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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어느 날 백화점 복도 사진 전시회에서 본 흑백사진 한 장이 기억에 생생하다.
"11월의 거리'라는 제목으로 기억되는데
쓸쓸한 나목들이 늘어선 가로수 길에 낙엽이 흩날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사진 속에서 찬 바람이 불어 나올 듯한 느낌이었다.
백화점 나들이 중이었으니 사진 전시회에 관한 정보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스쳐 지나다가 마주친 사진의 인상이 너무 강해 한동안 발걸음을 멈췄었다는 희미한 기억인데
'11월의 거리'라는 흑백의 사진만큼은 손에 잡힐 듯 분명하다 .
그때부터인듯하다. 사진 찍기가 어려워졌다.
어쩔 수 없는 경우에 셔터를 누르기는 하지만 사진이라기보다는 의미 없는 낙서 같은 느낌이라서
사진 잘 찍는 사람들이 부럽기는 하지만 내게는 도달할 수 없는 피안의 세계 같기만 했다
사진 찍기보다는 사진 찍히기만을 하던 내게 쐐기가 박힌 것은 신혼여행 때였다.
중매 삼 개월 만에 초스피드 결혼을 한 상태이니 만혼이라 하더라도 어색하기만 했다
가는 곳마다 사진을 찍어대는 남편이 부담스러웠지만 말도 못 하고 쫓아다니는 꼴이었는데
나를 요리조리 돌려세우며 사진을 찍던 남편이 사진기를 집어던지며 볼멘소리를 했다
당신 사진은 한 장도 찍어 주지 않는다는 불평이었다
4대 독자에다가 왕자병이 있었던 남편은 자신의 외모를 자랑스러워했는데
자신의 사진을 한 장도 찍어 주지 않으니 불만이 폭발한 거였다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인 줄 몰랐다며 서운함을 쏟아 냈다.
사진을 못 찍는 이유를 주저리주저리 말할 수도 없어서 민망해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남편의 사진을 찍어대야 했다
사진기만 가져다 대면 남편은 방긋방긋 잘도 웃었다
사진을 찍거나 말거나 뚱하던 나와는 대조적이었다
이 사건은 내 결혼생활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결혼 전에는 나와 다른 점이 매력이었으나 결혼생활에서는 치명적인 불편함이 되기도 했다
다른 점으로 부딪칠 때마다 신혼여행 사진 사건을 생각했다
나빠서가 아니라 달라서라는 점을 깨닫게 했다
굴곡이 많은 삶이었지만 그럭저럭 무난한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던 거 같다
자연스레 사진 찍기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기는 했지만 셔터를 누르는 두려움만 없어진 꼴이다
좋은 사진에 대한 로망은 여전히 도달할 수없이 멀기만 하다
블로그를 시작하고는 자의 반 타의 반 사진 찍는 기회가 많아졌다
내가 찍은 사진을 블로그에 올려야 할 때마다
음정 박자 무시한 음치가 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만큼 민망해진다
벌거벗고 사람들 앞에 선 듯도 하다
익숙해지면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처럼 많이 찍다 보니 그런 불편함에서 놓여나기는 했다
부끄럽지만 보기 민망한 사진도 당당히 올리기도 한다
미숙한 자신의 모습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미숙한 것은 불편할 뿐이지 부끄러운 것은 아니지만
미숙한 채로 안주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조금 더 나아지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게 삶이 아닐까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완전한 사람은 없다
살아가면서 역량 껏 자신의 기량을 키워가야 한다
개인차도 있으니 남을 부러워할 일만도 아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도전해 보는 것이다
알면서도 행동은 힘들다.
살아온 세월만 고집하느라 살아갈 세월을 도외시한다
세상은 변하고 있는 데 말이다
변화는 거스를 수 없으니 같이 흘러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나이 들어도 끝까지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다
배우는 재미도 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지 않은가?
젊은 시절 사느라 바빠하지 못한 일이 있다면 나이 들어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가 제격이다
할 수 있을 만큼만 해도 한 것만큼 이익이다
'이제 와서'가 아니라' 이제부터'여야 한다
누구나 처음은 어렵다
나이 들어 처음은 더 어려울 수 있으나 어려울수록 보람이 클 수도 있다
못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중 3,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우리들은 너도 나도 교정에서 사진을 찍었었다
당시는 흑백 사진이었다, 필름으로 찍고 인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때 한 친구와 늙은 소나무 밑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이 있다
그늘지고 역광이라 얼굴 윤곽만 겨우 볼 수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을 같이 찍은 친구의 아버지가 당시 유명한 라디오 방송 극작가였다
지방 소도시였으니 문학소녀였던 내게는 하늘의 별과 같이 보였다
모처럼 친구의 집에 갔을 때 서울 나들이로 집을 자주 비우시는 친구의 아버지가
마침 집에 계셨고 수줍게 인사를 드리던 나를 보시더니
"어, 그 엉성한 소나무 밑에서 사진 찍은 친구구나" 하셨다
나를 알아봐 주시는 기쁨으로 하늘을 나는 듯했다
오늘 나는 그 사진을 찾아보려 한다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인생 샷이라는 말에 불현듯 떠오른 사진이다
존경하던 친구 아버지가 나를 알아봐 준 그 사진 한 장 때문에
글을 쓰고 싶은 욕구를 여지껏 잠재우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
언젠가는 쓸 수 있을 것 같았던 막연한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조금 늦은 듯하지만 이제라도 쓰기 시작했으니 다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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