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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이름으로 2

나는 주부영업사원 2

by 우선열

"우리가 최고다", "우리는 해낸다 ," "팔고 팔고 또 팔자" 부서별로 구호가 시작되며 바쁜 영업인 하루의 일과가 시작된다. 영업경쟁이 치열한 만큼 부서별로 상품의 가치를 교육받고 판매 포인트 교육에 열을 올린다. 부서의 특성에 맞게 판매 포맷을 만드니 각자 자기의 특성을 지키기 위해 눈치싸움도 치열하다. 새 상품을 숙지하랴 직원들을 안정시키랴, 정신없는 중에도 안사장의 배려는 따뜻했다. 직원들에게 상품 특별 교육을 시켜 주기도 하고 판매 포인트 찾는 법을 은근슬쩍 흘려 주기도 했다. 모든 신입 부서에게 베풀어주는 친절이겠지만 전에 근무하던 회사에서 괄목할만한 영업실적을 내고도 제대로 댓가를 받을 수 없던 우리에게는 커다란 위로 였다.

" 내가 이 회사에서 제일 오래됐어 회사가 어려울 때 내 힘으로 일으킨 사람이야, 안사장도 내 말이라면 무시하지 못하지, 빨리 실적 내야 살아남을걸"

얼굴이 팽팽하게 보톡스 주사를 맞은 기존 부장이 지나가며 한마디 뼈 있는 말을 한마디 한다.

"부장님, 신경 쓰지 마, 우리 회사 마귀할멈이에요, 제일 오래되었고 실적도 높았다는데 최근 몇 달간은 무실적이에요 안사장도 더는 어쩔 수 없을 거 같던데. . "

옆 부서장의 위로에 흐뭇하다가도 영업의 냉정함에 다시 한번 긴장이 된다. 많은 실적이 내엇다하더라도 한두달 실적이 없으면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것이 영업인이다.


내 표정에 초조함이 보였는지 "부장님, 염려하지 마, 물건이 꽤 좋네, 많이 팔 수 있을 거 같아, 우선 내가 살게, 남편하고 의논해 봐야 하지만 나한테 팔요한 물건이니 이 정도를 못 사게는 안 할 거 같아, 내일까지 결정할게,우리한테 잘해준 안사장한테 빨리 보답해야지"

영업사원 중 비교적 형편이 나은 직원 선이의 말이다. 선이는 남편이 남대문에 상가를 몇 개 가지고 운영하며 건물 임대업도 겸하여 경제적으로 윤택한 편이다. 남편 몰래 빠져든 다단계에서 빚을 지고 있어 남편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이 빚을 갚겠다며 영업 세계에 들어오게 되었다. 남편도 짐짓 모른척하며 알게 모르게 그녀를 도와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팽팽이 긴장되었던 몸에 안도의 기운이 퍼졌다. 집중을 방해하던 출입문 소리와 스며들던 냉기도 한결 견디기 쉬워졌다.


매섭던 2월의 추위가 가고 춘 삼월 꽃 피는 호시절이 되었다. 선이가 부서의 Ice brack을 깨주어 비교적 빠르게 우리는 회사에 적응해 갔다. 입담 좋은 선이는 " 내가 샀다"라며 주변에 홍보를 시작했다. 살까, 말까를 망설이는 고객에게 결정을 권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영업실적 1~2위를 다투는 선이에게 기존 영업사원들의 질투가 있기는 했지만 우리 부서의 입지는 날로 단단해져 회사에서의 위치도 확고해져 갔다. 콧대가 높아진 선이 때문에 우리 부서 직원들의 불만이 생길 무렵 개척 영업을 하던 직원이 연이은 계약을 터뜨려

