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플라타너스

by 우선열

상하이 임시정부를 향해 가는 길, 차창 밖으로 늘어선 가로수가 눈에 들어왔다. 플라타너스였다.

처음 밟는 도시였지만 낯설지 않았다. 나라를 잃은 시절, 우리의 애국지사들이 둥지를 틀고 뜻을 이어간 곳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고향처럼 다가왔다. 누구나 금의환향을 꿈꾸지만,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발걸음은 설렘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그들의 희생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오늘을 보여주고 싶었으나, 잊고 살아온 지난 날들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화려한 상하이 도심 속, 그 건물만은 쓸쓸히 서 있었다. 가파른 계단, 숨 막히는 좁은 방. 나라를 되찾기 위해 가산을 팔고, 자손의 미래까지 걸었던 이들의 흔적이었다. 그 앞에 서자, 내 자식만 귀히 여기며 살아온 날들이 겹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그때 창밖으로 스쳐간 플라타너스가 눈에 들어왔다. “플라타너스다.” 소리를 낼 뻔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내 고향 청주의 진입로에도 그 나무들이 도열해 있다. 여름이면 가지와 잎이 아치를 이루고, 그늘 아래를 걸을 때면 마치 환영받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이국 땅에서 마주한 같은 나무가, 고향의 따뜻한 손길처럼 다가왔다. 어쩌면 이곳에 머물던 지사들도 그 나무를 보며 고국을 그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가까이서 본 상하이의 플라타너스는 조금 달랐다. 잎은 작고, 줄기는 옹이가 많아 거칠었다. 고향에서 보던 의연한 모습과는 달랐다. 그것은 마치 뜻은 크지만 험한 길을 걸어야 했던 임시정부 요인들의 삶을 닮아 있었다. 상처투성이의 몸과 마음으로, 그러나 오직 조국 광복만을 향해 버텨낸 모습 말이다.


가이드에게 물었다.

“가로수가 플라타너스네요?”

돌아온 답은 의외였다. “아무 쓸모없는 나무지요. 열매도 없고, 낙엽만 치우기 번거롭습니다.”


그 말을 듣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전후 폐허의 땅을 푸르게 물들여주던 플라타너스가 이제는 쓸모없는 나무로 치부되는 것처럼, 독립운동가들의 이름 또한 우리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살아낼 길조차 막막한 와중에도 모든 것을 내던져 나라를 지켰던 사람들, 그러나 지금 그들의 후손들은 오히려 더 큰 고난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사람은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누리는 오늘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서 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마땅히 존경받고 자긍심을 품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플라타너스는 언젠가 다른 나무로 대체될 수 있다. 그러나 애국지사들의 넋만은 영원히 우리 가슴에 살아 있어야 한다. 좁은 계단을 오르며, 그 작은 공간에서 큰 뜻을 품었던 사람들의 땀과 숨결을 떠올려 본다.

플라타너스가 잘려나가도, 그들의 희생은 결코 잘려나갈 수 없다.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숨쉬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