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
회사의 경영상태가 이 모양인데 수수방관하고 있는 사주의 입장을 처음엔 이해할 수가 없었다 7~8 개의 영업장을 운영했었던 능력자라는 말도 믿어지지 않았다. 수많은 모략 중에서도 흔들림 없이 이 이사를 지지해주는 모습에 신뢰를 중시하는 사람이라는 파악은 할 수 있었다. 근본적인 인간적인 신뢰가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의 고난은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7~8 개의 영업장을 운영하며 직원의 급여를 위해 전 재산을 처분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한 집안의 가장인 내가 일 년여 밀린 급여로 생활이 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한 집안의 가장을 파산 상태로 몰아넣은 영업 사원이라는 내처지가 한심하기도 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였다. 하자 물건이니 팔 수 없었다는 직원 측과 팔 수 없었으면 회사에 남아 있어서는 안된다는 회사의 입장이다. 급여가 밀리는 회사 측을 원망하는 직원과 일을 못하여 실적이 전무한 직원을 탓하는 회사, 급여를 책임질 수 없다면 회사를 차려서는 안된다는 직원, 전 재산을 털어 넣어 빈털터리가 될 때까지 영업실적이 없었다는 회사의 입장, 일 년여 동안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며 나는 중간 입장에 서 있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소시민의 입장인 영업 사원이 버텨내기엔 무리가 있는 세월이다
사주는 다시 재기를 약속하고 있다. 내가 머물렀던 회사가 앞으로라도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는 있지만
여태까지 버텨 온 인고의 시간이 아깝기는 하지만 당장의 생계가 문제인 나는 다시 보따리를 싸 들고 거리로 나가야 할지 엄동설한의 추위를 각오하고 머물러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오라는 곳은 많지만 갈 곳은 마땅치 영업사원이지만 정년이 없는 일자리이니 감사하다. 할 수 있는 한 내 능력으로 살 수 있음에 다시 한번 감사하다. 내일을 기약하자던 안사장도 재기의 기회를 보고 있는 듯하다.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이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안사장과 나는 전생을 통하여 어떤 인연이 있었던걸까?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이루어진 첫 대면 부터 안사장은 내게 호의적이었다. 오너로서 수줍음 많은 성격을 보완하느라 안사장의 평소 모습은 좀 냉정해 보였는데
스스럼 없이 입을 가리고 웃는 얼굴에 하나가득 눈웃음을 띄고 있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이라 영업에는 부적합하다는 평을 첫대면에서 많이 들었던 내가 조금은 경직되어 있었기 때문일까?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하면서도 부담을 주는 언사는 없었던 안사장이다. 논리적이고 합리적 영업방침을 고수하는 그로서는 드문일이었다. 호의를 무조건 받을 수만은 없는 나는 나대로 부담감에 시달려야했다. 빚을 진 채로 더부살이를 하는 불편한 관계였다. 그 당시 우리들은 물건 대금을 선금으로 받아 놓고 행방불명이 된 사장의 뒤처리를 하느라 일 년여 동안 급여를 받을 수가 없었다. 공과금은 공과금대로 카드대금은 카드대금대로 밀릴 수 있는 한 밀어 놓고 곡예하듯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영업부터 재정까지 안사장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지는 회사에서 안사장은 평소와 달리 우리에게 선 급여를 주는 파격적인 대우를 해 준 것이다. 판단력 있고 영악한 선이의 결정으로 첫 계약을 무리 없이 끝낸 우리는 무사히 안사장 회사에 둥지를 틀게 되고 영업실적도 만만치 않게 쌓을 수 있어 안사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비교적 안정적으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안사장이 회사의 문을 닫게 되고 우리는 다시 거리로 내몰려야 했지만 우리들에게는 언제든 돌아가야 할 친정 같은 회사로 남아 있다. 안사장이 어려움을 겪으면 같이 헤쳐나갈 각오도 되어 있다. 한동안 온갖 악재에 시달렸던 안사장이 다시 안정을 찾고 있는 것 같다. 언제든 부르면 달려가고 싶었던 우리들이었는데 지금 우리의 상태는 불행하게도 안사장을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다.일 년여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급여를 감당하느라 영업에 전념하기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재정상태가 안 좋아지면 냉정하게 회사에 등을 돌려야 하는데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한 내 탓인 거 같아 무능한 임원들에게 시달리며 시간을 끌어오고 말았다. 다행히 오너가 다시 재기의 의욕을 보이니 당면한 문제들을 풀어 나갈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다. 아직은 안사장도 재기를 위한 준비기간이 더 필요한 것 같기는 하다. 무사히 이번 회사가 안정되면 나는 안사장과 다시 일을 해 보고 싶다. 안사장에게 지은 마음의 빚을 꼭 갚고 싶다. 온갖 루머에 시달리며 고통을 겪었을 안사장이 자신을 믿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작은 위로라도 받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