연고 작업과 개척 작업이 어우러진 탄탄한 부서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개척 영업을 하는 박차장은 남자 직원이다. 말뽄새가 거칠고 줄담배와 술을 즐기니 처음 적응이 어려웠지만 곧 마음이 여리고 성실하다는 장점이 보였다. 개척영업은 연고 영업에 비해 실적을 낼때까지 시간이 걸려 새 회사에 정착하기는 어려울 수 있는데 이번엔 비교적 빨리 성과를 내게 되어 다행이다. 담배 냄새나는 남자 직원을 같은 영업사원끼리도 기피하는 경향이라 박차장을 안착시키려면 어려운 고비를 넘겨야 했는데 하늘이 돕나 보다. 박차장의 거친 말솜씨를 싫어하던 직원들의 불평도 은근슬쩍 없어져 버렸다. 나로서는 좌청룡 우백호를 얻은 기분이었다


수입이 안정되니 생활도 여유로워졌다. 아르바이트에 힘들어하던 딸의 등록금도 마련할 수 있었고 아들에게 엄마의 정성이 깃든 새 청바지도 사 줄 수 있었다.고가의 000운동화는 당시 학생들의 로망이었다. 운동화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아들을 도와 줄 수 있었다. 가난이 부끄럽지는 않은 일이라지만 불편하기는했다. 동트기 전 서울행 버스를 타야 하는 두 시간 여의 출근길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영업의 매력은 일 한 만큼 보수를 받을 수 있다는데 있다. 자신이 영업사원 출신인 안사장은 영업직의 애환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다. 안사장은 철저하게 직원들의 수당과 보수를 챙겼으며 프로 테이지 분할이 애매할 경우에도 직원들의 편에서 불만이 나오지 않게 넉넉히 처리하여 직원들의 환심을 샀다.덕분에 신입직원의 영입도 어렵지 않았다. 회사도 탄탄한 중소기업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어 혼자 고분군투하던 안사장을 돕는 중역들도 생겨났다.


안사장의 경영 철칙은 자신의 영업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신념이었다. 중역들을 두기는 했지만 많아진 업무량을 분담하는 역할뿐 경영에 대한 제반 업무는 안사장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졌다.임원들은 예스맨 일 수밖에 없었다. 퇴근 후 술자리는술을 좋아하는 안사장에게는 쌓인 피로를 푸는 청량제 같은 시간이었다.거의 매일 임원들과 어울려 소주 한잔 나누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업무에서 별 존재감이 없는 임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술자리에서 안회장의 비위를 맞추는 일 이었다. 여자 임원인 김 이사도 애주가였으니 술자리를 마다는 편이 아니었다


어느 월요일 이른 출근을 한 부장들은 난장판이 된 업장을 보게 되었다. 총무이사가 별일 아니라며 수습을 했지만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는 건 나뿐만은 아니었다.

"근데요, 연애결혼이라도 좋아서 한 것만은 아니에요 내가 부서장일 때 우수한 영업직원이 잘 따르니 어찌어찌하다가 임신을 하고 결혼했다니까요"

술만 마시면 안사장의 넋두리가 시작되었다.안사장의 부인이 회사에 와서 집기를 망가뜨렸다는 소문도 들렸다. 안사장 부인이 의부증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김 이사의 얼굴에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김 이사는 홀로 유학 보낸 딸의 뒷바라지 중이라 물불 안 가리고 일에 매진하는 스타일이었다. 김 이사가 편가르기를 시작했다는 루머도 돌았다.


우리 부서에도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선이의 남편이 화장실에서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을 하게 된 것이다. 졸지에 가장이 된 선이는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의 재산 관리와 간병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 선이를 회사에 잡아 둘 수는 없었다.회사에 대한 헌신만큼 안사장은 선이의 입장을 충분히 배려해 주었다. 안사장의 인품이 돋보인 처신이었다.

매사에 빈틈이 없어 보이던 안사장의 아킬레스건은 여자였나 보다.직원들 간에 단단한 신뢰를 구축한 안사장이지만 회사 내부 사장을 잘 알고 있는 김이사에 의해 신상이 샅샅이 털리고 소송에 휩쌓이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고 보니 영업조직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끝까지 안타까워하는 우리에게안사장은 후일을 기약하자는 약속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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