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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 못해서 한 거짓말

by 우선열

25. 4. 1. 11:00


거짓말을 안 해보았다는 말이 거짓말이 가장 심한 거짓말이라 한다. 그만큼 알게 모르게 우리는 거짓말에 노출되어 살아가고 있다. 꼭 남을 속이기 위해 작심한 나쁜 거짓말이 아니더라도 무심코 한 말이 거짓말이 되기도 하고 거짓말인 줄 알지만 좋은 의미이니 해야만 하는 거짓말도 있다.나는 남들이 작정하고 하는 거짓말에는 곧잘 속아 넘어가지만 정작 스스로에게는 거짓말을 잘해버린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 30분 운동할 거야' 하는 말이 지켜지는 건 하루 이틀이다. 하루 30분 책 읽기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말들이 잘 지켜졌다면 나는 지금 미스코리아 같은 몸매를 지닌 유명 독서가가 되어 있어야 한다.수없이 한말이 다 거짓말이 되어 이제 70대 할머니의 평퍼짐한 몸매를 가진 평범한 노파가 되었다.그런데도 평생 가슴에 묻어둔 잊지 못할 거짓말 하나가 있다.

70년 대, 나는 풋풋한 대학생 새내기였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하고 싶었다. 그때 만난 친구가 있다. 정확히 그때 만난 건 아니고 우리는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4학년 때 전학 온 그 아이는 좁은 지역사회를 뒤흔들 만큼 소문이 자자한 집 둘째 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서울에서 은행장으로 근무하다 공금 횡령으로 좌천되어 지방으로 오게 되었으며 엄마가 사치가 심한 까닭이란 것이 지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소문이었다. 언니는 미스코리아 뺨치는 미모라는 소문도 한몫했다. 그녀는 서울 아이답지 않게 까무잡잡한 피부에 눈이 큰 아이였다. 서양 인형처럼 눈이 커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잡기에 충분한 미모였다. 당시 흔하지 않던 그녀 아버지의 승용차를 보며 우리는 모두 그 아이를 부러워했는데 흉흉한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더니 마침내 그녀의 집이 파산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얼마간 힘겹게 학교를 나오던 그녀는 곧 서울로 이사를 갔다.

예쁜 큰 언니가 서울 부잣집으로 시집을 가 가족 모두가 언니의 도움을 받았다 한다.

그녀가 20대가 되어 다시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가 경영하는 작은 가게에서 경리를 맡고 있었다. 그녀와 나의 아버지, 두 아버지의 친분관계 덕분에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이국적인 미모는 여전했으나 그녀는 조금 수다스러워져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한참 젊은 나이에 좁은 가게를 혼자 지키려니 외롭기도 했을 것이다. 나를 만나면 주로 남자 친구 이야기를 했다.근처 공장에 다니는 잘 생긴 총각인데 가난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언니가 부잣집으로 시집가 친정을 살렸으니 너도 부잣집으로 시집가라'는 부모님들의 압박을 받고 있었다. "언니는 키도 크고 예쁘잖아 나는 작고 못생겼어, 나는 부잣집으로 시집갈 자신이 없어, 이사람만큼 나를 사랑하는 사람 다시 없을 것 같아, 놓치고 싶지 않지만 부모님께 말씀드릴 수는 없어" 이런 말들을 하며 그에게 쓴 편지를 보여주기도 하고 행복해하기도 했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대학교 새내기였던 내게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그녀의 연애편지를 읽으며 대리만족을 하기도 했다. "선우야, 그 사람 연락이 안 돼, 불안해, 우리 집에 와주지 않을래" 그녀의 전화를 받고 단숨에 달려간 내게 그녀는 그때의 나로서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임신을 했으며 임신 소식을 듣고 남자의 연락이 끊겼다는 것이다.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다리몽둥이가 부러질 것 같아 혼자 낙태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무서워, 혼자는 도저히 못 가겠어, 나랑 같이 가줘" 나도 무서웠다. 도저히 같이 가 줄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차마 그녀 앞에서 가지 못하겠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밤새 고민했지만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좁은 지역사회에서 무슨 소문이 어떻게 날지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부끄럽게도 그녀의 두려움보다 산부인과에 드나든다는 소문에 휩쌓일 것 같은 내 평판이 더두려웠다. 당시에 우리는 여자의 순결은 목숨보다 중요하다는 교육을 받고 있었다. 결국 나는 그날 병원에 가지 못했다.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서 그녀를 만날 수가 없었다. 그녀도 그 날 이후 연락을 끊었다. 얼마 후 그녀가 서울 언니네 집으로 갔다는 아버지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가슴 아픈 거짓말이다. 조금만 내가 성숙했어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때의 나는 나도 어쩔 수 없었어'이런 변명을 하고 있지만 어려움에 처한 그녀를 돕지 못했다는 생각이 나를 힘들게 한다. 차라리 솔직하게 "같이 갈 수 없을 것 같아, 나도 두렵거든, 어른들께 말씀드리는 게 낫지 않을까?" 했어야 했다. 같이 가줄 것처럼 두리뭉실하게 말해 놓고 혼자 꽁무니를 뺀 것이다. 어린 그녀가 산부인과 앞에서 떨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듯하다. 거절하지 못해 했던 그날의 거짓말때문에 나는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했으며 친구를 잃었다. 다시는 이런 거짓말을 안 하고 싶지만 거절을 못 하는 내 성정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직도 남의 부탁을 거절 못 하고 가슴앓이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거절하지 못해 했던 그날의 거짓말은 내게도 잊지 못할 상처가 되었지만 그녀에게도 평생 배신의 트라우마로 남아 있지 않을까?. 나를 아프게 하는 말은 다른 사람도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거절 못해서 하는 거짓말도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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