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 제법 날씨가 쌀쌀합니다.
어젯밤에는 올가을 처음으로 난방을 켜고
시원한 잠자리가 아니라 따스한 잠자리의 쾌적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한동안은 이렇게 낮에는 더위가 극성을 피우겠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것입니다
바바리 깃을 세우거나 카디건을 걸쳐 입어야 하는 계절입니다.
깃 하나 세우고 스카프 살짝 두르는 것만으로도 멋쟁이가 될 수 있겠습니다
당분간은 철 지난 옷장들을 정리하며 아침마다 무얼 입지? 하고 혼잣말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더위를 피하거나 추위를 막는 단순한 목적이 아니라 계절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옷차림을 해야지요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책 읽기에도 좋습니다. 단풍이 한껏 곱고 가을꽃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누릴 게 많은 계절이니 마음도 풍요롭습니다
옷차림이 절로 넉넉해질 수도 있겠습니다
이번 가을맞이는 조금 흐뭇하게 시작합니다
모자를 멋지게 소화하는 문우를 따라 일찌감치 가을 모자 하나를 구입했거든요.
그녀는 항상 단아한 이미지의 멋쟁이입니다.
모자만 쓰면 그렇게 멋진 모습이 될 수 있겠다는 착각을 했었나 봅니다
그녀가 골라준 회색 모자를 덥석 사들고 말았습니다.
진한 회색빛에 자주색 띠를 두른 모자입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볼수록 정이 듭니다
자세히 오래 보아야 하는 풀꽃 같습니다.
마음이 놓입니다
문우처럼 멋쟁이가 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내 모자를 장만 한 기쁨이 있습니다
이 가을뿐만 아니라 계절이 바뀌고 다음 가을이 와도 내 곁에 있어줄 것만 같습니다
모자 하나로 단아한 문우의 모습을 흉내 낼 수는 없겠습니다만
오래 내 곁에 있어줄 정든 물건이 될 수 있다면 이번 가을맞이는 성공적입니다
등단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받은 이번 가을,
오래 두고 자세히 보아야 하는 내 모자 같은 마음에 남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소망까지 담아 봅니다
제법 선선한 아침저녁의 날씨를 감당해야 하고 낮 동안의 따가운 햇살을 견뎌야 하는 가을입니다
가지고 싶던 모자 하나를 장만할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되었습니다
작은 모자 하나가 이 가을을 풍요롭게 하듯이
내글도 누군가의 계절에 따뜻하게 닿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세히 오래 두고 보는 기쁨을 누려 보고 싶습니다
모자 하나로 행복한 가을입니다