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생일

by 우선열

나는 여름생이다. 삼복더위 한가데 태어 났다. 어린 시절, 생일이 되면 내게 오는 축하의 메시지보다 어머니께 가는 출산의 고통에 대한 위로를 먼저 들어야 했다. 어머니는 늘 "그 복중 더위에 아버님께서 오셨더라니까. 베적삼이 흠뻑 젖으셨는데도 둘째 딸이라 섭섭할까 봐 오셨다 하셨지 ." 하시며 내 또래 사촌들 중 할아버지가 직접 오셔서 탄생을 축하해 주신 건 나뿐이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그 말씀 중에는 할아버지의 총애를 받았다는 어머니의 은근한 자부심이 배어 있었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억울했다. 복중 더위에 태어난 것이 내 탓은 아닌데도,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오셨을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늘 펀치 않았다 당시에는 변변한 교통수단이 없어, 괴나리봇짐을 등에 지고 걷는 것이 전부였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양지머리 듬뿍 넣은 미역국을 끓이기엔 날이 너무 더웠다. 자칫하면 공들여 끓인 미역국이 상하기 일쑤였다. 철이 들면서는 그 또한 어머니께 죄송한 일이었다. 생일날 미역국 한번 마음 편히 먹어본 기억이 없는 듯하다.

그렇다고 여름 생일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고깃국이 아니어도 시원한 미역냉국을 맛볼 수 있다. 오이채를 송송 썰어 넣은 미역냉국은 새콤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더구나 여름에는 싱싱한 채소와 과일 같은 먹거리가 지천이다. 오이, 고추, 깻잎 같은 여름 채소들은 익히지 않고 날것으로도 즐길 수 있다. 감자나 옥수수, 호박을 쪄 먹으면 그 맛 또한 일품이다. 많은 가공을 거치지 않아도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 있고, 몸에 좋은 건강 재료들이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수박 한 덩이를 자르면, '쩍' 하고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잃었던 입맛을 되찾곤 했다. 붉은 수박물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수박을 두 손으로 들고 씨를 '퇴퇴' 뱉어내면, 여름 더위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다. 우물에 담가두었던 수박은 어찌 그리 시원했을까. 냉장고에 보관하는 요즘 수박에서는 그때 그 시원한 맛이 나지 않는다. 수박은 그 자리에서 갈라 한 번에 먹어치워야 본연의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잘라서 보관하며 혼자 야금야금 냉장고에서 꺼내 먹는 수박에서는 결코 그 맛이 나올 리 없다. 여름이 되면 가장 그리워지는 맛이다.
이번 여름엔 생일이 가까워지면서 유독 한 친구가 떠오른다. 그해 여름, 목포에 살던 그 친구는 유난히 서울 출입이 잦았다. "수서역이야, SRT 출발 시간이 두 시간 남았어" 하는 전화를 종종 받았다. "뭐야, 이제 말하면 어떻게 해. 진작 말했어야 기다리지. 지금 들어가려면 삼십 분 이상 걸릴 텐데" 하면서도 발걸음을 재촉하곤 했다. 음식점에 가면 친구는 늘 말했다. "요즘 집밥이 그렇게 맛있어. 싱싱한 재료 덕분이야. 재료가 좋으면 음식이 맛있어지거든. 전에는 재료 값 아끼느라 평범한 재료들을 썼지만, 요즘엔 유기농에다 금방 수확한 재료만 사들이니 별 가공을 하지 않아도 음식이 맛있다니까." 유명 셰프들의 음식보다 집에서 먹는 음식이 훨씬 맛있다고 자랑하곤 했다. 친구는 암 투병 중이었다. 독한 약 때문에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하면서도, 우리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런 말들을 했던 것이다. "이젠 검증된 치료약이 없어. 이것저것 다 써봤거든. 새로운 약이 나와서 몸에 맞으면 생명 연장이 되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 신약 실험하는 내 몸이 마루타야. 그래도 지금까지 버티는 건 새로운 약들이 잘 맞아서야. 다행이지." 마치 남의 이야기 하듯 웃으며 말했지만, 우리는 모두 그 심각성을 깨달아야 했다.
친구는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싫어했다. "요즘 의학이 발달해서 신약 개발도 잘되고 있고, 몸에만 맞으면 오래 살 수 있는 거잖아. 삼천갑자 동방삭처럼 아프다고 꾀병 부리면서 우리보다 오래 살 거지?" 우리도 애써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날 카페에서 먹은 망고 빙수가 친구의 입맛에 맞았나 보다. "여기 있던 치즈 조각 어디 갔어?" 스푼으로 빙수를 뒤적이며 친구가 물었다. 방금 내 스푼에 올려진 치즈 조각이었다. "환자한테 차가운 건 안 좋아. 오늘 내 생일이잖아. 내가 먹을 거야" 내가 말했다. "어, 나 다음 주에 새 약 투약 들어가. 그때가 가장 힘들어. 몸에 맞을지 안 맞을지 아무도 모르거든. 몸이 적응할 때까지 생기는 부작용을 감수해야 해. 잘 먹어야 된단 말이야." 그날 친구는 유난히 명랑하고 씩씩했다.
그 여름 이후 서울에 올라오는 횟수가 줄어들던 친구는 결국 그해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번 생일, 나는 어머니가 곁에 계시지 않는 생일을 맞이해야 한다. 애써 친구와의 추억을 떠올려 보지만 그렇다고 어머니가 안 계신 생일을 맞는 슬픔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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