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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이름으로 3

주부영업사원 3

by 우선열

우리는 다시 사무용품 보따리를 들고 다시 거리로 내몰렸다.오라는 곳은 많았지만 중소기업 영업조직의 대부분은 보수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아무리 심사숙고를 해도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영업직원이 판 물건을 제대로 보내주지 않고 돈만 챙겨 잠적해 버란 사장도 있고 엉터리 물건을 배송하여 애꿎은 영업사원에게 책임 추궁이 돌아 오기도 했다. 물건 대금을 챙겨 도망간 사장도 있었는데 다행히 창고에 재고 물건이 남아있어 우리는 남아 있는 물건을 처분하여 고객들의 손해 배상을 해주고 빈털터리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소문은 빠른 법, 제법 큰 프랜차이즈 회사에서 우리들의 소문을 듣고 스카우트 제의를 해 왔다.안사장과 같이 인간적인 배려는 전혀 없는 영업 실적에 따른 보수체계가 철저한 회사였다.회사를 위한 회사에 의한 보수체계였다. 힘껏 일하고 받는 보수가 합리적이기는 했지만 씁쓸한 뒷맛이 남는 계산법이었다. 영업에 들어 간 비용을 철저히 상계했다. 수당을 받을 때마다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일하는 의욕이 떨어지고 실적이 미비해진 우리 부서는 가차 없이 밀려났다.


영업의 장점이 학벌 나이 성별 따지지 않고 일한 만큼 보수를 받는 직종이니 경단여가 되어 일자리가 시급한 주부사원에게는 영업직은 더 할 수 없이 좋은 기회이기는 하다.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아무런 준비 없이 생활전선에 뛰어든 내게는 더 할 수 없는 구원의 손길이기도 했다. 어린 자식 입에 먹을 것만 넣어 줄 수 있어도 행복했던 어려운 시절도 지나고 그럭저럭 힘든 가운데도 아이 둘 대학 졸업까지 마칠 수 있었으니 일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노력한 만큼 대가가 주어졌다는 사실에 더 감사한다.


참, 어려운 시절에는 주부 영업사원을 성희롱의 대상으로 삼는 작태도 많이 있었다 그 힘든 시간을 꿋꿋이 버텨내며 영업사원의 긍지를 지키고 가정을 지킨 나는 아직도 현역에서 일하는 주부 영업사원이다. 은퇴할 시기를 가늠하고는 있지만 안사장이 재기할 기회를 잡는 다면 혼신의 힘을 다해 돕고 싶다



선이와 은혜씨


"부장님, 내가 벌받나 봐요 엉엉, 은혜 씨 이야기 듣고 그런 남편은 없는 게 낫다고 이야기했더니 흑흑, 은혜 씨 힘들어하는 거 너무 안타까웠거든요, 죽을 힘을 다해 버는 돈이 남편 병원비로 들어가는 거 보기 싫었어요

회복될 가능성도 없어 보이는데 ... 은혜 씨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내가 당하고 보니 얼마나 모진 말이었나 이제 실감이 되네요, 은혜 씨가 제일 보고 싶어"

병문안을 간 날 문 앞에 들어서는 나를 붙잡고 선이는 폭풍 오열을 쏟아내었다.휴게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지만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병원 휴게실에서는 동병상련의 기운이 있어서인지 힘들어하는 선이를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은혜의 처지를 떠올리며 나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은혜의 남편은 일 년 남짓 투병 중이다. 수술 후유증으로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을 오가기도 하고 입퇴원을 밥 먹듯이 하고 있다. 언제 응급실로 실려 갈지 몰라 퇴원 중에는 더 초조해하는 은혜를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이다. 당장 병원비와 생계비에 은혜는 늘 쪼들렸다. 돈이 되는 물건은 뭐든 가져 나와 사무실에서 팔기도 했다. 시골에서 농사지은 고추며 마늘 등이기도 했고. 동대문이나 남대문에서 떼어온 옷가지나 액세서리이기도 했다. 그때마다 선이는 은혜를 윽박질렀다

"그럴 시간에 회사 물건 팔아,회사는 땅 팔아 장사하니? 월급 받으려면 회사 물건 팔아야지, 다른 사람이 노력해서 판 성과로 무임승차할 생각하지 말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 선이는 은혜의 물건에 제일 먼저 값을 치르고

"너는 이거 사라 너한테 잘 어울려, 내가 작년에 먹어 봤는데 그 고춧가루 정말 맛있어,우리 김장김치 먹어봤지? 바로 그 고춧가루 쓴 거야"

하면서 은혜의 장사를 적극 도왔다. 모진 말을 쏟아내는 선이의 저의가 그녀를 안타까워하는 말이라는 걸 잘 아는 은혜와 우리들이다

"네 남편은 차라리 없는 게 낫다 돈 먹는 하마잖아 처자식 죽을 고생시키며 살고 싶을까?"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무거운 치즈 박스를 풀어 놓는 은혜에게 선이는 참지 못하고 모진 말을 쏟아부었고 그날 저녁 선이의 남편은 119를 타고 응급실에 실려 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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