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는 동물의 왕이라 불린다.
위풍당당한 카리스마 때문이다
이런 매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큰 체격? 멋있는 갈기? 저마다 다른 이유를 말할 수 있지만 사자의 힘은 시선에 있다
대부분 초식동물들은 땅을 바라보지만 사자는 멀리 지평선을 응시한다.
멀리 보는 지혜가 사자의 이미지를 강하게 만들고 있다.
결국 매력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에서 우러나는 멋이어야 한다
올가을, 이 말이 나를 흔들었다.
나는 늘 눈앞의 일들에 급급하여 멀리 보지 못했다
고개를 들지 않았으니 지평선이 보일리 없었다.
눈앞의 먹이를 쫓는 연약한 동물이었다
사자의 시선을 따라가 보고야 고개 숙인 내 모습을 발견했다
멀리 보지 못했으니 제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었겠다
충청도 산골 아이는 늘 지평선 너머를 그리워했다
무지개가 뜨는 그곳을 향하고 싶었다
시선을 멀리 두던 시절이었다
막상 고향을 떠나니 무지개는 더 멀어져 있었다
발밑만 보고 걸어도 길은 멀기만 했다
이고 진 짐들이 시선을 묶어 더 이상 멀리 볼 수도 없었다
하루하루를 힘겹게 사는 초식동물이었다
세월이 흘러, 의무와 책임이라는 짐을 벗을 수 있었다.
자의반 타의 반 내려놓아야 했다
평생을 함께한 짐을 내려놓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볼품없는 짐이었지만 평생을 함께한 것들이다
상실의 아픔을 견뎌야 했다
어쨌거니 일단 내려놓고 나니 몸이 가볍기는 하다
시선을 다시 멀리 둘 수 있다
비로소 갈 길이 보이는 것도 같다.
남은 시간이 길지는 않은데 스크루지의 쇠사슬처럼 무겁기만 한' 이제 와서'가 발목을 잡는다
몇 발자국을 내디딜 수 있을지 알지 못하지만 시선은 이미 앞을 향해 있다
당당한 내 모습이 보인다
멈출 수는 없을 것 같다
힘들고 어려운 길이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두 발자국으로 멈춰질 수도 있다
그러나 미리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미 나는 고개를 들었고 가야 할 길을 보았다
무지개처럼 도달할 수 없는 피안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갈 수 있을 만큼 가보려 한다
사자처럼 시선을 멀리 두고 한 발자국씩 내딛어 보겠다
내 모습이 보이는 그곳을 향해서.
올가을 나는 늦은 듯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해야 할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
그건 은퇴 후에 맞이할 수 있는 축복이다
나이 듦, 나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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