피로를 견디게 해 주었다. 수료할 때 즈음에는 정든 생활관을 떠나는 데에 아쉬움까지 들기도 했다. 그만큼 생활관 동기들은 내게 소중하면서 활력을 주는 사람들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문을 통과할 때만 해도 사회와 단절된 채로 잘 살 수 있을까 - 라는 걱정을 했었다. 필요 없는 걱정이었다. 오히려 사회와의 단절이 내게는 더 좋았다. 휴대폰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훈련이 제대로 안 될 수 있음은 차치하고, 격리 기간 동안 나 자신에 대해 고민할 기회가 있었을까? 그저 유튜브를 보면서 시간을 녹이기에만 급급했을 것이다. 주변 친구들과 가족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으며 그들이 주는 관심과 애정을 간절하게 바랬을까? 생활관 동기들과의 끈끈한 유대감과 라포를 형성할 수 있었을까? 생활관 동기들과는 적당히 이야기하다가 각자 휴대폰으로 사회에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하기에 바빴을 것이다.


요즘은 휴대폰을 옆에 다시 두게 되면서 이때의 기억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휴대폰이 나 자신과 주변에 신경 쓰지 못하게 온갖 유혹으로 방해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그 순간의 감정과 생각을 느끼지 못한다. 그때의 기억이 소중하게 남아있는 것이 이 때문이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겪지 못할 사회와의 단절, 그리고 그 속에서 건진 값진 교훈과 경험들. 이 때 얻은 여러 가치들은 지금의 나를 크게 바꿔놓았고, 스스로에게 떳떳한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그때 이런 내 마음을 잘 담아놓은 문장으로 끝내려 한다. 2~3일 주기로 서는 불침번을 서는데, 그때 혼자만의 상상에 잠기며 글을 끄적이곤 했다. 샤워하다 오면서 본 별빛이 이날따라 마음에 들었나 보다.

"도시의 불빛, 가로등의 조명, 휴대폰의 밝은 화면. 이 모든 불빛들이 없으니 비로소 별빛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하늘 속 제자리에서 꿋꿋이 빛나고 있는 별빛처럼 조용하지만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내 내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그 주변으로 희미하게 빛나는 오로라도요. 처음 보는 불빛이라 아직 흐리멍덩하게만 보여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눈이 그 빛에 적응할 테고, 어느 순간 그 빛을 똑바로 볼 수 있겠죠? 그때 그 빛을 잘 포착해놓을 거예요. 그리고 잊지 않을 거예요. 흔하게 볼 수 있는 빛이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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