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이름으로 4

마귀할맘과의 동거

by 우선열

"이 커피는 써요, 먹는 사람 배려 안 하고 처먹고 싶으면 먹고 말고 싶으면 말라는 뜻이군요"

티타임에 부서에 비치된 믹스커피를 보며 마귀할멈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 처먹고는 아니고요, 커피가 기호식품이니선호하는 제품이 다를 수는 있겠네요 이 커피가 좋은 제품이라던데. .특별히 좋아하시는 거 있으세요?"

날카로워지는 직원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사비로 부서원들을 위해 커피며 종이컵들을 제공한나도 기분 나쁜 내색을 안 하며 이야기하기가 힘겨웠다.

"커피는 하얀 게 맛있어요 제일 비싸잖아요, 나는 이딴 거 안 먹어봐서 모르지만 쓰다네요"

"아, 하얀 거, 그거보다는 좋은 제품인데. ."

나는 얼른 말꼬리를 흐렸다.먹어 보지도 않은 제품을 쓰다고 억지 부리는 것은 커피 때문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나는 안 먹어요미안하지만 총무과에서 커피 좀 얻어다 주세요"

"총무과 커피가 떨어져서 좀 전에 우리 커피 가져갔으니 좀 있어야 다른 커피 올 거예요 다른 부서 커피라도 얻어올까요?"

"초면에 그런 실례를 해서 되겠어요, 안 먹고 말지"

총무과에서 커피를 얻어 오라는 철면피가다른 부서에 실례를 범하면 안 된다는 억지를 쓰는 걸 보고 모두들 아연실색했다.그 말을 들은 다른 부서 직원들까지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는 표정들이었다


"나는요, 내 밥값 하고 다니는 사람이에요, 실적 없으면 뒤도 안돌아 보고 갑니다. 어느 조직에서든 나 데려가려고 야단들입니다. 실적 없어도 좋으니 자리에 앉아만 있어달라는 부서장들이 줄을 섰어요매일 그런 전화받는 것도 지겹습니다 부서장 해라, 임원 해서 교육 맡아달라, 스카우트 제의 때문에 골치 아프지만 나는 내 손가락 두드려서 전화하는 걸로 밥벌이하는 사람입니다. 말발에 나 따라올 사람은 없어요, 걸리기만 하면 어떻게든 꺾어내고 말지요, 나 예민한 사람이에요, 신입이라고 업신여기는 거 금방 알아요"

혼잣말인지 내게 하는 말인지 마귀할멈은 앞을 보며 연실 이야기를 쏟아 내었다. 무언가 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부장님, 이 전화 좀 받아 보세요"

눈치 빠른 직원이 휴대폰을 들고 상담실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부장님 완전히 막가파 마귀할멈이네요, 상대하지 마세요 저런 사람은 제풀에 꺾여야 해요.보세요, 먹어 보지도 않았다며 쓰다고 우기잖아요, 앞뒤가 안 맞는 사람입니다잘 못 상대하면 바가지 씁니다 부장님 당분간 조심하세요"

이렇게 막가파 마귀할멈과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한 시간 정도 지각을 한 날

"나는요 초중고까지 12년 개근한 사람입니다.우리 자식들도 그렇게 키웠고요. 회사 규율은 어떻게든 지킵니다" 하기도 하고

"영업 사원답게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고 말하는 날, 닦지 않은 이에서 나는 냄새로 부서 직원들은 하루 종일 코를 막고 있어야 했다

" 부장님 저 직원은 하루 종일 일 안 하고 놀고 있어요 저런 직원 때문에 일 할 의욕이 없어집니다"

라고 말한 날

하루 종일 그녀의 전화가 다른 영업회사 직원들과의 통화였다는 걸 모르는 직원이 없었다. 제일 고약한 버릇은 약한 사람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거였다.

