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전무 이야기2
새 회사에서 첫 번째 직원 면접을 한 곽 상구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큰 키와 반듯한 체격만으로도 이목을 집중시키기 충분한 외모인데 짧게 깎은 머리에서는 묘하게 강한 카리스마가 느껴졌 . 자칫 차가워 보일 수 있는 분위기를 입꼬리를 올리며 짓는 미소가 부드럽게 풀었다.웬만한 사람은 경계심을 풀어 놓을 수 있는 훈훈한 모습이다.
"우연히 부장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 여사님께 소개해달라고 떼를 써서 오게 되었습니다"
첫 대면부터 어색함 없이 대화를 풀어 나갔다. 50 넘은 남자들에게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아집이라던가 여자를 무시하는 태도,안하무인의 행동거지는 전혀 볼 수 없었다.남자 직원의 영입을 원하지는 않았었지만 첫눈에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건 없이 나를 영업부장으로 받아 준 노 전무를 찾아 곽 상구를 소개했다. 영리한 노 전무의 눈이 반짝 빛나는 걸 볼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노 전무는 나를 인사실장으로 다시 발령을 내며 곽상구를 영업 부장으로 앉혔다 파격적이었다. 남자 못지않은 뱃장과 날카로운 판단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치마만 둘렀지 열 남자 몫을 하는 여장부라는 말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노 전무와 나는 또래의 아들을 두고 있어 공감대가 컸고 노 전무 역시 병약한 남편의 오랜 투병생활과 시집살이에 지쳐 이혼을 한 상태여 서로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예민한 사춘기 아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어미의 마음을 나누고 있는 것만으로도 각별할 수밖에 없는데 나는 나보다 어리지만 센스와 빠른 결단력이 있는 그녀를 좋아했고 그녀는 영업부장 답지 않게 조용하고 부드러운 나를 감싸 않을 줄 알았다.
거친 영업 세계에서 부드럽고 착한 이미지는 그리 각광받지는 못하는 성품인데 그녀만은 그런 면을 보석처럼 아낄 줄 알고 있었다
노 전무의 영리하고 노련한 진두지휘로 우리 회사는 승승장구 발전을 거듭했고 건설회사를 경영했던 경력이 있던 곽 부장도 발군의 실력을 들어내어 노 전무의 튼튼한 오른팔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 나는 그들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를 놓치지 않았다.둘 다 이혼을 하고 있는 상태이고 아직은 50대 초반의 나이들이니 좋은 짝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아들들을 데리고 다니는 여행을 계획하고 사내아이들인 만큼 납자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곽 부장을 끌어들였다. 아이들끼리 친해지고 어른들까지도 친해졌다. 내가 보모와 짐꾼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은 희생을 감수한 덕분이었다.
문제는 노 전무는 친정 식구까지 돌보고 있는 가장이었고곽 부장은 사업에 실패하고 남은 재산을 전처에게 모두 넘긴 무일푼 신세였다. 노 전무의 오빠가 내게 정식으로 항의해 왔다. 돈 버느라 여태껏 고생한 노 전무를
무일푼인 남자와 연결하면 안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나는 노 전무의 신세를 지고 있는 노 전무 오빠의 무능함이 싫었지만 고생한 여동생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외면할 수는 없어 난처한 입장에 빠지게 되었다.
진퇴양난의 경지에 이른 내가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실마리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탄탄한 영업기반으로 높은 영업실적을 올렸건만 사주는 엉뚱한 곳에 사업을 벌여 놓고 있었다.한판 승부가 가능하다는 영화제작에 손을 댄 것이다. 자금은 밑빠진 독처럼 한없이 빨려 들어갔고 이를 반대하는 노 전무와 사주와의 관계는 극도로 나빠졌다.
사주는 노 전무를 해고하는 악수를 두었다. 노 전무를 따르고 있던 부장들도 모두 사표를 던지려는데 곽 부장이 나섰다. 모두들 생계비 마련을 위해 나왔는데 희생해서는 안된다며 내게 영업조직을 부탁하고 자신이 노 전무를 보필하여 같이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한번 움직이면 두세 달의 급여가 손실되는 걸 아는 부장들이 모두 고마워했다. 노 전무도 우리의 마음은 알지만 자신을 위해 희생 시킬 수는 없다며 우리들의 회사 잔류를 권했다
영업 세계에서 보기 드문 퇴임이었다.영업조직은 서로의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퇴사시에는 조직을 흔들어 놓는 풍조였다. 우리는 물론 헤임을 한 사주조차도 감동을 한 퇴임식이었다. 우리는 복도 끝까지 일렬로 서 손뼉을 치며 노 전무의 아름다운 퇴임을 격려했다. 나도 같이 나가고 싶었지만 전회사에 있던 우리 직원들이 막 합류를 시작했고 남아 있는 직원들의 보호를 원하는 노 전무의 뜻을 버릴 수는 없었다
나는 최대한 사주와 합의를 해 직원들을 보호해야 할 사명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