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한 여자입니다.
나는 40세 하고 중반을 넘었다. 참 시간도 빠르지, 뭐가 급하다고 생각지도 못한 사이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 버렸는지 알 수가 없다.
감사하게도 나의 늙어감은 몸에서 느껴질 뿐 마음과 지금 준비하는 일은 젊었을 때보다 신이 나는 일이다.
나는 20살 때부터 일을 했다. 내 친구들은 대학을 다니며 공부를 하고 친구들과 즐겁게 대학 생활을 즐길 때 나는 화장품 매장에서 서비스업을 시작으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공부를 잘했다면 하고 후회와 나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만족하지 못한 채 20살이라는 예쁜 나이를 알지 못하고 지나갔다. 내 또래 동료보다 더 나이 많은 언니들과 이모님들이랑 일을 하다 보니 내가 생각하기에도 나는 조금은 지루하고 신선함 이라고 찾아볼 수 없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화장품 매장에서 화장품 회사로 직장을 옮기고 영업이라는 지금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20대 중반을 보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에 고민을 하며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이제까지 모아둔 모든 돈을 털어서 방송 코디네이터 일을 하기 위해서 학원에 몽땅 가져다 주었다. 해외 연수와 모든 대회 참가로 알바로만 생활하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끝까지 수료를 하고 가수의 코디로 일을 시작했다. 막상 들어가서 보니 모든 일이 잡일이었지만 나는 행복했다. 막상 우리 때는 열정페이 시절이라서 차비도 밥값도 없이 일을 하는 즐거움만으로 살 수 없어서 밤에 알바도 했다. 월세며 생활비는 월급을 받지 못한 나에게 너무 힘든 일이 되어 버렸다. 밤에 몇 시간 아르바이트비로는 차비와 밥값으로 다 나가버려 월세와 생활비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대책 없이 학원비에 너무 많은 돈을 써 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그런 중 너무 힘든 날에 나는 대표님에게 차비랑 밥값이 없어서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다고 말을 했다. 내가 그렇게 원하고 신나게 일을 했는데... 쉽게 그만두는 코디네이터들에게 흔한 일이라며 대표님은 나도 그중에 하나라고 했다. 끝까지 못 해냈다는 자괴감과 여유롭지 못한 내 생활에 힘듦이 화가 나고 짜증이 났다. 그래서 그때였을까? 돈을 정말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동대문 도매시장에 입사했다.
밤과 낮이 바뀐 생활, 다들 열심히 사는 모습에 나는 자극이 되었고 꿈이 되었다. 내가 디자인 한 옷을 사람들이 입고 거리를 다닌다는게 너무 신이 났다. 나는 판매를 하면서 디자인 공부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일을 해보니 그만큼 체력이 감당을 하지 못했고, 지쳐서 하루 하루를 보낸 것 같다. 일하다 보니 내 매장을 가지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일을 했다. 하지만 코디 학원을 다니면서 생긴 빚으로 얼굴은 잿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빚은 정말 주먹만 한 눈을 굴리면 순간 눈사람의 크기만큼 커져버리는 것처럼 부풀려져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참 그때가 제일 어려웠던 것 같다. 나이는 제일 좋은 나이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나이와 내 청춘 그리고 외모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살았던 게 기적이다.
이 힘든 시기에 내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가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정을 이룰때도 쉽지않게 시작했다. 또 어려운 시간은 아이를 키우면서 더 심해졌다. 매번 울고 버티고 울고 버티는 게 나의 일상이 되어 버렸던 것 같다.
모든 우울증과 분노 장애는 아이에게 영향을 주었다. 밝고 활발하던 아이는 학교를 들어가면서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생활하던 아이는 사춘기라는 성장단계를 만나면서 더욱 심하게 변해 버렸다.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무슨 정신으로 버텼는지 참... 아이도 나도 지쳐갈 때 한 커뮤니티를 통해서 '문학상' 글쓰기 대회가 있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왜 갑자기 글을 쓰고 싶었을까? '내 삶이 너무 힘드니 나 좀 봐주세요?', 였을까? 솔직하게 상금이 탐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의 얘기를 하고 싶은 것 보다 그 당시 일터인 '노인 재활 주간 센터'에서 만나는 어르신들이 나에게 너무나도 큰 힘이 되어서 그 소재를 쓰고 싶었다. 어르신들이 늙어가는 모습. 어르신들이 느낀 삶의 지혜를 배우는 것이 지금 내가 느끼는 고통에서 해방을 주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출근이 너무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어르신들의 모습을 글로 표현하고 싶었다.
첫 도전에 금상이라는 큰 상을 받고 정말 인생의 방향이 180도 반대로 가고 있다. 180도이지만 좋은 방향으로 말이다. 어둡기만 한 내 생활에 글이라는 것은 나를 위로하고 힘을 주는 것이 된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놀라웠다. 글을 쓰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터넷 세상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나의 능력에 버거울 때도 있는데 매일 공부하고, 또 배우고 익히는 게 이렇게 재미있고 즐거운지 처음 알게 되었다.
내가 지금 이 나이에 공부를 시작하면서 바뀐 생각이 아들에게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들이 학교 적응이 힘들어하는 것을 예전 같으면 참을 수 없는 문제였고 너무 창피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자녀교육을 어떻게 시켰냐고 하도 말들이 많은 집안이라서 , 모든 불똥은 우리 모자에게만 올 것 같았다. 하지만 공부하면서 '학교 공부 중요하지만 적응도 힘들어하는 아이를 힘들게 보낼 필요가 있는가' 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내가 느끼는 것이 정말 정답들이 모두 거기에 있었다. 내가 부모로 제대로 말을 못 해준 것도. 사람들에게 미움과 사랑을 받는 방법 등도 책속에서 폭넓은 세상을 만났다. 그래서 나는 당당하게 선택했다.
아들이 원하는 걸 하자라고... 그래서 6학년 1학기에 유급을 하고 지금은 검정고시를 준비 중이다. 몇 주 후에 시험이다. 글쓰기 전에는 분명 나는 아들의 문제가 세상을 다 산 것 같은 충격으로 다가와서 나 자신을 괴롭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공부하다 가도 힘들다고 하면 쉬어가며 하라고 바뀐 엄마가 되었다. 또 아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을 때는 마음을 다해 응원해 준다.
살아보니 공부를 안 해서 대학을 떨어져 힘들게 살았지만 그때 내가 한 권의 책을 만나고 일기라는 것을 꾸준히 써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내가 알지 못 하는 어려운 나 자신을 제대로 만났더라면 그렇게 힘든 20대를 보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요즘 너무 행복하다. 20대에도 없던 에너지와 열정이 생긴다. 남들처럼 돈이 많아서 행복하고 즐거운 것이 아니라 이제야 제대로 된 꿈과, 나를 살리는 공부를 하고, 글 쓴다는 즐거움에 행복하다. 이 행복함을 나를 더 빛나게 해주나 보다. 어느 곳에 가던지 대화를 하면 사람들이 말도 잘하지만, 자신감도 있어 보이고, 에너지가 넘쳐 좋다는 말을 해준다. 내가 달라진 것은 글 쓰고 공부하고 책을 읽은 것뿐인데 말이다.
나의 인생을 바꾼 공부와 글쓰기를 여러분도 한번 만나보면 참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