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재주 상팔자

by 우선열



무재주 상팔자', 손으로 무언가 해야 할 때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그리 예쁘지도, 밉지도 않은 평범한 손인데 , 손으로 하는 일은 무엇이든 신통치 않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 때마다 내 딴엔 심혈을 기울여 조심스레 시도하지만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망가지기 일쑤다.

요즘 유행하는 조립식 제품도 마찬가지다.

설명서를 보고 열심히 만들어도 제대로 맞지 않거나 단단하지 않아 손만 대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호기심은 많아 새로운 걸 보면 해보고 싶은데 몇 번의 실패를 경험하고는

이제 DIY 제품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요즘은 배송비와 인건비가 비싸 완제품보다는 반조립 제품이 많다.

설명서를 보고 간단하게 조립만 하면 되는 것들이다.

2년 전, 무심코 사들인 건조기도 반조립 제품이었다.

설명서의 순서와 그림을 아무리 봐도 도무지 만들어지지 않았다.

몇 번 시도하다가 재료마저 망가질까 두려워, 결국 완성하지 못한 채 베란다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은 아니라 불편하진 않았다

그러나 꼭 필요한 물건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불편을 겪게 된다.

.엉성하게 조립한 선반용 책꽂이가 무너져 떨어진 책으로 주변 집기가 망가졌고,

행거는 헐겁게 조립해 옷을 제대로 걸지도 못하고 있다.

지금은 완성된 물건만 사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무재주인 탓에 고물가 시대를 감당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이제 '무재주 상팔자'가 아니라 '재주 없으면 팔자 사나워진다'는 말로 바꿔야 할 것 같다.


학창 시절에도 공작 시간이나 수예 시간은 나에게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친구들은 즐겁게 뚝딱 예쁜 작품을 만들어냈지만, 내 손에만 닿으면 물건들이 망가졌다.

창가에 앉아 고운 수를 놓는 얌전하고 솜씨 좋은 여자를 꿈꾸었지만, 현실은 재료만 망가뜨리는 사람이었다. 한때 유행했던 뜨개질도 마찬가지였다.

재빠르게 대바늘을 놀려 목도리, 가방, 심지어 옷까지 만들어내는 친구들과 달리,

내 뜨개질은 코가 빠지거나 간격이 맞지 않아 울퉁불퉁해졌다.

가장 쉬운 목도리 뜨기도 제대로 완성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남자 친구에게 직접 뜬 소품을 선물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당연히 나는 동참할 수 없었다.

팔자 사납고 외롭기까지 한 기분이었다.


젊은 시절 우연히 들른 점집에서 무속인이

"손으로 밥 벌어먹기 힘들겠네"라고 했다.

"그럼 발로 먹고 사나요?" 물었더니

"머리나 말로 먹고 사세요"라고 답했다.

첫 직장이 교사였고, 뒤늦게 글쓰기에 뜻을 두게 된 것을 보면 맞는 예언 같기도 하다.

다만 머리도 말도 그리 신통치 않아 잘 먹고 사는 편은 아니다.

손재주 좋은 사람들이 그저 부럽기만 하다.


하지만 이런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도 있다.

음식을 맛깔나게 만들고 기성복도 예쁘게 고쳐 입는 센스 있고 솜씨 좋은 친구다.

나는 그 친구가 대단해 보이는데, 그는 이제 막 글쓰기를 배우는 나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남의 손에 떡이 커 보인다'는 말처럼,

우리는 서로 가진 것에 만족하기보다 갖지 못한 것에 미련을 두고 있나 보다.

남의 재주를 부러워하기보다 이제부터는 내 손에 든 떡을 소중히 여겨야겠다.

손으로 하는 일에 재주가 없으면 어떤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평범한 손처럼 머리도 그리 특별하지 않지만,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건 큰 축복이다.

이제는 사납고 외롭다 여겼던 나의 팔자를 사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