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거리

by 우선열


11월의 거리'라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자투리 시간에 백화점을 지나다 마침 백화점 복도에서 열리고 있는 사진 전시회를 보게 되었다. 별 관심 없이 지나치다가 단순히 나목들이 늘어선 흑백사진 앞에서 나는 잠시 시간이 멎는 것 같았다. 사진에서는 금방이라도 11월의 찬바람이 불어 나올 것 같았다. 황량하고 쓸쓸했다. 정해진 스케줄이 있어 황망히 사진 앞을 떠나야 했는데 그 후로 이따금 그 사진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나름 사진의 출처를 찾기 위해 노력해 보았지만 작가도 알지 못하고 정확한 제목도 알지 못한 채, 그날의 '11월의 거리' 풍경'을 찍은 사진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러니까 '11월의 거리'라는 사진은 내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사진일 수 있다. 마음이 쓸쓸하거나 마음이 번잡할 때 나는 내가 그 사진 속에 들어 있는 것만 같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풍경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봄 철에 피는 화사한 꽃들과 푸르게 돋아나는 새싹들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시시 때때 변하는 푸른 하늘 사진을 좋아한다. 특히 겨울철 시리도록 푸른 하늘은 추위를 못 견디는 성정도 이기게 한다. 겨울철 쨍한 하늘을 보기 위한 외출을 망설이지 않는다. 어린 시절, 늘 바라보던 시골의 푸근한 산 능선은 가장 친근한 피사체다. 겹겹이 이어지는 산자락의 부드러운 곡선을 카메라 렌즈에 담을 때면 마음의 고향에 돌아온 듯 편안해진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를 향한 막연한 동경은 파도치는 해변의 역동적인 순간이나, 잔잔한 수평선의 고요함을 담게 했다. 가을이 오면 단풍의 아름다움이나 낙엽의 쓸쓸함보다 황량한 11월의 거리에 마음을 빼앗긴다.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대곤 한다.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좋아하는 것뿐이지 잘 찍지는 못 한다는 것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마는 성향이 있어서일까? 분명 예쁘고 좋아하는 것을 찍었는데 사진에는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이 찍혀 있기도 하고 내가 본 것과 다른 모습이 들어 있기도 하다. 그렇다, 그냥 찍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섬세한 작업, 각도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이야기가 담기는 렌즈의 오묘함, 사진 한 장 속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디테일이 숨겨져 있고 그것을 담는 사람의 정성이 깃들어 있다.

사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여전히 호기심의 영역에 머물러 있지만, 마음 한편에는 ‘많이 찍다 보면 언젠가 나도 마음을 울리는 사진 한 장쯤 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자리하고 있어 무수히 찍어낸 사진들을 보며 웃기도 하고, 그날의 기억 속으로 잠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영상이 발달한 요즘엔 너도나도 생생한 순간을 기록하는 동영상에 환호하지만, 나는 한 장의 사진이 주는 깊은 여운이 더 좋다. 처음 ‘11월의 거리’를 보았을 때 느꼈던 그 벅찬 감동을 언젠가 내 사진으로 재현해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있다.


아마도 내성정은 오래 기다려야 맞이할 수 있는 11월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좋은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을 오래 간직하면서도 정작 용기를 내어 본격적으로 사진 공부를 시작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하지만 왠지 이번 11월에는 나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동안 쌓은 어설픈 경험 속에서 빛나는 순간을 포착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사람들을 웃고 울릴 수 있는 사진, 나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런 ‘좋은 사진’ 한 장을 찍어보고 싶다. 어쩌면 ‘11월의 거리’는 내가 평생 동안 찍고 싶은 사진의 이상향일지도 모르겠다. 마음 깊숙이 숨어 있던, 나조차 몰랐던 간절한 로망 하나를 발견한 지금, 문득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