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돌아올 곳이 있어 즐거운 거야.”
자주 하는 말입니다. 돌아올 곳이 없는 여행은 방황이지요.
간식으로 이것저것 먹을 수는 있어도, 주식은 결국 밥이어야 합니다. 김치 한 조각, 따뜻한 국물과 밥 한 술이 있어야 비로소 밥다운 밥을 먹었다 싶습니다.
가끔 떠나는 여행이 즐거워서, 간식이 맛있어서 나는 변화에 민감한 줄 알았습니다.
유행하는 물건에도 곧잘 반응하는 편이거든요.
찢어진 청바지를 입이 찢어지게 흉보다가도 결국엔 입고 말았습니다. 무릎 아래 살짝 올이 풀린, 말하자면 '소극적인 찢청'이었죠. “열 살은 어려 보이겠는데?” 하는 기대를 안고 나선 나들이에서 들은 말은 “어르신”이었습니다. 충격이었어요. 할머니라고 자칭하면서도 아줌마인 줄 알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 국가공인 어르신, 65세 어르신 카드를 가진 사람입니다. 하지만 마음은 늘 17세, 찢청이 잘 어울릴 것 같은 그런 시절을 품고 살아갑니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를 따라잡지는 못해도, 그 변화 앞에서 고집만 부리는 것도 능사는 아니더라고요.
손글씨를 쓰다가 자판으로 바꾸던 날도 참 오래 고민했습니다. 나는 끝까지 손글씨를 고수하리라 다짐도 했었는데 내 손글씨는 내가 써놓고 나도 못 읽는 지경입니다. 쓰느라 고생, 읽느라 다시 고생하고 있는데 자판은 신세계였습니다. 독수리 타법으로 더듬더듬 쓸 수 있을 뿐이지만 그래도 일정한 글씨체로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건 제법 괜찮은 일입니다.
그래도 아직 문방구를 지나치다 예쁜 연필을 보면 사버리고 맙니다 . 어쩌면 그건 연필의 용도보다 연필 시대를 향한 향수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자판 시대를 살고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연필 시대에 머물러 있거든요. 모르스 부호 같은 내 악필을 떠올리며 말입니다.
먹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국수가 더 맛있다고 우기지만, 새로 나온 라면이 궁금해서 슈퍼마켓 라면 코너를 기웃거리곤 합니다. 맛보고 나서 하는 말은 늘 같습니다.
“역시 삼양라면이 최고지. 처음 나왔을 땐 진짜 닭고기 국물이었거든.”
미니스커트를 반대하다가 결국 입었고, 나팔바지를 흉보다가 거리를 바지 자락으로 쓸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 쫄바지를 흉보다가 긴 상의 아래 슬쩍 걸쳐 입은 기억도 납니다. 비판하다가도 결국 한발짝 늦게 편승하고 맙니다. 시대의 변화를 거부할 수는 없더라고요. 버티면 결국 불편해지는 건 나 자신이니까요.
컴퓨터를 외면하다가 호되게 컴맹의 설움을 받은후 정신차리고 AI까지는 그럭저럭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뉴럴 링크’, ‘BCI’ 같은 외계어들이 들려옵니다. 메타버스니 코인이니, 아바타니 하는 말들도 한바탕 폭풍처럼 지나갔습니다. 뭐가 뭔지 갈수록 오리무중인것만 같습니다 .
그렇지만 고향집이 그립지만 아파트에 살고 있듯, 아날로그 시대를 그리워하면서도 디지털 시대에 적응해보려는 노력을 해야만 합니다.
나는 아날로그형 인간입니다. 변화를 늦게 받아들이고, 그 변화 앞에 한참을 머뭇거리지만 어째튼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외계어 같은 신문물이지만 언젠가는 받아들이고 디지털화 되어 갈 수 있을겁니다.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