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으로 존재하는 나와/마음으로 존재하는 나/
생각으로 변화하는 나와/마음으로 관계 짓는 나
모난 생각을 깎아내리고/성난 마음을 가라앉히며
진실한 나를 마주하는 순간/비로소 깨닫게 되는 지금
부디 지금 그대 평안하기를
브런치 작가 박경민 님의 '양자역학' 글이다
지금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나이 70이면 뜻대로 하여도 어긋나지 않는 종심이라 하건만
뜻을 세우지도 못하고 흔들리고 있으니 내 탓임에 틀림없다
이 나이에도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앓고 있다
마음으로 하기 싫은 일을 해놓고 마음 아파하고 있다
성난 마음은 어떻게든 다스려 보겠는데 모난 생각을 깎아내리지 못한다
나와 마주한 시간이 즐거울 리 없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후배는
'언니, 기도하세요. 사람들한테 말하는 건 상처가 될 수 있어요. 내 마음 같지 않을 수 있거든요
하느님은 모든 말을 들어 주십니다" 했지만
신자가 아니어서인지 기도는 내게 별 위안이 되지 못한다
내가 마음을 다스리는 길은 글을 쓰는 일이다
글을 쓰다 보면 기쁜 일은 신이 나서 기쁨이 두 배,
오늘처럼 답답할 때는 글을 쓰면서 마음을 다스린다
화가 나면 입을 닫아 버리는 성격이라 말로는 안 나오지만
책상 앞에 앉으면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정리도 된다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쓰다 보면 비교적 객관성을 유지하게 된다
아픔이던 슬픔이던 제3자 적 관점에서 보려고 노력하게 된다.
지나고 보면 그리 슬프지만도 그리 기쁘지만도 않은 게 인생이라 한다
지금 속 끓이는 이일도 종당에는 부질 없어질 것을 알고는 있지만
종지같이 얕은 심성을 당장은 어쩌는 수 없을 터이니 직면해 보려 한다
착한 사람이고 싶기는 하나 착한 사람이라서 이용당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착하게 산다고 해서 무시당한다는 뜻은 아니다
내 권리는 찾고 남에게 봉사할 수 있기를 바라는데
착한 사람이라는 말에 이끌려 내게 주어진 기회를 양보하고 말았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이유이다
두 가지 일이 얽혀 있다
한 가지, 쳇 GPT는 하루 세 번 이용할 수 있다
한참 AI 배우기에 물이 오른 내게는 세 번은 아쉽기만 하다
그 기회를 자신에게 양보해달라는 문우의 말에 조금 망설이면서도
내가 컴맹이라 당하던 설움을 생각해 냈다
AI에 나보다 더 취약한 사람이라면 도와주는 게 옳다고 생각해서 도와주었건만
막상 좋아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도 기쁘지가 않다.
99가지 가진 사람에게 쥐고 있던 한 개를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이다.
두 번째 이유 때문이다
그 친구는 평소 가까운 사이로 허물없이 지내며 서로 간에 초고를 읽어 주기도 하는 문우이다
같이 배우기 시작한 문우들 중 가장 먼저 등단한 친구이다
초고속 등단을 한 친구가 부러웠나 보다.
친구보다 등단은 늦었지만 공모전에 출품은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쓴 초고가 있다.
열심히 썼지만 그리 우수한 작품은 못된다고 생각하고 퇴고를 하고 있던 중인데
내 글을 읽어 본 친구가 자기도 같은 공모전에 출품할 작품을 쓰고 있으니
이번 기회는 양보해 달라는 말을 했다
등단한 김에 수상도 해서 입지를 굳히고 시 쪽으로 전향을 해볼까 하니
이번 기회가 수상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내게는 앞으로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가슴이 쿵 내려앉을 만큼 서운한 말이었지만 내가 양보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가 시 쪽으로 전향을 하면 수필에서는 다른 기회가 없어질 것도 같았고
무엇보다 내게 부탁을 해온 게 마음에 걸려 양보하고 말았다
뒤늦게 내 글이야 아직 수상을 할 수 있을만한 우수한 글은 아니라고 위로해 보아도 서운했다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위로의 말도 별무소용이었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공정해야 한다'
친분을 이유로 혹은 다른 어떤 이유로도 다른 사람의 기회를 빼앗으려 하는 건 공정한 처사가 아니다
적당한 실력으로 맞서야 하는 게 기회이다
기회를 양보한 착한 콤플렉스가 원망스러웠다
그런 서운한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챗 gpt 사용을 양보하고 만 것이다
그냥 양보만 한 것이 아니라 프롬프트까지 내가 작성해서 만들어 보냈다
퇴고를 적극 도와준 꼴이다
문우를 위해 좋은 일을 했다는 기쁜 마음보다는 착한 척하고 속을 끓이는 내 모습이 처량해 보인다
착한 게 아니라 모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솔직히 출품한다고 해서 수상할 자신도 없으면서 미리 서운해진다
챗 gpt 사용을 도와준 것까지 억울해진다.
모질이이긴 하지만, 나이 70에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지금이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을 글로 풀어 내고 있다
모난 생각을 깎아내리면서 성난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
글을 쓰고 있는 한 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다
나는 기회를 양보하는 게 아니라 빼앗긴 것이다.
빼앗기는 순간 당당히 맞서지 못한 것이다
양보는 미덕일 수 있지만 불공정한 양보는 미덕일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말았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빠져 있을 것이 아니라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부당한 요구 앞에서 내 권리는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친분이나 힘에 기회를 저당잡히는 일은 착한 게 아니라 어리석을 뿐이다
비로소 정리가 된다
잠시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빠져들었지만,
조금 늦긴 했어도 이제라도 정신 차렸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진실한 나를 마주하며 부디 평안해지기를 기도하는데
자신이 모질이인 것만 깨닫고 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
그건 또 다른 출발일 수 있다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내 권리는 주장할 수 있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진실한 나와 대면하고 깨달을 수 있었으니 이제 평정심을 회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