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한다
책 쇼핑이 가장 즐겁고 자주 하는 소비생활이다
특별히 장르를 가리지 않고 서평을 보거나 신문에 소개된 신간을 찜하는데
막상 서점에 가면 메모한 책보다는 눈에 띈 선정적인 문구나 제목에 유혹되는 편이다
베스트셀러라던가, 서점에서 좋은 위치에 진열한 책들에 현혹되어
꼭 사고 싶었던 책들보다 즉흥적으로 눈에 들어온 책들을 사게 된다
책값이 싸기는 하지만 은퇴 이후의 삶에서 용돈에 자유로울 수는 없으니
서점 나들이를 줄이고 있다
서점 나들이를 줄인 또 하나의 이유는 시력이 나빠진 탓이기도 하다
시력이 좋던 젊은 시절에는 대형 서점에 서서 가벼운 책 한 권쯤은 읽어 낼 수 있었다
목차나 프롤로그, 에필로그를 훑어보는 재미도 있었는데
침침해진 눈으로는 그마저도 자유롭지 않으니 서점 나들이가 시들해지기도 한다
도서관도 그렇다,
책을 무제한 공짜로 읽을 수 있기는 한데 작은 글씨의 책들을 읽는 게 어려워졌다
전에는 그냥 도서관이었는데 디지털 도서관으로 이름이 바뀌기도 하여
컴맴인 나는 공연히 문 열고 들어가기가 망설여진다
문자 문명 시대를 살아온 사람의 애환이다
무엇보다 도서관이 멀어 오가는 시간도 만만치는 않다
이래저래 책을 읽지 않는 변명을 하고 있다
좋아해서 여전히 책 앞에서 지름신을 물리치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어렵게 사 놓은 책들도 구석구석 처박아 놓고 잘 읽지를 않고 있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읽지 않은 책들을 볼 때마다
'언젠간 읽고 말거야', 하거나
'이제부터 책 사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한다
어린 시절에는 책 읽기를 무척 즐겼었다
책 한 권을 손에 잡으면 다 읽을 때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던 기억이다
하다못해 재래식 화장실에 비치해 놓던 신문지 조각까지 다 읽고야
냄새나는 화장실에서 나오던 기억도 있다
책이 귀하던 시절이었으니 활자로 된 모든 것이 귀하고 종이도 귀했다
화장실에는 신문이나 잡지를 16절지 크기로 잘라 매달아 놓아
부드러워지도록 잘 구긴 다음에 화장지 대신 사용하던 시절이다
재래식 화장실의 냄새를 이길 정도로 읽기를 좋아했었다
지금 같으면 절대로 하지 못할 거 같기는 하다
그런 리즈 시절도 있었건만 눈이 침침해지니 책 읽기가 영 불편하다
늙어서 양지바른 창가에 앉아 좋은 책이나 읽으려던 꿈이 박살 나고 있는 중이다
실망만 하고 있을 일은 아니다, 꿩 대신 닭이 있다
요즘엔 유튜버들이 읽어주는 책을 듣고 있다
고전에서 신간까지 각종 장르를 막론하고 골라 들을 수 있다
과학이나 미래에 관한 책, 자기개발서, 경제 서적에서 신간 소설에 이르기까지
검색만 하면 주르르 한눈에 들어온다, 골라 듣기만 하면 된다
다른 사람의 어조나 음색으로 들으니 듣는 재미도 있다
같은 책을 서로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들으니
읽는 사람에 따라 관점이나 감정등이 조금씩 다른 느낌도 있다
특히 지하철 이동 중에 이어폰으로 듣는 걸 좋아했는데
나이 드니 청력이 나빠지는 원인이라 한다
나이 들면 청력도 나빠진다
지하철에서 어르신들이 큰소리로 말한다고 너무 미워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나이 들면 귀도 어두워져 잘 들리지 않으니 목소리가 커지게 된다
어르신들이 무식하고 배려가 없어서가 아니니 조금은 이해해 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누구나 사는 동안 한 번은 겪어야 하는 일이다
문자 문명시대를 살았으니 활자가 편하기는 하다
좋은 책을 즐겁게 듣다가도 마음에 드는 순간이 오면 '이 책 사야겠다' 하고 만다
듣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확실히 IT 문명으로 만족하는 세대와는 다르다
태어난 순간의 문화는 받아들이기 쉽지만
태어난 후에 바뀐 문화는 받아들이기가 힘들다고 한다
한동안 Q R 코드가 힘들었다
찍기만 하면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QR코드의 원리를 따지고 들었더니
"전기 원리는 알아? 그냥 쓰는 거잖아 QR 코드도 그래, 그냥 쓰면 돼"
하는 대답이 더 분통 터지게 들렸다
원리를 모르는 일을 그냥 해야 한다는 건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이라며 반발했는데
전기 원리도 알고 쓰는 건 아니었다
태어날 때부터 겪었던 문화라 받아들이기 쉬웠을 뿐이다
나이 들면서 더 배워야 하는 이유이다
세상은 바뀌는데 따라 바뀌지 않으면 생활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전처럼 노후가 길지 않았던 시절에는 그럭저럭 편안한 노후가 될 수 있겠지만
100세 시대 이후로는 긴 노후를 살아내야 한다
문명에 낙후된 채로 3~40년을 살아야 한다는 건 불행이다
노후에 배움이 더 절실한데 지금까지의 교육은 아이들을 위한 교육시스템이 대부분이다
바뀐 문명만이 아니라 길어진 노후에 대비하는 법도 아직은 잘 모르고 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경험에 의해 설왕설래 말 들은 많지만 정확한 이론도 과정도 가르칠 장소도 변변치 않다
100세 시대 아후 노후 인구가 절반이 넘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문화에 낙후된 채 불행한 나날을 보내게 될 수 있다
더욱이 노후에는 눈도 나쁘고 귀도 잘 들리지 않고 받아들이기도 힘든다
배우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워야 한다,
100세 시대, 삶의 삼분의 일 이상이 불행하다면 사회 전체가 불행해질 수도 있다
노후는 누구에게나 온다
남의 일만이 아니다, 내가 언젠가 겪어야 하는 일이다
읽거나 듣거나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