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은 내가 나이 40에 얻은 늦둥이 다
아들이 93년 생이니 그 시절에 40살 초산은 흔하지 않았다.
더구나 4대 독자였으니 불면 날아갈까 땅에 내려놓지도 못하고 애지중지 키웠다
'개구쟁이라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하면서도 자칫 과보호가 될까 신경이 곤두서기는 했다
내 자식 귀하다고 다른 아이들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닐까, 염려스러웠다
귀한 자식이 엉덩이에 뿔난다는 말이 있지만 내 아이는 이런 내 걱정이 필요 없이 곱게 컸다
건강하고 밝고 똑똑한 아이였다
"아이가 어쩌면 이렇게 예의가 바르냐"며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부들이 일부러 아이 손을 잡고 우리 집까지 와서 칭찬해 주는 일도 있었다
무엇보다 나를 흡족하게 만드는 건 우리 아이의 남다른 총명함이었다
다섯 살 때
무릎에 앉히고 동화를 읽어주는데 청개구리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이가 불쑥
"엄마, 산 사주세요" 했다 "산? 땅 말이니?"
그때 한참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있을 때라 부모가 하는 말을 아이가 엿듣고 하는 말인 줄 알았다
내심 재테크에 관심 있는 부동산 재벌이 되는 건 아닌가 기대에 불 풀기도 했는데
"아니, 산, 엄마아빠 죽으면 산에 묻어야 하잖아"하는 것이다
보통 그만한 아이들은 엄마아빠 죽는다는 말만 들어도 울고 불고 할 때이다
같이 죽겠다던가 죽으면 안 된다고 떼를 써야 하건만 무덤을 만든다는 말에 일순 서운하다가
일찍 철든 아이가 기특했다, 영민함에 천재가 아닐까 하는 기대도 할 수 있었다
일곱 살 때
아이는 비교적 일찍 충치가 생겼다
치과를 가야 하는데 치과 문 앞에만 가도 생떼가 나왔다
어렵게 데리고 들어간 치과에서 도저히 진료를 할 수 없다며 어린이 전용 치과를 소개해 주었다
백설공주 그림이 벽면을 장식하고 의사와 간호사들은 핑크빛 가운을 입은 곳이었다.
잠시 즐거워하던 아이는 진료가 시작되자 온몸으로 진료를 거부하며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구었다
천신만고 끝에 의사와 간호사가 땀에 흠뻑 젖어 진료를 끝냈다
병원이 떠나갈 듯 울어대던 아이는 진료가 끝나자마자 눈물을 거두고 큰 거울을 보더니 "왜 금니로 안 했어?" 하고 물었다.
의사와 간호사와 나는 어리둥절하다가 눈이 마주치며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재벌 되겠습니다"의사가 덕담을 했다
또래의 아이들과는 다른 반응이다
나는 다시 한번 영재교육을 시켜야 하나 고민을 했다
콩깍지가 벗겨진 것은 상급학교 진학 하고 난 뒤였다
도대체 공부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노는데만 앞장섰다
내 아이가 공부를 등한시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아이가 학교를 싫어하는 건 아닌가 걱정되었다
왕따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아이가 학습에 흥미를 잃어 친구들에게도 따돌림을 받고 있을 것만 같았다
학부모 면담일에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더니
" 어머니, 얘가 학교를 얼마나 좋아한다고요, 이 애는 학교에 놀러 오는 애예요,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하는 것이었다
'개구쟁이라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하던 소원이 이루어진 셈이다
나는 친구들이 나만 빼놓고 저희들끼리 공부할 까봐 결석을 못하던 어린 시절을 보냈고
우리 아이는 저만 빼놓고 재미있게 놀까 봐 결석을 못하는 아이이다
나를 닮지 않고 제 아빠를 닮았나 보다
이유는 다르지만 결과는 같다
삶은 그런 것이다.
서로 다른 사람끼리 어울려 정에 묶이고 꼼짝 못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