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 영광밥상의 굴비정식

by 우선열


중복, 이제 더위도 막바지구나, 권불삼년이라지 않는가?

"제아무리 더워도 시간이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시원해지는 게야"

혼잣말을 해보지만 더위의 기세는 꺾일 것 같지 않다

낮 최고기온은 37~8도를 오르내리고 밤에도 25도가 웃도는 열대야이다

예년 같으면 한여름에 두세 번 켜다 말던 에어컨을 밤새 켜 놓고 있다

전기세 폭탄 같은 건 생각할 겨를도 없지만

'지구 온난화 때문이야' 라는 말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더 더워질 여름이 무서워진다.

지금부터라도 무언기를 해야 할 것만 같건만 마음만 허둥지둥이다


일단 이 더위는 피해야 한다

지친 몸에 활기를 넣어주는 직접적인 방법은 먹거리이다

먹어야 산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특별한 복음식이 있었고 삼복더위에도 여인들은 복 음식 만들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열치열이라며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가족들이 먹을 삼계탕이며 장어탕들을 끓이곤 했다

그 시절의 정서는 이제 전설로 남았다

'남이 해주는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요즘 여자들의 말이다

여자 탓할 것 없다

세월이 변한 것이다


대가족이 함께 있을 때는 푸짐한 음식 장만이 당연했다

나눠 먹다 보면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사라지는 게 맛있는 음식이다.

많이 만들어도 부족하기만 했다

지금은 1인 가족시대, 혼자 먹는 음식은 먹어도 먹어도 양이 줄지 않는다

이젠 한세대 가족이 다 모여도 이전의 한 가족만 못하다

각자 바쁜 세상에서 잘 모이기도 힘든 현실이다.

애써 만들어 놓은 음식이 음식물 쓰레기가 되고 만다

조금만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면 재료값이 비싸지고 만드는 과정은 대동소이하다

누구나 자신이 삶의 중주인공이라지만 혼자 먹는 음식을 정성껏 만들려면 생각보다 힘이 든다.

음식은 남이 해주는게 맛있다.


요즘은 집에서 한 발자국만 나가면 밥집이 지천이다.

밥값이 비싼 게 흠이지만 혼자 해 먹어도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어갈 뿐 아니라

음식물과 음식물 재료 쓰레기도 많아진다


복날 특별한 음식은 외식이 제격하다

건강을 위해서 먹는 음식인데 더운 불 앞에서 혹사할 필요도 없다

누군가 불러 준다면 더 행복한 복날이 된다


마침 언니의 부름을 받았다

올해 친정어머니를 잃었으니 이젠 언니가 내 친정이다

나이 70이 넘었건만 친정 타령을 할 수 있는 언니가 있으니 다행이다

맏이인 언니는 어디 가서 친정을 찾을까?

미안해진다


언니 내외와 찾은 복거리 집은 영광 밥상,

미식가인 형부가 찾아낸 노포이다

이렬 치열을 논하기엔 너무 더운 여름

우리는 보리굴정식을 택했다


영광 밥상의 보리굴비정식에서 처음 서빙되는 밑반찬은

콩 조림과 멸치조림, 양파장아찌, 도라지볶음, 양상추 샐러드와 김자반, 김치이다

마침 한가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노 사장이 우리 곁에서 참견을 한다

"김치 맛보세요, 기가 막힙니다 전라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순수 전라도 김치에요

전라도 특유의 젓갈을 써서 호불호가 엇갈리기는 하지만 이만한 맛내기 힘듭니다

우리 집은 최고의 재료를 쓰거든요, 음식은 간 맛고 재료가 좋으면 그만입니다

김자반 먹어 보세요 다른 것과는 확연히 다른 맛입니다"

겉치레 자랑이 아닌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나는 말이었다


김자반은 내가 평소 즐겨 먹는 반찬이기도 하여 반가웠다

김이 질척이지 않고 보슬보슬하며 부드럽다

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내기 힘든 맛이다

김치는 전라도 김치 다운 톡 쏘는 맛은 아니었다

곰삭은 젓갈 맛이 강하다

내 입맛에는 잘 맞지 않았다

콩자반은 맛있다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되 무르지 않았고 달거나 짜지도 않다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두번째 서빙은

여러 가지 재료를 넣지 않고 당면과 부추 당근만 들어간 잡채

참기름 맛으로 승부를 낸 듯하다.

재료가 풍성한 잡채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시답지 않아 보이는 비주얼이지만

맛은 괜찮다


다음은 전, 세 두부, 호박, 생선전, 세가지이다

한식에 전이 빠지면 안 된다.

무가 들어간 생선 조림도 같이 나온다

야들야들 맛있는 생선 살은 조금 적었지만

무가 잘 조려졌으니 무 조림이라 해냐 하나?


메인 요리는 굴비구이 ,

먹기 좋게 잘 손질된 굴비가 두 접시 서빙된다

푸짐하다

심심하고 부드럽되 꼬들꼬들한 식감, 영광굴비 맞다


한정식에 빠질 수 없는 수육도 한켠에 자리 잡는다.

전라도 묵은지에 잘 익은 고기,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거워진다.

역시 고기가 있어야 한다


이모든 반찬은 밥을 위한 것이다

된장국에 찰밥

슴슴한 된장국도 맛있지만 찰밥이 아주 잘 지어졌다

찹쌀 고유의 식감에 씹히는 맛이 살아 있고 과하지 않게 들어간 잡곡들이 입안에서 잘 어우러진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을 실감한다

영광굴비의 꼬들꼬들한 식감도 산해진미도 밥이 마무리를 한다

탄수화물 과잉을 주의해야 한다지만 이렇게 맛있으면 제로 칼로리

이열치열이라며 더운 국물로 몸보신을 하던 시대는 지났다

여름철 몸보신 이만하면 충분하다.


위대한 영광밥상에서의 중복 전야제였다

이제 말복만 잘 넘기면 제아무리 극성스러운 더위도 꼬리를 내릴 것이다

남은 더위는 말복에 먹을 음식을 기대하며 잊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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