"일 안 하고 왜 회사 다녀요? 밥버러지처럼"

아직 일머리를 모르는 신입 직원들에게 퍼붓는 독설이다. 소문처럼 유능하지는 않았지만 실적은 그만저만 이루고 있어 퇴사를 권할 만한 마땅한 명분은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요? 나랑 일 못하겠다고요? 알았어요 짐 싸서 갑니다. 이딴 회사 아니라도 나 오라는 곳 많은 사람이에요"

신입사원들에게 친절하자는 말을 하는 내게 발끈 한 그녀는 그 자리에서 짐을 싸서 퇴근해 버렸다. 모두들 앓던 이 빠진 듯 홀가분해했는데 나는 어쩐지 석연치 않은 느낌이 있었다. 다음날 퇴사 처리가 된 출근부에 이름을 쓰며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에 앉았다. 실증이 날 때마다 짐 보따리를 쌌다 풀며 근근 영업실적을 올리며 약한 사람들을 주눅 들게 만들며 회사의 입장을 혹독하게 비판하며그녀는 아직도 우리 부서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이사와의 만남


한결같이 온화하고 단정한 모습을 유지하는 그녀를 보며 혹시 사모는 아닐까? 생각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뒤에서 일을 해도 전폭적인 신뢰가 갈 수 있을 듯한 분위기였다.겸손과 헌신, 검소한 삶을 살고 있으리라 멋대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녀가 목사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말로는 여권을 운운하며 '여자는 남자를 뒷바라지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나 보다'고 나 자신을 반성했다. 당당히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는 그녀가 잔다르크처럼 용감해 보이기도 했다. 단정한 모습에서 반듯한 생활 자세를 보는 것 같았고 온화한 성품은 낮은 곳으로 임하는 사랑 같았다.다소 독선적인 모습이 보일지라도신도들을 이끌어 가려면 갖추어야 할 신앙의 힘이고 리더십이라 생각했다.첫 대면에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을만하다고 생각했고이러한 믿음은 거친 영업일에 위로가 되기도 했다. 목사의 직분이지만 아이들 학비가 필요하여 영업 일선에 뛰어든용감한 그녀의 생활 자세를 높이 평가하고 싶었다. 홀로 두 자녀의 양육을 맡아야 했던 우리는 동병상련 서로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어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회사의 경영상태는 어려웠지만 그녀가 있는 한맡은 일을 열심히 하여 영업실적을 올리면 다른 부수적인 문제는 합리적으로 풀어 나갈 수 있을 거 같은 믿음이 생겼다 . 첫 번째 판매 물건에 하자가 생겼을 때 적극적으로 해결해나가는 그녀의 모습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낼 수 있었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그녀의 말이라면 이유가 있을 거라고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자 물건이 생긴 회사의 경영상태는 날로 어려워졌다. 어떻게든 정상화시켜 보려던 우리의 의지는 힘겨워지기 시작했다.손실이 난 회사의 대표 임원 자리는 책임과 원망만 늘어났다. 목사처럼 추앙만 받을 것 같았던 대표 임원 자리가 그녀는 힘겨웠다.세속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을 더는 견딜 수 없었다.그녀는 내게 제의를 해왔다대표 임원의 일은 맡을 테니 이름만 정상화될 때까지 빌려 달라는 것이다.목사로서의 그녀의 입지를 생각하여 나는 어렵지만 제의를 수락했다. 경영상태가 정상화되면 바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경영상태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빨리 나아지지는 않았다. 생색이 나는 일은 그녀가 하고 내게는 원망과 책임만 돌아왔다. 시간이 지나며 그녀를 대표로 세웠던 회사의 사주가 일의 진행 방향을 알게 되었다. 과묵하게 일하는 내 모습과 책임은 회피하려는 그녀의 유약한 태도를 파악한 것이다. 그동안 회사는 남자 임원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경영상태는 사주도 쉽게 해결할 수 없을 만큼 악화된 상태였다. 사주는 그녀와 나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원만한 해결을 원하지만 쉽지는 않을 거 같다. 책임과 의무와 권리는 같이 오는 법이다. 권리만 누리려 했던 그녀는 실지로 누린 게 뭐가 있느냐는 항변이다. 책임과 의무를 회피했던 자신의 행동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조만간 자의든 타의든 나는 그녀를 잃을 것 같다.

사람 사이에 일정한 간격이 있어야 한다던가? 목사와 신도로 만났더라면, 일정한 간격을 유지했더라면 그녀는 내게 단정하고 온화한 카리스마 있는 여목사로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