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피고 지는데, 4월의 끝자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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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선열


만우절로 시작된 4월이 거짓말처럼 지나가버렸습니다. 자고 깨니 챔피언이 되었다는 말처럼 느닷없는 심정이기도 합니다. 거짓말처럼 그렇게 4월이 가고 있군요. 회자정리가 인간의 숙명임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슬픔이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막 피어나는 벚꽃나무가 꽃이 흐드러지게 핀 상태 그대로 땅바닥에 뒹굴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철렁 마음이 내려앉았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고 도리질을 쳤지만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 하던가요. 그 시간에 이미 나는 이별을 예상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다만 미련한 성정이 애써 부인하려 했던 것뿐이겠지요. 그래도 얼마간은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더 있으려니 간절한 염원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엄마, 내일 또 올게" 하는 내 말에 고개를 돌리고 앙상한 팔을 들어 올려 내 안경을 잡아챌 때만 해도 그게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우리들 중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아직은 기력이 남아 있으시니 우리에게도 그만큼의 시간이 남아 있는 줄만 알았습니다.


물 한 모금 변변히 넘기시지 못한 채 열흘이 지났건만 어머님은 배변처리를 여전히 힘들어하셨습니다. 자식들에게조차 맡기려 하지 않고 기어이 기어서라도 화장실에 가고야 말았습니다. 98세의 연세에도 요양보호사의 돌봄을 싫어하실 만큼 독립심과 자존감을 지키시던 분이었으니 그때쯤 우리는 눈치를 챘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말씀이 되어 나오지는 않으셨지만 당신 곁에 머물기를 원했던 마지막 몸짓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엄마, 기운도 쎄시네, 안경 깨지면 내일 못 오거든요, 내일은 내가 엄마 옆에서 잘게, 내일 아침 일찍 올게" 그렇게 돌아섰는데 그날 자정을 넘기자마자 어머님은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습니다 누군가는 챔피언이 되었다는 그 시간에 우리는 어머님을 여의고 말았습니다. 천지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말입니다. 잔인한 사월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머님이 안 계신 지금도 벚꽃은 피고 진달래, 개나리도 피고 울긋불긋 꽃대궐이 치러지고 있습니다, 어머님은 동요를 좋아하셨습니다. 이맘때면 '고향의 봄' 노래를 가만가만 부르시곤 했습니다. 전후 어려운 시절을 보내며 자식보다 조카들을 먼저 챙기시는 아버님을 보며 가슴앓이를 하셨지만 셋째 며느리로서 감당해야 하는 맏며느리 역할에 소홀하신 적은 없었습니다 "언니 덕이지 뭐" 고모들이 종종 하시던 말씀입니다. 어머님은 연세 드시면서 세 시누들과의 나들이를 무엇보다 즐거워하셨습니다. 고모님들을 모시고 엄마와 봄나들이를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날은 좀 멀리 충청도에 사는 사촌 언니 집을 방문하는 길이었습니다. 마침 오 남매 중 내가 시간이 되어 운전을 맡았습니다. "먼 길에 너 혼자 운전하면 힘들지 않겠니?" 걱정하시더니 가만가만 동요를 부르기 시작하셨습니다. 고향의 봄에서 시작하여 과수원 길, 과꽃, 개나리, 진달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따오기, 학교 종, 생각나는 대로 우리는 계속 엄마를 따라 동요 이어 부르기를 하며 먼 길을 즐겁게 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 딸이 좋기는 하다" 우리 고모님 세분은 한결같이 아들만 두셨습니다. 평소엔 며느리와 아들 자랑이 늘어지셨지만 그날만큼은 진정 딸을 부러워하셨습니다. "제가 자주 모실게요, 가까운 교외라도 자주 나가요"그렇게 한말이 공수표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 번만이라도 시간을 내어 더 모실 수 있었으면 이렇게 애닮 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필 그날 내 안경을 잡아챈 건 그 약속을 지키라는 뜻이 아니었을까요?


이젠 두 분 고모님도 안 계시고 병약하신 고모 한 분만 살아계십니다. 어머님 장례에도 참석하지 못하실 만큼 병약하신 고모님이십니다. 병약하신 고모님을 보며 다시 한번 회한에 젖습니다. 어머님의 건강하신 모습만으로 안심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병약하신 고모님 모시듯 좀 더 세심한 관심을 가져야 했었나 봅니다. 강인한 모습만 믿고 제대로 살펴드리지 못한 것만 같습니다


올봄은 유난히 꽃이 한꺼번에 피고 집니다. 벌써 모란도 피었더라고요. 5월에 지고 마는 모란이 아니라 4월에 피었다가 지고 말 것 같습니다. 꽃들도 어머니를 추모하고 있나 봅니다. '어머님은 올해 벚꽃을 보지 못하시겠구나' 벚꽃 흐드러진 길을 걸으며 이런 생각을 할 때만 해도 그게 마지막일 줄은 몰랐습니다. 다음 해를 기약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온천지가 꽃대궐이 되어 버린 이 봄에 우리는 어머님을 다시 뵈올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후딱 4월이 가버리는군요, 어머님은 가셨지만 우리는 어머님을 보내드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 가슴에 살아 계시는 동안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어머님은 지금도 우리 오 남매가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라고 계실 겁니다. 어머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일이 효도라고 믿고 있으렵니다, 거짓말 같은 4월을 보내면서 이젠 더 이상 슬픔 속에 빠져 있어서만은 안 되겠지요. 어머님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 보렵니다. 그리움이야 불쑥불쑥 찾아오고 시간이 흐른다고 줄어들지는 않겠지만 자랑스러운 어머니의 딸이 되는 길이 그리운 어머님을 그리는 길이라고 믿어 보렵니다. 이젠 슬픈 4월을 보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