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타너스 나무 잎이 피고 있다

by 우선열


4월의 나뭇잎을 좋아한다. 여리고 순한 모습이 방글방글 웃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고 있는 듯하다. 무조건 무한한 사랑을 퍼붓고 싶어진다. 4월에 피는 화사한 봄꽃들에 열광하면서도 연둣빛 새싹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나뭇잎들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산과 들은 물론 도심의 아스팔트 길에 가로수로 서기도 한다.


내가 자란 청주는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유명하다. 잘 자란 플라타너스가 길 양편에 늘어서 나무 가지끼리 아치를 이루고 커다란 나뭇잎들이 틈을 메꿔 플라타너스 거리는 시원한 그늘이 된다. 삼복더위도 무섭지 않다. 플라타너스 나무는 늘 그 자리에 있었고 우리 모두 당연한 일이라 여겼다. 빛과 공기와 물 같았다. 우리와 떨어져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의심해 본 적도 없었다. 잎이 피어 그늘을 이루고 낙엽 되어 떨어지고 다시 봄이 되면 잎이 나는 건 우리가 숨을 쉬고 있는 일처럼 일상이었다.


젊은 시절 우리는 일탈을 꿈꾸었다. 답답한 소도시가 아니라 넓은 도심으로 나가고 싶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성공한 기업인의 말이 우리를 부추겼다. 꿈과 야망을 가지고 우리는 고향을 떠났다. '금의 환향하리라', 머지않아 귀향하여 고향의 품에 안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명예와 부와 출세는 귀소본능과 함께했다. '꿈을 이루면 고향으로 오리라, 파랑새를 찾아서 집으로 돌아오리라'. 돌아온다는 약속이 있어 떠날 용기가 생겼을 수도 있었겠다.


세상사 마음먹은 대로 되는 건 아니다 '해보기나 했어?' 큰소리치며 시작한 일들은 번번이 실패로 끝나고 꿈은 현실에서 멀어져 갔다. 고달픈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일상 속에서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만 하는 일에 매달려야만 했다.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다 하루를 살아내는 일이 시급했다. 머피의 법칙이라 했던가, 예기치 않았던 어려움은 한꺼번에 몰려온다, 사업에 실패한 남편은 충격으로 앓아 누었고 병원비와 생활비. 아이의 학비를 벌어야 하는 힘든 날들이 계속되다가 남편은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남겨진 빚과 아이와 생계가 고스란히 내 몫으로 남았다. 슬픔에 젖거나 원망을 하는 일도 사치였다. 홀로서기의 길은 멀고 험하기만 했다. 하필 11월, 계절마저도 나를 외면하는듯했다. 춥고 긴 겨울을 예감했다. 살던 집을 처분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생전 처음 나는 홀로 이사를 해야 했다. 낯 선 골목을 걸어 나오면서 세상에 혼자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왔다. 모두가 나를 외면하는 것만 같았다. 휘청거리는 발걸음에 바스락, 나뭇잎이 밟혔다. 갈변한 플라타너스 잎이었다, 내 발밑뿐만 아니라 플라타너스 잎들은 가로수 주변에 나뒹굴고 있었다."플라타너스야"외국여행에서 한국말을 듣는 듯한 기분이었다. 낯 선 곳에 플라타너스가 있었다. 플라타너스가 있는 곳, 떠나온 내 고향. 비로소 숨이 쉬어지는 듯했다. 플라타너스가 있는 곳이라면 다시 시작해 봐도 좋지 않을까? 적어도 나 혼자는 아니지 않은가? 긴 겨울을 버텨 낼 수 있을 건만 같았다. 고향에서는 있는 듯 만 듯 당연한 플라타너스 나무였는데 편안해졌다. 겨우내 나목으로 버티고 있는 모습이 의연했고 덕지덕지 묵은 껍질을 스스로 벗고 회생하는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 봄이 되면 플라타너스에 새잎이 나듯 나도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플라타너스는 잎이 늦게 핀다. 4월 들어 다투어 싹을 내미는 여느 나무들과 달리 4월 중순이 되어서야 마지못해 작은 이파리를 내놓기 시작한다. 그때 나는 그것을 몰랐다. 플라타너스 그늘의 시원함만을 탐했을 뿐이다. 그늘이 되기까지 숱한 노력이 있었음을 알지 못했다. 그해 4월 다투어 트는 새싹들을 보며 마음을 졸여야 했다. 플라타너스 잎이 피지 않을 것만 같았다. 객지에서 나는 영원한 이방인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4월 중순이 되어서야 플라타너스 잎이 피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잎이었다. 플라타너스 잎은 큰 것인 줄만 알았다. 그늘이 주는 시원함만을 탐했기 때문이다. 작게 돋기 시작한 플라타너스 잎들은 폭풍 성장을 한다. 성장을 멈춘 다른 나뭇잎과 비교가 안 되는 크기이다. 좀 늦으면 어떤가, 폭풍 성장을 하여 다른 잎들이 주지 못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플라타너스 잎이다. 껍질을 벗는 아픔을 스스로 감당하고 주변의 환경에 휘둘리지 않는다.


플라타너스 잎이 피고 있다. 해마다 겪는 일이건만 이맘때가 되면 나는 느린 플라타너스 잎에 애를 태운다. 혹시 잎이 피지 아니면 어쩌나 마음을 졸인다. 조급한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생로병사의 인생길이 어차피 정해진 길이다. 조금 늦은들 어떠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