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이름으로 19

차전무와윤부장

by 우선열

회의 때마다 눈동자를 굴리며 주변 눈치를 보던 윤 부장이다.

"그러니, 회사를 믿을 수가 없어서요, 물건 살 사람이야 많지만 팔아도 될까 모르겠어요?"

가장 양심적인 체 하며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미워

"회사 물건 못 믿으면 못 팔지요, 안 팔 거면 회사에 남아 있을 이유 없고요. 다른 회사로 가서 급여 받으세요

여기 앉아서 일 안 하면 서로 손해입니다"

하고 말았다

"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예요. 팔 물건이 있어야지"

비아냥거리는 얄미운 톤의 목소리가 났다. 계속하면 말다툼이 될 것 같아 자리를 피했다


"전무님 말씀이 옳아요, 그렇게 합시다"

회의 때마다 전무의 의견이 나오면 윤 부장이 싸고돌았다. 일 년이 다 가도록 실적이 없는 윤 부장은 약간의 계약을 걸어 놓고 야금야금 8개월에 걸쳐 조금씩 대금을 납부하고 있다. 회사에 작은 계약이라도 이루어져 급여 정산이 될 것 같으면 일부 대금을 넣어 실적을 과시하며 급여를 정산해가는 얕은 수작이다. 실적 없이 급여만 받을 수 있는 야비한 술수는 차 전무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남녀의 사랑에 국경도 나이도 없다지만 그녀는 그보다 열 살이나 많다'. 속 사정은 모르겠지만 둘 다 어엿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사랑과 재채기는 감출 수가 없다던가, 그와 그녀의 묘한 기류는 남의 일에 무관심한 한 나도 눈치챌만했다.

"부장님, 나 민망해서 혼났어요 부장님 일찍 퇴근 한 날 비가 왔잖아요, 우산을 안 가지고 나와서 사무실에 다시 갔더니 윤 부장과 차 전무가 붙어 있다가 얼른 떨어지는 거예요, 민망해서 얼른 고개를 돌렸다니까요

우산 가지러 왔어 했더니 윤 부장이 이거? 하면서 우산을 집어줘서 허둥지둥 나왔다니까요, 내가 잘못한 거처럼 얼굴이 빨개지더라고요, 분명히 무릎에 앉아 있었어요, 내일부터 그 사람들 민망해서 어떻게 보지요?

망칙하게 사무실에서. .불륜이잖아"

성 부장이 호들갑을 떨었다

"에이 잘못 받겠지, 차 전무가 성격은 더럽지만 그런 짓은 안 할 거 같은데"

이 이사 가 성 부장의 말을 막았다

"그렇지요, 설마 사무실에서 별일이야 있겠어요"

기죽은 성 부장이 마지못해 입을 닫았다


도둑이 제 발 저린 다더니 다음날 일찍 출근한 우리들에게 차전무가 말을 꺼냈다

"흰머리가 많이 나서요, 어제 윤부장이 흰머리 뽑아 주었어요"

나와 이이사의 눈이 마주쳤다.

"흰머리 뽑기는 내가 선수인데 이봐 족집개까지 가지고 다니잖아. 그래도 조심하세요, 머리카락도 듬성듬성인데 다 뽑히면 어쩌려고 . . 남자가 바람피면 대머리 돤대, 늙은 본처는 늙어 보이라고 검은 머리 뽑고 나이 어린 애인은 젊어 보이라고 흰머리 뽑는다던데 . . "

뒷담화를 눈치챘을까 공연히 너스레가 나왔다


차 전무는 알게 모르게 윤 부장의 편의를 봐주고 있었는데 흰머리 사건 이후로는 내놓고 윤 부장을 싸고돌았다. 직원들은 실세가 차 전무이고 차 전무 위에 윤 부장이 있다며 비아냥거렸다.

자금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는 회장이지만 여의치는 않았다. 거래처의 신용도도 낮아졌기 때문에 좀처럼 만회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꼬투리를 잡은 차 전무는 일을 해서 어려움을 헤쳐 나갈 생각보다는 회장을 압박하는 일에 몰두를 했다. 윤 부장이 사사건건 앞서서 차 전무를 옹호하니 무난히 일을 해결하려는 사람들의 침묵보다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윤 부장의 맞장구와 강 부장의 이권이 개입되니 차 전무는 더 기세등등 했고

심지어는 일을 하면 할수록 미궁에 빠지고 마니 회장을 압박하여 회사의 회계를 본인이 맡겠다는 뻔뻔스러운 제의도 했다. 송두리째 회사를 빼앗겠다는 음모였다. 조바심을 내는 나와 이 이사에 비해 회장은 태연했다

오히려 우리에게 좀 더 지켜보자며 차 전무에게 주도권을 맡겼다.나와 이 이사는 고양이 앞의 쥐 형국이 되었다. 회의 때마다 미래 꼬리를 잡고 늘어져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화가 나면 목소리가 가라앉는 내 버릇이 통하지 않았다.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말꼬리를 잡아 사사건건 시비였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회의는 말다툼으로 시작해 큰소리로 끝났다. 평생 낼 큰 목소리를 다 싸버린 것 같았다. 나 자신의 감정을 콘트럴 하지 못해 큰소리를 내는 내가 한심했지만 웬만하면 참아 보려는 내 노력이 무색해졌다.

나는 퇴사를 결정하고 이 이사와 상의를 했다 이 이사도 같은 생각이지만 산적한 문제를 두고 떠나는 건 책임 회피라며 만류했다.최소한 회사의 피해를 줄여 보고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며 나를 다독이며회사에는 남겠지만 차 전무와는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는 내 의견을 회장에게 전했다. 차 전무의 횡포를 견디지 못하는 성 부장도 함께였다. 줄다리기를 하며 이이사와 차전무 사이를 오가던 강부장은 차전무의 감언이설에 이권을 내려 놓지 못하고 차전무 편을 들었다


무심하달만큼 회사일에 등한시하던 회장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강부장과 차전무를 다독여 사무실을 독립 시키고 우리들을 위한 사무실을 다시 준비했다.영업 활동이 저조한 우리를 대신해서 회장이 재고물품을 판매한 것이다. 자금이 돌기 시작한 회사에는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